달력이 없었다면 내 생일은 언제고, 미래 시간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할까? 우리는 달력이 있는 세상에서 살기에 당연하게 누리고 산다. 이젠 벽걸이나 탁상용 달력이 없어도 스마트 폰에 있는 달력이 스케줄 관리를 대행해 주고, 약속 시간을 사전에 알려주는 시대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만세력(萬歲曆) 같은 책력(冊曆)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상의 기일에 축문(祝文)을 옛날 형식으로 쓰려면 연월일의 간지(干支)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먼 옛날 농경시대에 언제 볍씨를 뿌리고, 야채는 어느 때 심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달력을 고안했으리라. 달력은 천문학에서 비롯되었으며, 서양의 고대에는 여러 사제(司祭)들이 관장하였고, 동양에서는 통치자들이 관장하였을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정 보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시(計時) 체계는 언제나 완벽한 수준에는 조금 미달했다. 우리들의 24시간 즉 하루는 지구의 자전(自轉)을 기준으로 하고, 1개월은 달의 공전과 같으며, 1년은 지구의 태양궤도 공전에 맞추어 정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구가 한번 공전하는 1 태양년과 달이 12번의 만월(滿月)이 되는 1 태음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태음년은 354일 8시간 48분인데 반해, 태양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여분의 5시간 48분이 있기 때문에 4년마다 하루를 더 보태는 윤년이 생겼다.
동양의 정식 사서(史書)로 인정은 못 받지만 약 5,500년 전에 태호복희(太昊伏羲) 즉 배달국 5세 환웅천왕의 막내아들의 팔괘도가 나온 것을 보면 이들이 책력을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약 4,000년 전 하(夏) 나라의 전신인 요순시대(堯舜時代)에 책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堯) 임금은 제요지기(帝堯之朞)로 일 년을 366일로 하였으며, 순(舜) 임금은 제순지기(帝舜之朞)로 365 1/4일로 하여 책력(冊曆)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사용하는 책력과 거의 같은 것이다. 여기서 기(朞)는 ‘돌 기’ 자로, 아기가 태어나서 한 해가 지나면 돌잔치를 한다고 하는 돌이다. 주역(周易)의 계사(繫辭) 상편 9장에 공자지기(孔子之朞)가 나오는데, 360일이다. 서양은 이집트인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시기를 계산하기 위해 달력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찾아내었고, 이러한 상식은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서양으로 전파된 것이다. 서양의 중심인 로마는 2대 누마(Numa) 왕 시절에 태음력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1년이 355일이었다. 공전 주기와 10일 정도 차이가 나서 3년마다 1달씩 늘려 조정했다. 그러자 추수감사절이 곡식이 여물지도 않는 날로 돌아오는 폐단이 있었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집권하자 달력은 이미 실제 시간과 어긋나 계절보다 2달이 앞서 있었다. 시저는 기원전 46년에, 23일을 2월에 추가하고, 11월과 12월 사이에 다시 67일을 끼워 넣었다. 이 해를 로마인들은 '혼란의 해'라 불렀다. 그래서 카이사르(Caesar)는 달력을 태양력으로 변경하고자, 이집트의 천문학자와 그리스의 수학자들을 로마로 불러 정교한 공전 주기를 계산하니 365일 6시간으로 나왔다. 1년을 12달로 나누고,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더하는 윤년제도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이다. 달력을 만든 카이사르의 영향력은 달력 7월과 8월의 이름에 그대로 남아 있다. 7월이 영어로 줄라이(July)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난 달을 기념하여 7월에 율리우스의 이름을 붙였다. 영어 8월은 어떤가. 바로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로마제국 초대황제의 칭호인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8월(August)로 명명했다. 이 달력을 율리우스(Julius)력(曆)이라고 부른다. 카이사르는 달력뿐만 아니라 로마법·기축통화·로마도로 등을 만들어 식민지까지 통일적으로 사용토록 했다.
그러나 수세기를 지나면서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 주된 원인은 카이사르의 역법에 따른 1년이 태양 주기보다 몇 분이 더 길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달력이 실제 계절보다 늦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3세가 지구의 공전에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린다는 사실을 적용하여 달력 체계를 변경했다. 율리우스력이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한 것과 비교할 때 11분 14초의 오차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레고리우스(Gregorius)력은 시간만 정확해졌을 뿐 달력의 개념은 율리우스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래서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당시 실제와 달력 사이의 차이 나는 10일을 그해의 10월의 날수에서 그만큼 삭제토록 긴급명령을 발령했다. 즉 다음날인 10월 5일이 갑자기 15일 금요일로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일간 로마의 역사서는 공백이었다. 이 열흘 동안 로마에서는 단 한 건의 종교재판도, 마녀 화형식도 없었다. 멀리 중국으로부터 물건을 싣고 들어오는 배도 보이지 않았으며, 매일 열리는 시장도 서지 않았다. 뾰족한 창을 들고 몰려다니면서 행패를 부리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았고, 주정뱅이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교회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으며, 학자들의 열띤 토론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숨도 쉬지 않았다.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거나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어 버린 것이 아니다. 로마 역사책에는 이 열흘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달력에서 잃어버린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그 식민지들은 교황의 이 조치를 거부하다가, 1752년에 이르러서야 달력에서 11일을 빼냈다. 영국의 역사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시 런던의 부동산 소유주들은 11일간의 임대료를 사기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소동을 일으켰다. 그와는 달리 필라델피아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발행하는 가제트지(Gazette) 독자들에게 "이달 2일에 편안히 잠자리에 들면, 14일 아침까지 11일간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고맙게 생각하라고 조용히 충고했다.
원래 로마역법에 따르면, 영어로 3월을 뜻하는 March가 첫째 달이었고, 9월 September는 일곱이라는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니, 7번째 달이었다. 그러다가 사태가 바뀌어 그것이 아홉 번째 달이 되었으며, 라틴어로 여덟 번째 달이었던 October, 아홉인 November, 열을 의미하는 December 등은 각각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반면에 옛날 동양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할 때, 음력 11월 즉 동짓날이 새해를 시작하는 양(陽)의 기운이 발생하는 날로 보았다. 묵은해에 작별을 고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인 1월 January를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는 두 얼굴을 가진 로마의 신 야누스(Janus)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정화(Februum) 시기인 2월의 루페르칼리아(Lupercalia) 축제 때는 희생의 제물로 바친 염소가죽으로 만든 가죽끈을 든 두 청년들이 시내를 뛰어다니며, 석녀(石女)로 평판이 난 여인들을 때렸다. 이 의식으로 인해 그 여자들이 임신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둘째 달의 이름이 거기서 온 것만은 분명하다. 3월 March는 로마의 군신(軍神) 마르스(Mars)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4월 April은 봄의 새싹을 가리켜 '열려 있는(Aperio)'이라고 한 데서 나왔다. 5월 May는 헤르메스의 어머니 마이야(Maia)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6월 June은 로마 최고의 신인 주피터의 아내 주로(Juno)에 근거가 있는 듯하고, 7월 July는 달력을 뜯어고친 율리우스(Julius)에 그 어원이 있다. 8월 August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호칭을 가진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에서 유래한다.
달력의 요일은 해와 달에서 일요일(Sunday)과 월요일(Monday), 그리고 4명의 튜튼(Teutoni)족의 신들인 Tiw, Woden, Thor, Frigg로부터 화(Tuesday)·수(Wodnesday)·목(Thursday)·금(Friday)이, 마지막으로 로마의 농경신인 사투루누스(Saurnus)로부터 토(Saterday)가 나왔다. 원시인들은 천체를 관측하여 비교적 정교한 계절 측정법을 개발했지만, 처음으로 달력을 제작한 사람들은 약 5,000년 전 수메르의 천관들이었다. 그들은 1년을 12달, 한 달을 30일로 정했고, 이리하여 혼란은 시작되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이 달력을 이어받았으며, 바빌로니아 포로시대에 유태인들이 7일 1주일제를 채택하여 결국 세계 전역으로 퍼뜨리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늘렸고, 하루 24시간제를 추가했다. 서기 525년에 로마에 살고 있던 스키타이의 승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달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확정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적 사건을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계산함으로써, 서력기원의 기원전(B.C. =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주님의 해)의 연대 표기방식을 보편화했다. 이런 연대 표기 방식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하는 모양이기 때문에 요즘은 학술논문이나 국제교류 문서, 유네스코 보고서 등에는 BCE(Before Common Era), CE(Common Era)로 변경하여 사용한다. 참고로 히브리 달력은 구약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슬람의 달력은 기원 622년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헤지라 즉 성천(聖遷)한 사건을 기점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서양 달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고, 중국은 늦게 1912년에 도입하여 1949년 서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1873년 메이지 덴노(明治) 천황은 다음 해 달력이 이미 인쇄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단 20일의 공지 기간만 두고, 태음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태음태양력에 따르면 윤달이 끼어있는 1873년에는 관료에게 지급해야 할 한 달 치 급료가 추가돼야 했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고 달력을 개정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수백 년 되었지만 한 달의 길이가 들쭉날쭉하다 보니, 분기와 반기의 길이도 서로 다르다. 더욱이 요일도 제멋대로이다. 날짜와 요일 사이에 아무런 규칙성이 없다. 내년의 생일이나 국경일이 무슨 요일인지 달력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러니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모두가 불완전한 달력에서 오는 불편이다. 요일에 맞추면 날짜가 달라지고, 날짜에 맞추면 요일이 달라진다. 날과 달, 요일이 정확히 일치하는 달력은 없을까. 1930년대에 창설되어 활동하다가 지금은 사라진 국제고정달력동맹이라는 단체가 제안한 달력이 있다. 한 달을 28일, 정확히 4주로 설정해 날자와 요일 불일치 문제를 해결했다. 모든 달은 일요일에 시작해 토요일에 끝난다. 이렇게 하면 1년은 13개월, 364일이 된다. 평년에는 하루, 윤년에는 이틀이 남는다. 하루 남을 때는 1년의 마지막에 넣고 요일은 없다. 2일이 남으면 연도의 중간과 마지막에 각각 넣고 무요일로 한다. 무요일은 일종의 보너스 휴일인 셈이다. 이 달력은 날짜만 알면 요일은 자동으로 결정된다. 생일이나 국경일의 요일도 미리 알 수 있다. 인쇄된 달력은 그리 필요하지 않다. 몇 년 후의 일정도 머릿속으로 계산이 가능하다. 다만 1년이 13개월이라는 점이 좀 걸린다. 그런데 기독교 측에서 매달 13일이 금요일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반대가 심했다. 또 다른 시도는 1954년 UN에서 논의된 ‘세계력’ 또는 ‘영구력’이다. 이 달력은 1년을 12달로 그대로 두되, 1분기를 정확히 91일로 통일시킨다. 각 분기는 31, 30, 30일씩 배분한다. 이렇게 하면 1년은 364일이 된다. 역시 하루 또는 이틀이 남으므로 그날을 ‘세계요일’로 휴일이다. 이 달력은 1분기가 정확히 13주라서 분기단위로 날짜와 요일은 정확하게 반복된다.
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수백 년을 살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산 것을 두고 원래 인간의 수명이 수백 년인데, 인간이 타락해서 수명이 짧아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다른 주장은 노아의 홍수 때 비가 쏟아지면서 오존층이 뚫려서 그렇게 됐다고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류도 있다. 모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시편 90편에 인생은 7~80 정도로 표현되어 있는데, 므두셀라는 969년, 아담은 930년, 노아 950년 등 홍수 이전은 매우 길다. 그 후 조금씩 짧아져서 아브라함 175년, 모세가 120년이니 이 정도도 긴 것이다. 이 부분은 필자 금삿갓의 유추는 과거 당시에 사용하던 달력의 체계가 현재의 달력과 1년의 길이가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달력의 언제나 통치자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변화된 것이니까. 로마에서는 지금은 10-11-12월을 뜻하는 October – November - December는 원래 각각 8 – 9 - 10을 뜻하는 라틴어 octa – nona - deca에서 비롯되었다. 그렇지만 원래 차례와는 다르게 두 달씩 밀린 것인데, 이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제정하면 자기 이름을 딴 July와 오타비아누스의 황제 칭호를 딴 August를 중간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그가 집정관에 두 달 앞당겨 취임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고도 한다. 1793년 프랑스혁명 국민의회가 혁명 달력을 제정했다. 한 달을 30일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되 남는 5일은 휴일로 삼았다. 문제는 한 주일을 10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하루를 20시간으로, 한 시간을 100분으로 정했다. 이는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속셈 때문이었는데, 정작 반발은 일주일을 7일에서 10일로 늘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시민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는 다른 나라와 거래하는데도 큰 장벽이 되었다. 이 달력은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1929년 시행된 소비에트 달력은 ‘생산이 중단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일주일을 5일로 정하고 한 달은 6주, 1년은 72주가 되도록 만들었다. 나머지 5일은 국경일로 삼았다. 그리고 모든 국민을 5개 그룹으로 나누어 자기 그룹에 해당하는 요일에 쉬도록 만들었다. 5부제 근무였던 셈이다. 그 결과 언제나 각 직장의 노동자 중 20퍼센트는 쉬었지만 나머지 80퍼센트는 멈추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 이 방식에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자들의 일가족은 서로 다른 요일에 지정되어 일가족이 함께 모일 수 없게 되었고, 경영자들은 어느 요일에 회의를 열어도 언제나 20퍼센트는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