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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別綱川(별망천) / 망천에서 이별

금삿갓의 漢詩工夫(251104)

by 금삿갓

別綱川(별망천) / 망천에서 이별

- 王維(왕유)


依遲動車馬

의지동거마

○○●●●

천천히 움직이는 거마에 의지해


惆悵出松蘿

추창출송라

○●●○◎

서글피 솔밭 나오노라니,


忍別靑山去

인별청산거

●●○○●

차마 청산과 이별해 가니


其如綠水何

기여녹수하

○○●●◎

저 푸른 물은 어찌 하나?

此(차)는 王維別網川也(왕유별망천야)라. 依遲(의지)는 盤桓躕躇之意(반환주저지의)요. 惆悵(추창)은 悲歎凄愴之情(비탄처창지정)이라. 動車馬者(동거마자)는 初發之時(초발지시)오. 出松蘿(출송라)는 已發之後(이발지후)라. 網川之山水(망천지산수)를 不能忘乎心(불능망호심)하야. 惟彼靑山(유피청산)을 何忍別去乎(하인별거호)아. 惟彼綠水(유피녹수)를 將如之何(장여지하)오하니, 此乃欲忘不忘之情也(차내욕망불망지정야)라.

이 시는 왕유가 망천을 이별하는 시다. 依遲(의지)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뜻이다. 惆愴(추창)은 슬프고 한탄스럽고 쓸쓸한 감정이다. 거마를 움직이는 것은 처음 출발할 때이고 솔밭을 나온 것은 출발한 이후다. 망천의 산수를 마음에 잊을 수 없어서 “오직 저 푸른 산을 어찌 차마 작별하고 떠날까? 오직 저 푸른 물을 장차 어찌할까?” 하였으니 이는 바로 잊으려 하나 잊지 못하는 뜻이다.

* 網川(망천) : 당 현종 천보 3년(744) 정도에 왕유는 송지문(宋之問)이 은거했던 망천(현재의 산시성 람전(藍田) 남서쪽 10여 킬로미터)의 망천별업(網川別業)을 매입하고, 그 기초 위에 정원 별장을 세워 그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고 수행하는 은거지로 삼았다. 이 시는 시인이 망천을 떠날 때 창작한 것으로, 구체적인 창작 시기는 미상이다.

* 惆悵(추창) : 슬프고 한탄스럽고 쓸쓸한 감정.

* 松蘿(송라) : 女蘿(여라)라고도 하며, 더부살이 식물류임. 몸은 사상체(絲狀體)이고 곧게 서거나 매달려 있으며 회백색 또는 회녹색이며 기생(寄生)은 대부분 소나무나 다른 나무의 껍질에 부착되어 있으며 일부는 돌에 산다. 여기서는 솔숲이 우거진 산림지방을 뜻한다.

* 盤桓(반환) : 어정어정 머뭇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일.

구름.JPG

* 王維(왕유) : 자 마힐(摩詰). 산시성[山西省] 출생. 9세에 이미 시를 썼으며, 서(書)와 음곡(音曲)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아우인 진(縉)과 함께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특히 기왕(岐王)의 사랑을 받아 731년 진사에 합격, 태악승(太樂丞)이 되었다. 후에 제주(濟州:山東省 荏平縣)의 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 좌천되었으나, 734년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감찰어사 ·좌보궐(左補闕) ·고부낭중(庫部郞中)을 역임, 이부낭중에서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안녹산의 난을 당하여 반란군의 포로가 되어 협박을 받고 할 수 없이 출사하였다. 반란 평정 후 그 죄가 문책되었으나 아우 진의 조력과 반란군 진중에서 지은 천자를 그리는 시가 인정받아 가벼운 벌로 치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다시 등용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의 자리까지 벼슬이 올라갔다. 그 때문에 왕우승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왕유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궁정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라 하여 장안(長安) 귀족사회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고 존경도 받았다. 그의 시는 산수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노래한 것으로 수작(秀作)이 많은데, 특히 남전(藍田:陝西省 長安 동남의 縣)의 별장 망천장(輞川莊)에서의 일련의 작품이 유명하다. 맹호연(孟浩然)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대 자연시인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또 그는 경건한 불교도이기도 해서, 그의 시 속에는 불교사상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왕우승집》(28권) 등이 현존한다. 그림은 산수화에 뛰어나, 수묵(水墨)을 주체로 하였는데, 금벽휘영화(金碧輝映畵)에도 손을 대고 있어 화풍 또한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순정 ·고결한 성격의 소유자로, 탁세(濁世)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는 태도 등은 남송문인화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하였다. 당시는 장안(長安)에 있는 건축의 장벽산수화(牆壁山水畵)나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 등이 알려져 있었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여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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