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중국의 충칭(重慶)이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이 유주(渝州)였는데 이렇게 변경된 이유를 아시는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과 얽힌 비사(秘事)이다. 충칭이라는 명칭은 남송시대에 처음 생겼다. 1189년에 황태자 조돈(趙惇)이 이곳에서 왕이 된 지 한 달 만에 12대 황제인 광종(光宗)으로 즉위하였다. 그래서 ‘경사가 겹쳤다’는 의미의 쌍중희경(雙重喜慶)이라 하였고, 이를 줄여서 중경(重慶) 즉 충칭이 된 것이다. 이 광종의 부인이 바로 자의황후(慈懿皇后) 이봉랑(李鳳娘)이다. 그녀는 1144년에 경원군 절도사(節度使)를 지낸 이도(李道)의 딸로 태어났다. 처음 태어날 때, 문 밖에 검은 봉새가 있는 모습을 보고, 딸의 이름을 봉랑(鳳娘)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도는 호북에 있을 때, 관상을 잘 본다는 황보탄(皇甫坦)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자기 딸의 관상을 보게 했다. 황보탄(皇甫坦)은 이봉랑이 천하의 어머니가 될 상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의 상황이다. 이도가 딸에게 관상의 도사한테 인사를 여쭈라고 했다. “따님의 상을 보니 장차 국모가 되실 분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인사를 받겠습니까? 제가 인사를 올려야지요.”라고 하며, 황보탄(皇甫坦)은 오히려 허리를 굽혀 이봉랑(李鳳娘)에게 예를 갖추려 했다. 봉랑의 아버지 이도(李道)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보탄을 제지하며 앞을 막아섰다. 그때서야 보탄은 못 이기는 척 자리를 앉으며 그녀의 절을 받았다. “봉랑아 이분이 너를 국모로 만들어 주실 황보탄 도사이시다. 어서 주방으로 가서 술상을 차려 오너라.”
당시 황보탄은 의술과 관상술을 장기로 황제인 고종(高宗)의 측근으로 신하들의 인사 검증을 할 정도였다. “예. 아버님” 봉랑의 나이 이제 16세이나 성숙미가 물씬 풍겨 여자를 볼 줄 아는 사내들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도사 이도는 어떻게든 얼굴이 예쁘게 타고난 딸 봉랑을 통해 출세를 하고 싶은 것이다. 평생 지방 관직 생활을 하고 있지만 중앙무대엔 발을 못 붙여 예쁜 딸을 매개로 황족이나 고관대작이 되는 것이 꿈이다. “보탄도사님 자 어서 한잔 받으시죠.” 이도는 두 손으로 주전자의 술을 따랐다. “아닙니다. 장차 황제의 장인이 되실 분인데 제가 먼저 올려야지요.” 이도는 황보탄의 황제 장인이란 말에 기분이 좋은지 박장대소하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주거니 받거니 어느덧 저녁 해가 기울었다. “도사님 약주도 취하셨는데 오늘은 저의 집이 누추하나 쉬었다 가시지요.” 보탄은 맞은편에 앉아 비파를 켜는 봉랑을 힐끗 훔쳐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실례가 되지 않겠소? 하긴 집에 가봐야 늙은 할망구 밖에 없으니 인생이 재미가 없지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도사님 같이 훌륭하신 어른이 안 계시면 나랏일은 누가 보나요?” 보탄은 이도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창문 틈으로 석양이 들어와 봉랑의 얼굴에 머물러 장미 빛으로 물든 모습을 술에 취해 충혈된 눈으로 뱀이 개구리를 노려보듯 쏘아보고 있다. “그럼 누추하더라도 저와 저의 집에서 하루 쉬시지요. 봉랑아 네가 오늘은 어머님 대신 도사님에 잠자리를 봐드려라!” “예 아버님” 눈치 빠른 봉랑은 물 찬 제비 모양 날렵하게 황보탄의 잠자리를 꾸몄다.
절도사 이도의 집은 협소하여 내실과 사랑, 건넌방과 그리고 집사의 방이 있을 뿐 손님을 맞을 객실은 없다. 집사는 이도와 같이 자기로 하고 집사 방으로 황보탄을 안내했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황보탄을 이도 혼자서는 집사 방으로 옮기는 게 힘들어 봉랑의 도움을 받았다. 이도는 왼쪽에서 봉랑은 오른쪽에서 부추겨 방으로 데려갔다.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황보탄이 술 네댓 잔에 그렇게 녹초가 될 리 없다. 일부러 늘어져서 부축을 받으며 봉랑의 향기로운 체취를 맛보려는 것이다. 그의 음심(淫心)이 맞아떨어졌다. 봉랑이 오른쪽 팔을 잡자 나이에 비해 성숙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향긋한 체취가 코를 자극하자 늘어져 잠자코 있던 물건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어이고, 내가 왜 이렇게 취했지?” 황보탄은 대청에서 집사 방으로 건너가는 문지방에 일부러 걸려 넘어지려는 척하며 엄살을 부렸다. “도사님 조심하세요?” 부녀는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도사를 양쪽에서 부축해 간신히 집사 방으로 들어갔다. 약간 늙었지만 아직도 건장한 체구에 술까지 취해 둘이서도 겨우 자리에 눕혔다. 도사는 의식적으로 봉랑 쪽으로 몸을 더 실었다. 봉랑이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고는 하지만 술 취한 사내를 감당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황보탄의 손은 어느새 봉랑의 엉덩이를 스쳐 장차 황제가 노닐 에덴동산 깊숙한 동굴에까지 닿았다. 봉랑은 “도사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고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면서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으나 태연하게 참았다. 이도 역시 눈치는 챘지만 마찬가지다. 도사가 술 몇 잔에 대취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딸이 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식(試食)은 못할 망정 만져라도 보려 한다는 속셈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황보탄은 도사 중 최상급 도사다. 관상만 잘 보는 도사가 아니고 의술과 방중술에도 도사다. 특히 여색(女色)에 특급도사다. 그 짧은 찰나의 스침에서 그는 봉랑의 몸을 벗겨 놓고 보듯 알아차렸다. 장님의 손을 뺨칠 감각으로 그녀의 구석구석을 상상을 하며 즐겼다. 넓고 볼륨이 알맞은 엉덩이, 골이 깊은 비너스 언덕, 물이 많고 수심이 깊으며 수초까지 무성한 연못은 튼튼한 황손을 생산할 넉넉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봉랑도 생후 처음으로 사내의 손길이 불청객이었으나 마음과 달리 몸의 구석구석에서는 황홀한 분위기로 환영의 분수를 거침없이 뿜었다. 이도와 봉랑 부녀는 도사를 자리에 눕히고 대청으로 나왔다. 봉랑의 얼굴이 봉선화 꽃 빛깔로 물들어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황보탄은 황제인 고종(高宗)에게 이봉랑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관상이 좋고 미인이라는 말에 손자 조돈(趙惇)의 배필로 점을 찍었다. 그래서 양아들인 효종(孝宗)에게 손자며느리의 면접을 보게 하였다. 효종이 이봉랑을 보니, 미모가 뛰어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는 지라 곧 마음에 들어 자신의 셋째 아들인 조돈과 배필을 맺어준다. 이봉랑은 처음에는 기품을 지키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궁중 내의 암투에 있어서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조돈(趙惇) 즉 훗날의 광종(光宗)이 형들을 제치고 황위를 양위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아내 이봉랑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송나라의 황제 자리는 황제가 죽은 후에 황위를 계승하던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으면서 양위를 했다. 고종은 35년간 집권한 후 효종에게 양위하고 25년을 태상황제로 있으면서 실권을 놓지 않았다. 효종도 27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다가 광종에게 물려주고 5년간 태상황제로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손자인 조돈이 마누라 이봉랑의 도움으로 태자로 책봉되고도 18년이 지나서 황제가 된 것이다.
머리가 허옇게 세어지는 마흔에 이르도록 태자로 지냈다. 태상황제인 고종이 죽고 2년 후에 효종이 태상황제로 물러나면서 조돈이 광으로 즉위를 한 것이다. 이러니 궁궐의 모든 권력은 광종의 것이 아니라 마누라 이봉랑의 것이 된다. 권력의 싸움은 태상황제 효종과 이봉랑의 싸움이 되고, 광종은 대리인으로 전투에 투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녀는 부자지간을 이간질하여 남편이 시아버지의 문병도 못 가게 하고, 심지어 태상황제가 붕어하자 장례도 못 치르게 하였다. 광종이 상주가 되는 것도 거절하여, 결국 하는 수없이 태황태후 오씨가 그를 대신하여 상주역할을 했단다. 그녀의 뻘 짓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자.
“네 손이 참으로 예쁘구나! 이렇게 예쁜 손은 궁궐에서 처음 보는 것 같구나!” 어느 날 광종이 궁궐 후원의 연못 둘레를 산책하다 손을 씻은 후 옆에 있던 궁녀가 수건을 건넬 때 그녀의 손을 잡으며 감탄조로 말했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황후 이봉랑에게 이 광경을 보고 말았다. 질투의 화신인 그녀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리 없다. 황후에게 그 장면을 들킨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광종은 공교롭게 그날 밤 봉랑의 처소에 들렸다. 봉랑은 전과 달리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손이 예쁜 년의 처소로 가실 것이지 어째서 이곳으로 오셨어요.” 광종은 낮의 일이 번개같이 뇌리를 스쳐갔다. “아! 낮에 그것을 가지고 하는 말이요? 그냥 농 삼아 한번 해본 소리인데 뭘 그걸 가지고 황후답지 않게 화를 내시오?” “어서 그년한테로 가세요.” 봉랑의 표정은 살 얼음장 같으나 몸은 어느새 광종을 사로잡을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백합 빛의 한쌍의 유방과 초승달을 엎어 놓은 듯한 또 다른 한 쌍의 엉덩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차림으로 손수 술상을 차렸다. 광종도 싫지 않았다.
며칠 후 황후가 광종에게 식합(食盒)을 보내왔다. 광종이 그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바로 그 궁녀의 두 손이 들어있었다. 광종은 기절할 듯이 크게 놀랐다. 그 후 광종은 황후궁으로 가기를 극도로 꺼렸으며 대신 황귀비를 총애하며 그의 거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황귀비는 조돈이 공왕이던 시절에 아버지 효종이 그에게 내린 첩실이다. 황씨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조돈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조돈이 등극한 후에는 귀비에 올라, 더욱 총애를 받은 것이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황후가 아니었다. 어느 날 이봉랑은 광종이 천제(天祭)를 드리러 궁을 비운 사이, 억지로 트집을 잡아 황귀비에게 곤장 3백대를 치라고 명한다. 이제 겨우 수십대를 쳤을 때 가엾게도 황귀비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황귀비가 갑자기 병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광종은 이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황후가 몹시 두려웠으므로 그 자세한 연유를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홀로 슬퍼했다.
광종의 또 다른 두 비빈인 장귀비, 부첩여도 모두 이봉랑에 의하여 궁밖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일반백성에게 시집간다. 게다가 천제를 드리는 날 난데없이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촛대를 넘어뜨려 큰 불이 붙는 바람에 광종의 공포와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이런저런 연유로 광종은 정신병에 걸리고 말았다. 광종의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국사를 보지 못하는 틈을 타 그녀가 국사를 간섭했고 그 교만함이 날로 더해갔다. 그녀의 치맛바람은 하루도 잘 날이 없다. 대신들은 그녀 앞에 꼭두각시이고 종실의 어른인 조여우(趙汝遇)도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시할아버지 고종과 시아버지 효종, 그리고 남편 광종 등 3종(三宗)을 손 안의 공기 돌 다루듯 해 사실상 보이지 않는 여제나 다름이 없다.
봉랑은 조돈과 결혼하여 영국부인으로 황궁에 입성했으나 곧이어 정국부인으로 승진했다. 또한 그녀는 아들 조확(趙擴)을 낳아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해 3년 후에 마침내 황태자비로 책봉되었다. 그녀는 미모 못지않게 재치와 권모술수에 능란했으며 방중술 또한 탁월했다. 당 현종이 방중술 교습소인 귀아원(貴牙院)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양귀비에 영혼을 빼앗겼듯이 광종도 봉랑의 방중술에 정사(政事)는 뒷전이다. 오늘도 병석에 있는 아버지 효종(孝宗) 문병을 안 가서 대신들의 닦달에 떠밀려 내일 당장 가겠단 말을 하고 봉랑을 찾았다. 시할아버지(高宗)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태상황인 시아버지도 최근 실타래처럼 얽힌 나랏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종은 봉랑을 찾으면 3박 4일을 지낸다. 광종이 가려해도 봉랑이 놓아주지 않는다. 사내가 여자의 술 실력을 따르지 못했다. 술뿐만이 아니다. 방중술에선 양귀비를 뺨쳐 낮밤을 가리지 못하고 황홀경에 빠졌다. 중궁전에서 3박 4일 지낸 황제는 예외 없이 넋이 빠져 열흘 정도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신들도 황제의 동태를 보고 누구와 방사를 했는지 알아맞춘다. 중전과는 산송장, 다른 궁녀와는 역발산이 되어 국사를 보기 때문이다.
“어서 드세요. 오늘은 용안이 안 좋아 보이네요? 어디 편찮은 데라도 있으세요?” 봉랑은 광종이 할 말을 미리 차단하려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버님이 폐하를 위해 보약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어요? 태상황께선 평소 폐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계시거든요. 혹여 그 약에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떻게 하죠? 권력이란 부자지간에도 나눠 갖지 못한다 하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소리요! 중전의 생각이 너무 과한 것 아니요?” 광종의 단호한 태도에 대가 세기로 장안에까지 소문이 난 봉랑이지만 멈칫하며 기가 꺾이는가 하더니 들었던 술잔의 술을 단숨에 마셔버린다. 광종은 봉랑의 정보력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 대전에서 한 이야기가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그녀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겁이 덜컥 나기까지 했다. “이제 대전에서 벌어진 일은 그만 잊으시고 저와 술이나 드세요.” 그녀는 자작으로 술을 넘쳐나게 따라 마셨다. 술도 봉랑이 더 세다. “드셨으면 저도 한잔 주세요. 저는 자작을 했더니 벌써 가슴이 뛰네요.” 상아보다 더 흰 얼굴이 금방 연분홍 봉선화 빛으로 물들었다. 내일 태상황을 문병하기로 대신들과 약속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광종은 그녀가 권하는 대로 술잔을 비웠다. 그녀는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생각하여 좀처럼 꺼내지 않는 비파를 꺼내 켜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파 솜씨는 신기(神技)에 가깝다. 전한 시대 왕소군(王昭君)의 재능을 전수받은 듯이 그녀의 비파소리에 광종은 넋을 잃는다. 특히 춤추며 비파를 켜면 광종은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봉랑은 이러한 전법을 꼭 필요할 때는 적절히 펼친다. 오늘은 그녀의 아들 조확을 태자로 정식 책봉하라는 애원 아닌 명령을 하려는 것이다. 겉으론 베개 밑 송사이나 사실상 대리청정이니 명령이나 다름없다. 광종이 비파소리에 맞춰 그녀의 주위를 돌자 그녀의 옷이 하나하나 발아래로 떨어졌다. 희미한 촛불에 비친 그녀의 나신은 선녀다. “이제 그만 자자. 더 이상 못 참아” 사내는 나신의 여자를 죽부인 안 듯 쓸어 안아 침실로 향했다. 비파가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너는 나를 홀리려고 천상에서 내려왔느냐?” 오늘따라 광종의 여의봉은 역발산 되어 그녀를 압도했다. 봉랑은 오랜만에 화끈한 황제와의 운우지정에 밤새는 줄 모르고 비파 켜듯 몸을 달구었다.
이제 남송(南宋)은 황제의 장인 이도의 세상이다. 일 년 전만 해도 지방의 절도사에 불과했으나 딸이 황후가 되자 세상이 바뀐 것이다. 전국에서 인사 청탁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고 재물 또한 창고가 넘쳐났다. 태어날 때부터 영리했던 봉랑은 황궁의 안주인으로서 한 치도 어김없이 행세한다. 광종은 허울만 황제일 뿐 그녀의 허수아비다. 그녀는 궁궐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궁 밖에서도 거칠 것이 없다. 그녀의 조상 3대를 왕으로 봉했으며 묘도 황실 태묘를 능가할 정도로 호화롭게 꾸몄다. 그녀가 어쩌다 애경사가 있어 친정에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전국의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 관직을 얻거나 은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닭도 개도 승천한다’는 말이 이를 뜻했음이다. 그녀는 보석을 좋아했는데 특히 옥을 유별나게 사랑했다. 봉랑이 친정집에 한번 가면 옥이 수북이 쌓인다. 입신양명이나 승진을 희망하는 인사들이 소문을 듣고 선물공세를 편다. 황궁엔 보는 눈이 많으므로 비교적 눈이 적은 황후의 친정집을 선택한 것이다. 이같이 옥 등 금은보화가 쌓이자 그녀의 친정에선 황후가 자주 와주길 간청까지 하게 되었다. 절도사 이도는 꿈과 야망을 이루었다.
그녀의 질투는 황제도 누구도 막지 못했다. 궁녀의 손을 잘라 황제에게 보낸 후론 황제는 여인 보길 돌처럼 본다. 그렇게 된 것은 좋은데 다른 더 큰 문제가 생겼다. 황제는 황후를 보면 위축이 되어 여의봉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자연적으로 중궁전 출입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같은 사정을 모르는 봉랑은 황제에 대한 기다림이 원망으로 비화되었다. 황후는 황제와 황홀한 운우지정을 위해 갖가지 교태와 체위를 연습까지 했다. 황후 체면에 귀아원에 갈 수 없어 교본을 보고 연습을 하기도 하고, 교관을 황실로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또한 황제와 체격이 비슷한 내시를 극비리에 불러 실제로 갖가지 체위를 적나라하게 실연(實演)하다 그만 사고까지 냈다. 고환(睾丸)만 제거한 내시의 물건이 홀연히 되살아 나 황후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남녀는 정신을 잃고 황홀경을 즐겼으나 그녀의 배 위에서 노를 젓고 있는 사공은 황제가 아닌 환관임을 알았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간 뒤였다. “황후마마 황공하옵니다. 제 것이 그만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소인을 죽여주옵소서.” “아니다. 네 죄가 아니다. 걱정할 것은 없고 오늘 일은 너와 나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계산이 빠르다. 고환 없는 내시이므로 임신할 염려가 없어 다행이다. 속으론 얼떨결에 오랜만에 몸을 풀었으니 기분이 좋았으나 겉으론 말을 못 하고 보석을 듬뿍 주어 입단속을 시켰다.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황제가 올 때를 기다리며 운우지정을 연습하다 그만 몸이 달아올라 밤마다 잠을 설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시를 그때마다 부를 수도 없어 그녀의 음심은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
내시도 그날 이후 황후의 화려한 육체로 죽음의 제국에 깊이 잠들어 있던 남성이 되살아 나 세상이 바뀌었으나 걱정이 태산이다. 지나가는 궁녀만 봐도 시도 때도 없이 벌떡벌떡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황후 침실을 한걸음에 찾아갈 수도 없어 그는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다. 자나 깨나 황후가 아닌 여인 봉랑이 배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단숨에 황후 침실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같은 궁궐 안의 거리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고 멀어 그는 시름시름 상사병(相思病)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을 실증이나 하듯 ‘황후와 내시의 사랑’이 입에서 입으로 날개를 단 듯 궁궐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석양 무렵 술이 거나하게 취해 중궁전으로 온 황제는 다짜고짜 “황궁에 떠도는 소문이 참이오?”라며 산양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 눈으로 으름장을 놨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이년이 거짓말을 해도 믿게 해라. 황궁 사람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고 있었어… 이 개만도 못한 년아 어디 사내가 없어 내시하고 붙어?” 광종의 손이 화장을 하던 봉랑의 옷을 번개 같이 낚아챘다. 겉옷 바람의 황후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의 온몸은 사내의 입술 자국으로 여기저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한 쌍의 유방과 비너스 언덕엔 방금 지나간 흔적같이 생생하다.
“이년아 이렇게 네 몸에 흔적이 뚜렷한데도 발뺌을 할 거냐?” 광종의 발길이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녀는 썩은 나무 등걸처럼 나동그라졌다. 광종은 알몸을 드러낸 채 성난 독사같이 쳐다보는 황후를 한동안 내려다보다 휙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궁궐의 상황이 이러하니 태상황태후와 생각 있는 신하들이 광종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조확(趙擴)을 황제 영종(寧宗)으로 올린다. 속담에 “집안에 악처가 있으면, 횡액을 당한다.”는 말이 있다. 광종은 태상황제로 물러나서 6년간 생존한다. 이 기간 동안 이봉랑도 자연히 함께 버림받는다. 그녀가 아무리 표독하더라도, 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1200년 칠월, 이봉랑은 고독 속에 죽는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지략으로 부와 명예를 욕심대로 획득했으나 여자로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