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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un 26. 2023

(37) 적장을 생포하여 녹인 – 장비

★ 18禁 역사 읽기 ★ (230626)

오늘의 주인공은 제목만 보면 삼국지 즉 삼국시대 촉한(蜀漢) 유비(劉備)의 휘하(麾下)에 있던 장수인 장비(張飛)로 오해할 수 있겠다. 이 매거진 <18금(禁) 역사 읽기 Herstory>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류의 절반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이 역사에서 어떠한 지위로 어떻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는지 흥미 위주로 그 비사(秘史)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장비 이야기야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흥미가 덜하다. 18금(禁)의 약간 야(野)하면서 이불 밑에서 일어나는 원초적인 인간 욕망을 자극하는 그런 이야기가 더 인간적이다. 오늘의 주인공 장비(莊妃)는 삼국지의 장비(張飛)처럼 힘이 세고 우락부락한 무장(武將)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얼굴이 절세미인으로 예쁘고 나긋나긋하기로는 수양버들이 꼬리를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 귀한 몸을 던져 용맹하고 강직하고 신출귀몰한 적장을 한방에 사로잡아 임금과 나라에 충성을 한 욕망의 화신이었다. 그녀는 1613년 몽골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몽골 여성이다. 성씨는 박이제길특(博爾濟吉特)씨이고, 이름은 포목포태[(布木布泰)이다. 몽골어로는 <보르지기트 붐부타이> 인데, 칭기즈칸의 동생 카사르 집안으로 몽골 황족이다. 만주족은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에 우호세력으로서 몽골족과 화친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통혼정책(通婚政策)을 썼다. 누루하치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 청 태종 역시 몽골 여성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녀는 1625년에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인 홍타이지의 측복진(侧福晋: 측실)이 되었다. 복진(福晉)이란 몽골어로 푸진인데, 칸 즉 황제의 부인(夫人)이란 뜻이다. 작위의 순서는 적복진(嫡福晉), 측복진(侧福晋), 서복진(庶福晉 )의 순서이다. 그 후 1636년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청태조(淸太祖) 황제를 칭하면서, 그녀는 5궁 중 말단인 차서궁(次西宮)의 주인이 되어 영복궁 장비(永福宮 莊妃)에 봉해졌다. 그래서 장비로 불리었다. 남편인 홍타이지의 정식 황후 즉 대복진(大福晋: 정실 중 으뜸 부인)이자 황후인 효단문황후(孝端文皇后)는 그녀의 고모이고,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다는 후궁 민혜공화원비(敏惠恭和元妃) 보르지기트 하르졸은 친언니이다. 따라서 청 태종은 남편이자 고모부이며 형부(兄夫)인 것이다.

때는 명나라 말기인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의 명운이 다하던 시기이다. 중원 대륙의 진출을 끊임없이 노리던 청(淸)과는 전쟁이 그치질 않았다. 청 태종(太宗) 숭덕(崇德) 6년(1641), 청의 대군이 또다시 금주(錦州)를 공격하자 금주를 수비하던 장수 조대수(祖大壽)는 급히 계료총독(薊遼總督) 홍승주(洪承疇)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소식을 들은 홍승주는 순무(巡撫) 구민앙(丘民仰)에게 총병(總兵) 여덟 명과 보병(步兵) 13만, 기병 4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출병하여 금주를 지원하게 했다. 수 차례의 혈전을 치르면서 명나라 군대는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용맹하고 기동력이 뛰어난 청군의 거듭된 공격에, 홍승주의 병력은 급격히 감소되어 제대로 반격을 하지 못하고, 송산성(松山城) 안에서 지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청군은 명군이 버티고 있는 송산성을 물샐틈없이 봉쇄했다. 성내(城內)의 양식이 점차 줄어들고 명조(明朝)의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자 홍승주가 곧 독 안에 든 쥐가 될 것이라 판단한 청 태종은 송산성을 함락하고 명군을 대파하는 동시에 홍승주를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홍승주는 일찍이 문과에 합격한 문신이었으나 지방의 순무(巡撫)로 근무할 때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농민반란을 효과적으로 진압하여 일약 유능한 장수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청 태종이 홍승주를 기어이 사로잡으려 했던 까닭은 홍승주가 유능한 총독이자 원수(元帥)였던 이유 때문이다. 이에 청 태종이 홍승주를 얻어 선봉으로 세우기만 하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으로 화북(華北)을 점령하고 남하하여 중원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물인 만큼 절대로 도망치게 해서도 안 되고 전장에서 사망하여 순국(殉國)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청 태종은 반드시 그를 사로잡아 청조(淸朝)를 위해 힘을 다하게 해야만 했다. 청 태종이 홍승주를 사로잡으려 했으나 이는 결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태종의 부하 장수 이영방(李永芳)이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홍승주의 부장(副將) 하승덕(夏承德)은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그에게 고관봉록(高官俸祿)을 약속하면 기꺼이 청을 위해 일하려 할 것입니다. 하승덕이 자신이 수비하는 지역에서 길을 내주면 우리가 몰래 입성하여 그로 하여금 홍승주를 감시하다가 방비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그를 사로잡으면 될 것입니다.” 그의 계책에 청 태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로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성내에 있는 하승덕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내기 위해 서쪽에 있던 청군이 유인작전으로 퇴각하는 척했다. 과연 명군이 성에서 나와 청군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청군은 다시 군사를 돌려 공격하자, 명군이 성내로 퇴각할 때 병사 하나를 명군으로 가장(假裝)하여 비밀 서신을 지참시켜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청군의 편지를 받은 하승덕은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성이 함락되어 죽거나,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판에 청나라에서 고위 관직을 제의하니 그 유혹을 마다할 사람이 드믈 것이다. 이튿날 홍승주는 성 위의 병사들을 순시(巡視) 격려하고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청군이 성으로 진입했다는 급보(急報)를 받았다.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게 된 홍승주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는 곧 보검을 꺼내 자신의 목을 베려했지만 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다시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고 목을 매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그의 허리를 잡았고, 이어서 병사 몇 명이 달려오더니 그를 포박했다. 허리를 잡은 자는 다름 아닌 자기의 부장(副將) 변절자 하승덕이었고, 그를 포박한 자는 오래전에 청에 투항한 이영방이었다. 

사로잡힌 상태에서 자살마저 불가능함을 깨달은 홍승주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청군에게 끌려갔다. 홍승주를 사로잡은 것을 확인한 청 태종은 몹시 기뻐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적의 군영에 사로잡혀 와 두 손을 포박당했으면서도 장군으로서의 기질과 위엄 그리고 문인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 청 태종은 홍승주가 비범한 인물임을 첫눈에 알아보고, 자신의 신변을 지키는 중요한 장수 가운데 하나인 범문정(梵文程)에게 직접 그의 포박을 풀어주고 술자리를 권했다. 술자리에서 홍승주는 이렇게 말했다. “승패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이다. 오늘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변절자 하승덕과 너희들 손에 걸려들었을 뿐이다. 죽음 외에는 달리 요구할 것이 없다. 내게 투항을 요구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꿈도 꾸지 말아라!” 옆에 있던 범문정이 말했다. “홍 총독, 모름지기 영웅이라면 시대의 요구나 정세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소이다. 총독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다 망해버린 명조(明朝)를 위해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와 함께 대업을 도모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홍승주가 대답했다. “내 신조를 말해주지. 내 사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투항이라는 단어는 없다.”

이튿날 다시 범문정이 자신의 군막(軍幕)에 술자리를 마련해 놓고 홍승주를 불렀다. 범문정은 시대적 요구나 정세를 아는 자가 영웅이라는 등의 공허한 언사가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명조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으며 청의 흥기는 하늘의 뜻임을 강조하면서 투항(投降)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문정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웅변을 토해도 홍승주는 일언반구 대꾸가 없었다. 그는 항변하지도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술을 한 모금 입에 넣고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 그에게 범문정의 웅변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음이 다급한 태종은 홍승주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일에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는지 물었다. 범문정은 아직도 아무런 심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고 사실대로 보고했다. 기분이 매우 좋았던 태종의 얼굴빛이 약간 흐려졌다. 중원으로 진격할 때 홍승주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자신의 계획이 뜻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좋았던 기분도 이내 가라앉고 말았다. 하루 종일 좋은 묘책이 없을까를 고민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협박(脅迫)과 회유(回諭)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 돌부처 같은 요지부동의 마음을 돌려서 자기의 막료(幕僚)로 쓰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청 태종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아직 해가 아직 중천인데, 영복궁(永福宮)에 있는 장비(莊妃)의 처소에 들었다. 태종에게는 비빈(妃嬪)들이 많았지만, 가장 젊고 요즘 들어 정이 많이 가는 사랑하는 후궁은 장비였다. 장비는 미모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리에 밝고 총명했으며 지략도 뛰어났다. “폐하 대낮에 어인 일인지요?” 《손자병법》을 한가롭게 읽던 장비는 예고도 없이 나타난 태종을 보자 단장을 하지 않은 몸 매무새로 당황스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맞았다. 그런데 수심 가득한 태종의 얼굴을 대한 장비는 몹시 의아했다. “어허 여자가 《손자병법》을 보고 있었느냐 그거 잘됐구나. 남자 장수나 고관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혹시 네가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고?” 장비는 태종의 말에 더욱 의구심이 일어 어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왜 그러느냐? 술상이나 어서 가져오너라. 화장하지 않고 흐트러진 네 모습이 더 유혹적이다.”라고 말하며 장비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알몸을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었다. 장비는 사내의 마음을 홀리듯 우선 시원한 냉수 한 잔을 주었다. “이런 냉수도 좋다마는 술을 가져오너라.” 태종은 냉수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술상을 재촉했다. “성질도 급하셔라! 그렇게 빨리 드시고 싶으셨으면 미리 연락을 하셨어야지요.” 장비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일사천리로 술상을 준비한다. “어제저녁은 어느 년 하고 드셨기에 아직 숙취(宿醉)가 덜 풀리셨어요.?” 장비의 눈이 뱁새눈이 되어 태종을 흘겨보며 술상을 가쁜하게 사내 앞에 놓았다. 

사내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앞섶 사이에 통 채로 보이는 허여멀건 한 쌍의 유방에 꽂혔다. “너는 투정을 부리니 더 예쁘구나.” 태종은 술상을 놓고 일어서려는 장비를 끌어당겨 안았다. 여인이 버둥대 보지만 맹금류(猛禽類) 발톱에 찍힌 토끼모양 금방 저항을 포기했다. 사내 손은 어느새 여인의 치마 속을 들쳐 깊숙한 샅을 더듬고 있었다. “내가 언제 너를 두고 딴 계집한테 가더냐? 어제는 대신들과 안팎으로 어려운 국사(國事)를 논의하고 대취하도록 마셨느니라. 이젠 몸이 전과같이 움직여지지 않는구나.” 장비가 조심스레 “혹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종은 장비의 그 말에 불현듯 미인계를 떠올렸다. 그러나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술이나 마시자.” 사내는 역시 타는 속을 술로 다스리려는 듯이 단숨에 들이켰다. 태종은 암탉이 병아리 품듯 홑 겹의 옷만 걸친 장비를 품었다. “정치 얘기는 그만하자.” 사내는 난마(亂麻)처럼 얽힌 국정을 여인에게 분풀이하듯 상의도 벗기기 전에 성난 말머리를 숲 속의 꿀 연못으로 돌진시키며 운우지정을 몰아쳤다. 여인은 아랫도리를 맡긴 채 웃옷을 벗어던지며, 태종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자고로 영웅은 미인을 좋아하고, 미인을 좋아하지 않으면 영웅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홍승주는 예외라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태종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는 여색을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즐기는 편이란다. 

그의 시종 김승(金升)이 나에게 알려줬지. 김승의 얘기에 의하면 홍승주는 성격이 강인하여 핍박(逼迫)과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핍박할수록 더 강하게 나온다고 하더군. 그의 유일한 약점이 여인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니 미인을 이용하여 그를 설득한다면 이마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들여보낸 미녀들을 즐기지 않은 것은 물론,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미녀들을 하나하나 비웃었고, 웃으면서 들어간 미인들은 전부 울상이 되어 나왔단다. 모든 미인들이 그에게 조롱을 당했다니 달리 방도가 없지” 실제로 홍승주에게 만주의 미인은  물론 강남의 훌륭한 미인들을 보냈지만 그는 미인들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감옥에 홀로 갇혀 있으면서 식음을 전폐(全廢)하고 죽겠다는 오기를 부렸다. 이러한 사연을 들은 장비는 머릿속에 문득 아주 대담하고 도전적인 계략이 한 가지 떠올렸다. “폐하! 제게 계책이 하나 있기는 한데…….” 장비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태종은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라면서 은근히 다그쳤다. “폐하, 저는 순전히 폐하를 위해 이런 계책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폐하께서 이리도 초조해하시니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해서 제가 한번 홍 총독을 만나 투항을 권유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요.”라고 말하면서 괄약근과 허리를 있는 대로 움직여 사내의 쾌락의 도를 높여줬다. 장비는 자신의 미인계를 이용하여 홍승주가 청에 투항하도록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태종은 장비에게 화를 냈으나, 끝내 장비는 그를 설득하여 남몰래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이튿날 장비는 아침부터 장미욕(薔薇浴)을 하고 사향(麝香)을 몸 깊은 곳에 지니고, 아름답게 치장을 마쳤다. 태종은 사랑하는 애첩(愛妾)을 남에게 주자니 아깝지만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감옥의 열쇠를 친히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옥을 지키는 간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 놓았다고 일러주었다. 장비는 손에 옥주전자를 하나 들고 살며시 침실 뒷문을 빠져나와 홍승주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홍승주의 귓가에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처형하러 온 병사인 줄 안 그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미인이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야릇한 향기가 홍승주의 코를 찔렀다. 지금까지 숱한 미녀들을 보아왔던 홍승주이지만, 이번만은 다른 부인의 모습을 보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홍승주는 이제까지의 다른 미인계와 마찬가지인 줄 알고 장비를 거절하려는데, 이런 그를 보고 장비가 말했다. “홍총독님 어떻게 개죽음을 하시려고 합니까? 명과 청 두 나라에서 모두 존경하는 홍총독께서 이렇게 의미 없이 죽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홍승주는 가물가물하는 의식에서 여인의 음성에 귀가 맴돌았다. 1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음성 같기도 하고, 고향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 같기도 하고, 군막에서 데리고 놀던 총희의 음성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벌써 닷새째 물 한 모금도 안 드셨다면서요? 듣던 대로 대단한 어른이네요.” 홍승주는 몽롱한 상태에서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눈과 코를 의심했다.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선녀가 장미향을 피어 올리며, 큰 칼을 쓰고 있는 자기 앞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봤다. 꿈이 아닌 생시다. 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를 설득하려 들지 마라. 벌써 많은 계집들이 왔다 갔으나 나는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너도 헛수고 말고 어서 썩 물러가라!” 홍승주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포효하듯 외쳤으나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장비는 속으로 역시 듣던 대로구나 하며 한걸음 더 바싹 다가섰다. “제가 찾아온 것이 바로 총독님의 죽음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총독께서 단식으로 죽음을 재촉하고 계신다는 말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기더군요. 식음을 전폐하여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아마도 10 여일이 지나야 숨이 끊어질 겁니다. 또한 죽음이 임박하면 허기로 인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몸이 더워졌다 차가워졌다 할 것입니다. 그 고통을 덜어드리고자 하는 인간적인 배려에서 독약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 약을 드시면 빨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장비의 아름다움 모습과 향기에 한번 보고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홍승주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그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신을 칭송하고 측은해하는 대단히 자극적인 장비의 웅변에 그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 마시겠소. 어서 약을 내게 주시오.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내 고통을 덜어주려는 아가씨의 갸륵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되겠군요.” “포로가 된 적국의 장수라도 장수의 체면은 지켜줘야 품격 있는 국가라 생각되어 폐하께 말씀드려 제가 비상(砒霜)을 가지고 왔으니 이걸 마시고 장수답게 저 세상으로 가시지요! 저는 아가씨가 아니라 태종의 총희(寵姬) 장비입니다.” 술잔에 조금 따라서 건네자 홍승주는 주저 없이 그것을 단숨에 마셨다. 너무 황급히 마시다 보니 독약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홍승주가 옷소매로 입을 닦기 전에 장비가 먼저 손수건으로 그의 입을 닦아주었다. 독약을 먹은 홍승주는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속에 불이 붙는 듯했고 기운이 샘솟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취한다는 말처럼 그의 몸과 마음은 금세 술기운으로 정욕이 불타고 있었다. 기운이 솟은 홍승주는 재빨리 주전자를 빼앗아 남아 있는 나머지 독약을 입에 쏟아 넣었다. 그런데 이상한 반응이 일어났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피를 토하고 거꾸러져야 할 상황에 사내는 정신이 새벽녘 같이 서서히 맑아지며 또렷해짐을 느꼈다 그의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고 장비가 말했다. “장군, 아마도 하늘이 장군께서 일찍 세상을 하직하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군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도 진실을 말씀드리지요. 저는 태종의 애첩입니다. 장군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명나라 조정에서는 장군의 가문에 어떤 혜택을 내리게 되나요? 기껏해야 장수로서의 지조를 지켰다는 공명첩(功名帖)이나 내리겠지요. 장군께서 이러시는 것이 쓸어져 가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장군께서 잠시 청나라에 머무시면서 명나라와 청나라를 화해시킨다면 두 나라에 모두 유익한 일이 아닐까요? 명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한 통 써 보내세요. 몸은 청나라에 있지만 마음은 명나라에 있으니 암암리에 명(明) 나라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장군께서는 정당하게 청나라에 머무실 수 있게 되고 가족들도 무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제까지 마신 것은 독이 아니라 술입니다. 술을 드셨으니 안주도 드셔야지요.” 장비가 내놓은 방금 요리해 온 쇠고기에서 풍기는 냄새가 코를 마비시키고, 잠들어 있던 색욕조차 용솟음쳤다. 홍승주도 끼니는 건너뛰어도 맘에 드는 계집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만주족 제일 미녀인 장비가 술과 안주, 그리고 몸을 던져 미인계를 쓰고 있는 것이다. 

홍승주는 5일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신 빈속에 독주를 마셔 취기가 올라 여인의 장미향 체취에 넋을 빼앗겼다. 이에 홍승주가 말했다. “청나라 황제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제가 청나라 황비(皇妃)의 이름을 걸고 장군의 안전을 보장하고, 총독의 편지를 반드시 명나라 황제의 손에 전달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홍승주가 잠시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장비가 얼른 다가가 그를 감방 안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그런 다음 홍승주의 웃옷을 벗기고 천천히 그의 뱃속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굶다가 갑자기 먹으면 속이 탈  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여인의 손길로 애무를 받아보지 못했던 홍승주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장비를 품에 꼭 껴안았다. 여기서는 곤란하다며 여인은 슬쩍 몸을 빼서 몽롱한 사내를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낚아 대기하고 있던 백마에 태워 심양(瀋陽)에서 그리 멀지 않은 행궁(行宮)인 도화궁(桃花宮)로 질주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홍총독 우선 목욕을 하시고 며칠 푹 쉬시고 복잡한 문제는 그다음에 천천히 생각하시죠! 제가 그동안 정성을 다해 홍총독을 수발해 드리겠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온 홍승주는 욕망부터 풀고 싶었다. 장비도 젊은 장수의 몸에 반했다. 남편인 태종도 전장에서 단련된 몸이라 나무랄 데 없는 사내였으나, 역시 나이가 자기보다 20년 많은 나이인지라 홍승주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장군의 몸매가 정말 늠름하옵니다. 주전자에 독을 담았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서로 상대방에게 반해 서둘러 욕정을 채우고 술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서야 찬찬히 상대방 얼굴을 살폈다. “제가 홍총독에게 몸을 맡기기를 잘했네요! 홍총독 같이 신망 높은 분이 청(淸)의 조정에 계셔야 나라가 바로 서지요.” 홍승주는 장비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욕정을 채우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 안주를 허겁지겁 먹었다. 식욕(食慾)·수욕(睡慾)·성욕(性慾)은 인간의 3대 기본 욕구이다. 어느 것이 소중한지는 사람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홍총독 그렇게 드시면 체하옵니다. 이제 여기는 우리 둘 뿐이니 마음 놓고 드시고 편히 쉬세요.” 장비의 얼굴은 복사꽃 빛깔로 발갛게 상기되었다. “나만 먹어서야 되겠소?” 홍승주는 몸을 섞은 여인이라서 그런지 벌써 평교(平交)의 말을 하면서 손수 따른 술잔을 여인에게 건넸다. “저는 홍총독의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명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적국인 우리 청에서까지 그 덕망에 경의를 표하니 어떤 분이기에 그토록 인품이 높은가 했는데, 지금 이렇게 직접 뵈오니 평판대로이네요.” 장비는 진심으로 감격한 듯 눈시울을 적셔가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도 입에 발린 말이란 것을 알면서도 여자의 말이 싫지 않아 다시 그녀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한족 여인과 만주족 여인의 체취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어딘가 억센 듯하면서도 강인하고 초원의 야생적 체취(體臭)가 전쟁에서 잔뼈 굵은 홍승주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황비에게 첫눈에 반했소!” 목욕을 하고 급한 욕망의 불을 끄고 안주까지 넉넉히 먹은 사내는 허기진 욕망을 채울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긋한 마음으로 여체를 다시 농락하기 시작한다. “황비 몸은 명품 중 명품이오. 한족에도 미인이 많으나 황비가 단연 돋보이는 미인이요.” “홍총독의 덕망은 중원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홍승주의 덕담에 장비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황비는 언제 황궁으로 가오?” “홍총독께서 가지 말라면 여기 눌러앉지요. 황제께서 저를 홍총독에게 보냈으니 장군이 거두어 주시면 당연히 같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장비는 홍승주 가슴에 수북이 나있는 검고 야성미 넘치는 털을 장난기 어린 손짓으로 쓰다듬으며 거침없이 응수했다. 홍승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답고 신비로운 꽃향이 풍기는 전설상 미인인 향비(香妃)에 홀린 것 같은 마음을 아무리 추스르려 해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을 본 장비는 재빨리 육탄공세를 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제가 이제 마음에 안 드세요?” 장비는 첫 번째와는 전혀 다른 화려하고 고혹적인 자세로 사내의 욕정을 북돋우며 스스로도 쾌락을 먼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마음껏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리하여 위세와 무력에도 굴하지 않던 명나라의 훌륭한 선비이자 영웅이었던 홍승주는 변경을 지키는 전쟁터에서 죽지도 않고, 목에 들어온 칼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고관봉록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으나, 결국 향기로운 치마 밑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무쇠로 만든 칼은 막기 쉬워도 가녀리고 부드러운 육탄 공세는 당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결국 청나라 황비를 따라 태종을 만나게 되었다. 청 태종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태종은 홍승주가 투항하자 그를 참사관에 임명했다. 그의 지위는 태종이 아끼던 대신 범문정과 대등한 수준었다. 태종은 또한 미색을 밝히는 그에게 미녀 열 명을 하사했다. 홍승주는 감격해 마지않았고 청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홍승주를 귀순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장비는 태종의 냉대를 받기는커녕 공신으로 추대되어 더욱 큰 총애를 받게 되었다. 홍승주가 생포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명나라의 숭정제(崇禎帝)는 그가 죽음으로 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 믿었다. 숭정제가 그를 추모하는 사당을 짓고 제단을 쌓아 성대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차에 밀서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잠시 청나라에 투항하는 척하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숭정제는 그의 가솔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결국 숭정제도 장비의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남편 태종의 허락을 받아서 홍승주와 합방(合房)을 한 이래 그녀는 밤이면 밤마다 혼자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엄중한 궁궐로 홍총독을 매일 불러 들일수도 없고 정말 기나긴 밤을 한숨으로 지새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홍승주 한 사람에게 만 매달리지 않고 당시 황제 다음의 높은 벼슬을 갖고 정치에 참여 중인 정친왕(鄭親王) 지르하랑(濟濔哈郞)과 예친왕(睿親王) 드르곤(愛新覺羅)을 번갈아 불러 젊음을 만끽한다. 불혹을 넘긴 여인은 만주족 특유의 강인한 체력과 난숙한 몸에서 폭발하는 욕정을 밤마다 승화시킬 사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자기의 어린 아들의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담보도 필요했던 것이다. 인격으로야 홍승주만 한 사내가 없으나 그도 어언 불혹을 넘긴 나이로 장비의 욕정을 채우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달은 셋으로 나누어, 상순(上旬)엔 정친왕 중순(中旬)엔 예친왕과 그리고 하순(下旬)에는 홍승주와 욕망의 불꽃을 피운다. 세 사내들이 각기 개성이 강해 황태후로선 색다른 성찬(性饌)을 즐기는 것이다.

1643년에 황제 홍타이지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52세의 나이로 급사함으로 청 왕조는 후계자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 실권자는 황제의 이복(異腹) 동생인 도르곤인데, 스스로 황제가 되거나 후계자를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홍타이지의 아들 후계자로서 도르곤 보다 3살 위인 장남 호오거가 경쟁자로 부상했으나 실력면에서는 도르곤이 한 수 위였다. 자기의 동복(同腹) 형제인 아지거와 도도는 각기 팔기군을 거느리고 있어서 도르곤의 막강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호오거도 홍타이지의 장남으로서 부자승계권이 있었고, 아버지 청 태종의 직계 팔기군을 장악하고 있었다. 도르곤은 외곽 팔기군을 배경으로 하여 유목민족의 전통인 형제상속을 주장했다. 합의를 보지 못하면 실력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르곤은 후계자를 결정하는 황실 의장회의에 절충안을 내놓았다. 유혈 충돌을 피하고, 호오거의 주장대로 부자승계 원칙을 수용하되 황위는 호오거가 아닌 제3의 인물로 하자고 했다. 말하자면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고 제3의 인물로 옹립하여 양측에서 섭정을 하면서 서로 견제를 하자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홍타이지의 정식 후비(后妃)인 오궁(五宮) 소생 중 장남인 9 황자 푸린(福臨)을 황위에 올릴 것을 주장했다. 대신에 호오거를 지지하는 정친왕(鄭親王) 지르하란과 자신을 각각 좌우 섭정왕으로 삼아서 정무를 보는 조건을 내걸었다. 도르곤은 자신이 은밀히 사랑하는 형수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고, 자신보다 세 살 위인 경쟁자이자 조카인 호오거를 배제하였다. 의정왕 대신회의를 주관하던 예친왕 다이샨은 도르곤의 절충안에 동의하였다. 이리하여 1643년 10월 8일, 푸린은 성경(盛京 : 심양) 고궁 대정전(大政殿)에서 겨우 6세의 나이로 황위에 오르니 이가 제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이다

장비는 태종이 붕어(崩御) 한 후 늦잠을 즐긴다. 청나라에선 무서울 것이 없다. 태종이 살아 있을 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욕정이 솟아오르면 불쑥불쑥 찾아와 욕심을 채우고 갔으나, 이젠 자신이 남자 사냥을 하니 느긋하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 오늘은 그 달의 아직 상순(上旬)이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을 하고 있다. 세 사내 중 제일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만주족 출신 중 제일 높은 직위까지 오르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친왕과 황음(荒淫)을 즐기는 날이다. 해가 황궁 추녀에 걸리자 정친왕은 비밀통로를 통해 궁녀의 안내로 장비 앞에 나타났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아요.” 황태후는 손아래 남자이며 신하이지만 잠자리에선 깍듯이 서방으로 예우를 갖춰주었다. “황태후마마 황궁 뜰엔 목련화가 활짝 피었는데 마마의 모습이 목련화 보다 더 품위 있어 보입니다.” “그래요. 품위만 있고 사랑스럽지는 않아요?” 열댓 살 아래 사내에게 품위 있어 보인다는 말은 장비에겐 늙음을 미화(美化)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새벽부터 꽃단장을 했던 것이다. “품위 있다는 말엔 고혹적(蠱惑的)인 매력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친왕은 황태후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재빨리 분위기를 바꿨다. “황태후마마 오늘은 더 예뻐 보여서 제 마음이 급하옵니다.” 사내는 준비된 술상에서 손수 술을 따라 마시고 여인에게도 권했다. 여인은 속옷을 입지 않고 겉옷만 걸친 차림이다. 양쪽 허리까지 터진 겉옷은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그들은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이내 한 덩어리가 되어 침상이 무너져라 힘을 쏟으며 쾌락의 정점을 향해 질주했다. “정친왕 내가 나이 들었어도 아직은 쓸만할 것이오. 한 눈 팔지 말고 자주자주 오시오!” 장비는 두 눈을 이글거리며 젊은 사내를 온몸으로 녹여버리려는 듯 온몸이 용광로(鎔鑛爐)처럼 뜨겁다. 황후의 침실은 어느새 드넓은 초원이 되어 발정 난 암말과 수말의 힘찬 용트림과 질주가 숨 막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세월은 그달의 하순(下旬)이 다가왔다. “홍대감 오세요!” 황태후는 목련 같이 희디흰 앞가슴을 반쯤 드러낸 채 홍승주를 침상에서 맞았다. 태후궁의 궁녀들은 두 남녀가 만나면 하는 짓이 뻔해 그들이 지근거리에 닿으면 재빨리 자리를 피해 줬다. 늘 상 황태후가 몸살이나 국사를 논하자며 침실로 오라 해 와 보니 국사는 간데없고 몸을 풀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바쁘신 걸 오시라 했나요? 사실 오늘이 제 생일이라 홍대감이 제일 생각이 나서 오시라 했습니다. 폐하께서 붕어하신 후 제겐 홍대감 밖에 더 있겠어요? 그리고 저의 먼 조상도 한족(漢族)이에요.” 장비에게서는 술 향기와 장미향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중순에 예친왕이 다녀 간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홍승지를 부른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 달에 세 사내를 비밀리에 번갈아 갈아가며 욕정을 채우고 있으나, 날짜를 앞당겨 부르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홍승주는 왠지 어두운 그림자와 알 수 없는 드리움을 느꼈다. “황태후마마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소신은 항상 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심에 감읍(感泣)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홍승지는 명나라 장수로서 청나라에 투항한 후 고관대작을 맡고 호의호식(好衣好食)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주족의 최고 권력자이자 최고의 미녀와 밤마다 진한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젊은 정친왕과 예친왕이 치고 올라와 언제 어떻게 찬밥 신세가 될지 몰라 최근 들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는 상황이다. 

눈치 빠른 장비가 그런 분위기를 놓칠 리가 없다. “홍대감 아니 당신 요즘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이네?” 말을 마친 황태후는 뭔지 모르지만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홍승지를 끌어안으며 뜨겁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의 얼굴은 물에서 방금 나온 부용꽃 같았다. “아니옵니다. 소신은 황태후 마마가 돌봐주셔서 언제나 행복이 충만하옵니다.” 사내는 수양버들 같이 나긋나긋한 여인의 허리를 힘껏 쓸어안으며 불룩 나온 두 유방을 얼굴로 비볐다. 장비는 사내를 맞을 땐 언제나 속옷이 없다. 한 손으로도 쉽게 걷어 올리도록 대리석 같은 알몸을 대기시켰다. 사내의 오른손이 여자의 다리사이로 갔을 땐 벌써 골짜기엔 사랑을 갈망하는 진한 꿀물이 흐르고, 목이 마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다. 그런데 천하의 홍승지 손이 평소와 달리 떨고 있었다. 장비의 그곳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그의 손 떨림을 간파한다. “홍대감 떨고 있어요? 내가 너무 서둘렀지요!” 우리 술 한 순배 더 하고 천천히 얘기를 나눕시다. 너무 서둘면 홍승지의 물건이 맥을 못 추고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다. 그런 상황은 장비로서는 더욱 못 견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존감과 그 물건의 사기를 북돋우어 주어야 성난 말처럼 자기를 만족시켜 준다는 걸 그녀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연리지 같이 붙었던 그들은 술상을 가운데 놓고 쫓기듯 술잔을 비웠다. “사실 당신한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오늘 오시라 했어요.” 결국 장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내가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은 거예요! 며칠 전에 생리를 끝냈는데 오늘 당신하고 잠자리를 하면 당신과 꼭 닮은 아들을 낳을 것 같아서요. 내가 죽은 후에라도 한족인 당신 같은 아들을 하나 두고 싶은 거지요. 홍대감이 아직 40대 후반이니 홍대감의 씨를 받으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지금 나야 아직 밭이 튼튼하고 건강하니 좋은 아이가 나올 거예요.” 

근엄하게만 보였던 황태후의 모습이 갑자기 순진한 자식을 탐하는 평범한 아낙처럼 보였다. “왜 제 얘기가 황당해요? 황제인 순치제 어미의 명예를 걸고 하는 얘기예요. 어서 술을 더 드시고 오늘 늦둥이 하나를 만듭시다. 문무를 겸비한 홍대감이 그렇게 해서 명실상부한 나의 사내가 되시고 순치제의 아비가 되어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의 황부(皇父)로 부르도록 하십시다.” 여인의 진지함에 사내는 기가 질려 젖먹이처럼 어미가 하는 대로 따라 하듯 그림자 같이 움직였다. 늦봄의 하늘에선 초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여인의 침실 상단엔 황금빛 찬란한 갑옷과 청룡이 장식된 장검이, 그리고 봉황 깃이 꽂힌 투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장비가 전장에서 입고 쓰고 착용했던 것들이다. 옛날 태종이 전장에 나아가면 장비도 따라나섰다. 장검을 휘둘러 적장과 싸우지는 않았으나 계집 앞에 사내들이 용감해지는 심리를 부추겼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장비가 따라가면 대승을 하고 몸 상태가 안 좋아 참전하지 않으면 패하거나 전과가 신통치 않았다. “홍대감, 저 갑옷과 장검을 늦둥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욕심이 지나친 가요? 아마 저 세상으로 가신 폐하도 질투가 아닌 칭찬을 하실 거예요. 폐하께서 이 나라를 얼마나 아끼셨고 홍대감 같은 인재를 얼마나 목말라하셨는지 아세요? 그러니 자기 여자인 나까지 당신한테 보낸 것이 아니겠어요?” 사내는 사방에 황금촛대에서 비치는 불빛에 드러난 여인의 알몸은 주(周) 나라의 목왕(穆王)이 순행 나아갔다 우연히 만나 노닐다 길을 잃었다는 전설의 미녀 서왕모(西王母)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장비는 사랑을 뜨겁게 하다 말고 사내의 가슴을 밀어내고 벌거벗은 채 벌떡 일어나 갑옷을 들고 와서 “이것을 한번 입어보세요. 제 체격도 만만치 않아 크게 적지 않을 거예요.” 홍승지는 장비가 시키는 대로 갑옷을 입었다. 여인은 흡족한 듯 장미 빛 웃음을 지으며 “역시 홍대감의 늠름한 모습은 정말 훌륭하네요.”라며 갑옷을 벗겨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어머, 당신 물건이 아직도 일어나 있네요. 마음이 안심이 되신 모양이지요. 아까는 힘이 약해서 장군감을 못 만들까 걱정했는데. 이 모습이 진정한 홍대감의 본모습이 아니겠어요?” 여인은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왼손엔 사내의 여의봉을 잡고 오른손으론 사내의 엉덩이를 잡아당기며 욕망의 탑을 끝없이 쌓았다. 홍승지는 처자식이 있는 명나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청 세조 즉 순치제의 황부로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장비의 삶에 양념이 되었다.

야사(野史)에 따르면 1643년 홍타이지가 사망할 때 당시 장비는 32살의 젊은 나이고, 그의 아들 푸린은 겨우 6살이었다. 황제 홍타이지가 생전에 황위계승자를 정해두지 않았고, 또 유조(遺詔)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청나라의 조제(祖制)에 따라 팔기(八旗)의 기주들이 공동으로 논의하여 최고의 현자(賢者)를 추대하여 황제에 올려야 했다. 그리하여 종실귀족들은 모두 황위를 노리게 된다. 황위계승을 둘러싸고, 만주족 귀족내부에서는 격렬한 투쟁이 벌어질 것은 뻔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두 명의 경쟁자는 홍타이지의 장남인 하오거(豪格)과 홍타이지의 이복동생인 도르곤이었다. 황위계승 투쟁 초기에 장비의 아들 푸린은 어려서 아예 후보군에 포함되지 못했다. 도르곤은 청나라 설립자 누르하치의 14째 아들이고, 정백기(正白旗)의 기주(旗主)이며,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이었다. 장남 하오거는 황장자로서 숙친왕(肅親王)이었고, 정남기(正藍旗)의 기주이다. 도르곤은 양백기(兩白旗, 정백기와 상백기)의 지지를 받았고, 하오거는 정남기와 양황기(정황기와 상황기)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황권의 부자계승이라는 원칙적인 면에서도 앞섰다. 그러나 도르곤은 군사력 면에서 우위에 있었고, 장비와는 옛사랑의 그림자가 있었다. 효장황태후 장비가 입궁하기 전의 이름이 대옥아(大玉兒)이고, 예친왕이던 도르곤과 시골에서 함께 자랐다. 죽마고우였으며, 서로 사랑했다고 하였다. 대옥아가 장성한 후,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자 황제 홍타이지가 그녀를 입궁시켜 비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르곤은 장비와 이루지 못한 사랑의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장비의 입장에서도 자기 아들이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경우 아직 젊은 자기의 신세도 미래가 없었을 것이기에 도르곤과 연맹이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도르곤과 하오거의 방휼지쟁(蚌鷸之爭)으로 장비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는다. 선두 주자 두 사람의 피 티기는 혈전으로 누가 대권주자가 되어도 서로 수긍이나 인정을 하지 않고 정권이 늘 불안정할 것이 뻔했다. 또 그 시기에 명나라와 국경 충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의 조기 안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3의 대안을 찾자 장비의 아들 푸린을 황위에 올리고 양측이 설정을 맡아서 균형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옛 연인이었던 장비와 도르곤은 푸린을 황제에 앉히고, 도르곤을 섭정왕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기로 암중 결맹을 맺는다. 장비는 또한 덕망이 있는 다이샨(代善)과 지르하랑(齊爾哈朗)을 설득하여 푸린을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한다. 푸린도 홍타이지의 아들이다. 그래서 양황기도 입장을 바꿔 푸린을 지지하게 된다. 하오거는 고립된다. 결국 6살의 푸린이 황위에 올라 순치제가 되고, 도르곤이 보정(輔政)이 된다. 장비는 황태후에 오른다. 그 후 도르곤은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되찾는다. 장비와 결혼을 한 것이다. 유목민의 형사취수(兄死取嫂)의 관습이니 나무랄 것이 없다.

1687년 효장황태후인 장비가 사망한다. 향년(享年) 75세였다. 청 태조 누르하치로부터 남편  홍타이지, 아들 순치제와 손자 강희제 등 네 명의 황제들과 도합 62년간 황궁에 있었다. 그녀는 순치, 강희 두 황제를 길렀고, 순치, 강희가 즉위하는데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장비는 죽은 지 37년간이나 정식으로 능에 매장되지 못하고 있었다. 청 나라 때의 법도에 따르면, 황후 혹은 태후는 황제 능묘의 바깥에 후릉을 별도로 짓는다. 효장태후 즉 장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능묘는 아주 특수하다. 효릉의 홍장(紅墻) 바깥에 있는 것이다. 원인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설은 나름대로 이치에 맞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장비는 자기의 권세를 위하여 또는 아들의 황위를 위하여 할 수 없이 당시의 권신인 시동생 도르곤에게 개가를 했다. 개가한 여인이 어찌 전 남편과 함께 묻힐 수 있겠는가. 이 설에 반대되는 다른 설도 있다. 장비의 안장 문제는 그녀 자신의 생각이고 그녀 자신이 결정한 것이지, 다른 신하들은 전혀 이에 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의 장황언(張煌言)이라는 항청(抗淸) 운동을 주도하던 학자가 <건이궁사(建夷宮詞)>라는 시 10수를 지었는데, 그중 제7수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그는 명나라가 망하자 동남지방에서 반청(反淸) 활동을 한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다가 강희제 시기에 체포되어 죽었다. 따라서 청나라와 장비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어서 다음과 같이 읊은 것이다. 그는 악비(岳飛), 우겸(于谦)과 함께 서호3걸(西湖三杰)로 불린다.

상수상위합근존(上壽觴爲合卺尊) / 장수를 비는 술잔이 합환주의 잔이 되고

자녕궁리난영문(慈寧宮裏爛盈門) / 자녕궁 안에는 찬란한 빛이 문에 가득하네

춘관작진신의주(春官昨進新儀注) / 예조의 관리들이 어제 새로운 의례를 올리니

대례궁봉태후혼(大禮躬逢太后婚) / 큰 행사는 태후의 혼례를 치르는 것이라네.

1901년 중국의 사학자 장태염이 남명(南明)의 장황언(张煌言)의 수초본 <장창수집(张苍水集)>을 출판하였는데 거기에도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 

역사적 진실을 정확히 파헤칠 수 없으나 그녀가 남편인 청 태종과 합장(合葬)되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황궁에서 황제 4명을 거쳤고, 그중 두명을 자기 손으로 세웠으니 누가 감히 그녀의 뜻에 어긋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손자인 강희제는 그녀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할머니의 말이라면 다 따랐다. 자신의 능묘를 어디로 할 것인가는 아마도 장비 자신의 뜻일 것이다. 장비는 병세가 위중한 때, 손자에게 당부를 글로 써서 남긴다. 강희제에게 남기는 유언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죽은 후 특별히 당부한다. 태종 문황제의 관은 안장된 지 오래 되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움직일 수 없으니, 지금 합장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다른 능을 만든다면, 백성들을 많이 동원하게 될 것이고, 합장의 뜻에도 맞지 않는다. 나는 너희 부자를 그리워하여 멀리 떠나기 싫으니, 허베이성 탕산시 준화(遵化)에 묻어 달라. 그러면 나는 마음을 놓겠다.” 뒷일은 그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옹정2년, 즉 1724년 장비가 죽은 지 37년이 되는 해에 조정은 정식으로 장비의 능묘를 소서릉(昭西陵)이라 명명한다. 남편 홍타이지의 무덤은 심양(瀋陽)에 있고, 자기보다 먼저 간 아들 순치제의 무덤이 있는 청동릉(淸東陵) 그곳 담장 밖에 영원한 안식처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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