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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학교 폭력과 사이버 조리돌림

금동수의 세상 읽기(210303)

by 금삿갓

요즘 연일 학창 시절이나 과거에 유명인(有名人)으로부터 폭력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폭로(暴露)가 미디어를 달구로 있다. 마치 몇 년 전 사회적 지도층의 성폭력(性暴力)과 성희롱 등에 대한 미투(Mee-too) 운동처럼 각계각층(各界各層)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이돌 가수, 연예인, 방송 PD, 가수 지망생 등 연예계 관계자들로부터 스포츠계로 폭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현직(現職) 법무부 장관이 고교시절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陰性) 폭력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집단 패싸움을 한 혐의로 학교를 중퇴를 했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적이다. 본인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과거 현역 의원 시절 사법시험 존치(存置)를 호소하려는 고시 준비생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나오는 걸 보면 폭력 근성(根性)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예계나 스포츠계는 사람의 인성(人性)보다는 개인의 재능과 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연예·스포츠계가 유독(惟獨) 과거 학교 폭력에 연루된 사례가 많을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과거 어릴 때 철없이 저지른 행위였다고 치부(置簿)하기엔 피해자들의 아픔은 현존(現存)하는 것이다. 애써 잊거나 잊으려 노력하면서 살아가는데 가해자들의 얼굴이 다시 보인다면 상처가 덧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가해자가 유명인이 되어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정신적 고통이 가중(加重)된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그들이 미디어에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만인(萬人)으로부터 각광(脚光)을 받는 현실이 더욱 참기 힘든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신체적·정신적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요즘 같은 언택트(Untact) 시대에는 사이버상의 언어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행위인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 또한 매우 큰 문제이다.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은 비대면성(非對面性)·익명성(匿名性)·확장성(擴張性)의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물리적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서 가해행위 자체에 죄책감(罪責感)이나 죄의식(罪意識)이 약하여 더 격렬하고 일상화되어 쉽다. 또한 이것은 학교·직장·군대·모임 등 집단생활을 하는 공간에서 많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학교폭력과는 달리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인터넷 공간에서도 당하기도 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3년에 실태 조사를 해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사이버 불링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① 사이버 스토킹(Cyber Stalking) : 계속적으로 말, 글, 사진, 그림 등을 보내서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誘發)하는 행위

② 사이버 비방(Cyber Slander) : 특정인에게 욕설, 비속어(卑俗語), 모욕적(侮辱的)인 메시지 등을 전달하거나 유포(流布)하는 행위

③ 이미지 불링(Image Bullying) :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진이나 동영상, 글 등을 유포하는 행위

④ 아이디 도용(ID Theft) : 남의 아이디를 이용하여 마치 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행위

⑤ 사이버 갈취(Cyber Extortion) : 특정인에게 돈, 사이버 머니, 캐릭터 등을 요구하거나 데이터 소액 결제 등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행위(와이파이 셔틀이나 게임 아이템 셔틀 포함)

⑥ 사이버 성폭력(Sexting) :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성적인 모욕을 하는 행위

⑦ 사이버 감옥(Cyber Jail) : 단체 대화방에서 특정인을 나가지 못하게 막거나 퇴장하면 계속 초대해서 비방(誹謗)이나 욕설을 하는 행위

⑧ 사이버 배제(Cyber Exclusion) : 특정인을 친구 목록에서 빼거나 친구 신청 거부 또는 배제하는 행위

⑨ 플레이밍(Flaming) : 특정인에 대한 논쟁 또는 분란을 일으켜 그가 문제 있음을 드러나도록 하는 행위

⑩ 사이버 명령(Cyber Order) : 특정인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

⑪ 안티 카페(Anti-Cafe) : 특정인을 욕설, 비방, 따돌림하기 위해 사이트나 게시판을 만들고 운영하는 행위

⑫ 사이버 왕따놀이(Cyberbullying Play) : 같은 그룹 안에서 구성원들끼리 번갈아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욕설, 비방 모욕하는 행위

우리나라의 경우 카카오톡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카카오톡을 이용한 사이버 불링 사례가 많다. ① 특정인을 단톡방에 초대한 뒤 폭언(暴言)을 하는 ‘떼카’, ② 단톡방에 피해자를 못 나가게 하거나 나가도 계속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 감옥’, ③ 단톡방에 따돌림의 대상만을 남겨둔 후 대화방을 모두 나가버리는 ‘카톡 방폭(房爆)’, ④ 단톡방에 참여하는 모두가 한 사람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카톡 유령(幽靈)’, ⑤ 다수가 한 사람에게 의미 없는 메시지를 퍼부어 휴대폰을 마비시키는 ‘카톡 저격(狙擊)’ 등이 있다.

2004년 1월에 제정된 학교폭력 예방법이 해를 거듭할수록 개정되고 강화되었지만 학교 폭력의 정도가 눈에 띄게 근절(根絶)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남자 중고교에서 주로 나타나던 학교 폭력이 남녀를 불문하여 나타나고, 초등학교 이하의 연령대로 저변이 확대되어 가는 경향이라서 심각하다. 또한 폭력의 양상(樣相)이 점차 음성화 되어서 부모, 지도교사나 관계 기관이 예방이나 대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이다. 집단이 모여서 생활하는 학교나 군대 등에서 이러한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문제일까?

역사를 거슬러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도 요즘의 학교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던 기관이 있었으나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실록이나 문집 등에 성균관과 관청에서 요즘의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까다롭고 힘든 통과의례가 나타나 있다. 성균관 유생(儒生)들의 통과의례인 신방례(新榜禮) 또는 접방례(接房禮)는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지은 <무명자집(無名子集)>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 책에 반중잡영(泮中雜詠) 220수를 수록해 놓았다. 말하자면 성균관의 유래와 유생들의 생활을 읊은 시 220 수이다. 그에 따르면 사마시(司馬試)에 새로 합격한 생원·진사는 처음 성균관의 재사(齋舍)에 입재할 때 신방례를 치른다. 선배들을 불러 자신의 재력으로 음식과 술을 마련하여 대접을 하여야 했다. 또한 성균관에서 생활할 때 선배가 후배를 부르면 동료들이 지명당한 후배의 방을 둘러싸고 성과 이름을 부르면서 “면책(面責)이오.”라고 한다. 그들은 후배의 옷을 휘어잡고 밀었다 끌었다 하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홉 번을 넘어뜨리다가 호명한 선배 앞에 이르러서야 놓아준다. 이는 후배에게 일부러 곤욕을 주기 위한 행동으로 예로부터 전해오는 풍속이라고 한다. 그러나 숙종 때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의 기록에 의하면 성균관의 신고식이 신참들을 꽤나 괴롭힌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이것이 싫어서 벼슬을 포기하고 낙향했다. 수년 전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그 시대의 생활을 재현한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다.

유생들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면 신고식은 더욱 엄혹하다. 문과 합격자 중 장원(壯元)을 제외한 대부분은 수습기간을 거치는데 사관(四館) 즉 예문관·성균관·교서관·승문원에 배치가 된다. 이를 분관(分館)이라 한다. 이렇게 배치를 받은 신참은 해당 관청의 재직 선임뿐만 아니라 전직 고참들에게도 신고식을 해야 했다. 자신의 신상을 적은 요즘의 명함에 해당하는 자지(刺紙)를 돌리는 회자(回刺)를 하여야 한다. 이때 선배나 선배의 종들조차 후배인 신참에게 돈을 요구했다. 또한 이 종이가 고급의 비싼 종이라서 무명 한필로 겨우 종이 세 장을 살 정도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선배들은 이렇게 뜯어내어 각자 자기 관청의 잔치 비용으로 충당하곤 했다. 교서관(校書館)은 복숭아꽃이 필 때 홍도연(紅桃宴), 예문관(藝文館)은 장미가 필 때 장미연(薔薇宴), 성균관은 여름에 솔 그늘에서 벽송연(碧松宴)을 열었다. 이것은 약과이고 본격적인 신고식인 통과의례는 더했다.

신고식은 허참례(許參禮)로 시작되어 면신례(免新禮)로 끝을 맺는다. 신고식의 음식은 품목당 홀수 단위인 3·5·7·9로 준비하여 여러 차례 치러야 했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준비하자면 부잣집 자제도 어려운데 가난한 선비들은 정말 가산을 탕진할 수준이었을 것이다. 물질적 부담 외에도 정신적·육체적 가학행위(加虐行爲)도 심했다. 초도(初度)라고 한 달가량 내리 숙직을 시키고, 희학(戲謔)이라고 해서 연회에서 별의 별짓을 시켰다. 얼굴에 먹 장난을 하는 묵희진퇴(墨戱進退), 검댕이 손을 씻은 물 마시기, 경홀(擎忽)이라는 석가래 들기, 관복 입고 연못에서 고기잡이, 순함(順銜)·역함(逆銜)이라는 벼슬이름 오르내리 외우기, 얼굴에 오물 뒤집어쓰기 등을 시키거나 행하지 못하면 집단 구타를 하였다. 관청별로 예문관의 통과의례가 기율(紀律)이 가장 엄했고 물건을 준비하는 징구(徵求)도 다른 부서보다 갑절이 넘었다.

이런 폐해의 한 단면이 성종실록 성종 6년(1475) 8월 4일에 기록되어 있다.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 안진생(安晉生)이 다음과 같이 아뢨다. “유생(儒生)들이 처음 과거(科擧)에 오르면 사관(四館)에 나누어 속(屬)하게 하고 허참(許參)·면신(免新)의 예절이 있으며 한림별곡(翰林別曲)을 본관(本館)의 모임에 노래하는 것은 옛 부터 내려오는 풍속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새로 된 검열(檢閱) 조위(曹偉)가 연회(宴會)를 베풀어 신(臣) 등을 맞이했는데, 음식 중에는 금지된 고기가 있었으며, 또 기생(妓生)과 공인(工人)들이 장고(杖鼓)ㆍ피리[笛]ㆍ필률(觱篥)을 가지고 왔기에, 신(臣) 등이 다만 그들로 하여금 필률(觱篥)만 불고 노래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이는 금주령을 이기고, 농번기에 소를 잡아먹고, 면신례(免新禮)를 과하게 한 죄목으로 참가자들이 곤장을 맞거나 삭탈관직이 되고 유배형을 당했다. 그럼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없어지지 않고 다른 관청이나 심지어 지방의 아전, 종들에게 까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벼슬의 높낮이와 상관없었다. 늦깎이 급제자는 벼슬이 높아도 통과의례를 하지 않으면 벼슬이 낮은 선배들이 관직을 불러주지 않고 신래(新來)로 부르고 선생안(先生案 : 역임자 명부)에 넣어주지도 않았다. 단종 1년(1453) 9월 19일에 승문원에서 신참 정윤화가 통과의례를 하다가 죽자 면신례에 참석했던 선배들을 파면하거나 태장에 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음서(蔭敍)로 대사간(정 3품)에 오른 이세좌(李世佐)가 뒤늦게 문과에 급제하여 유가(遊街) 행차하는데 종 6품 주부(主簿)들이 길을 비키지 않고 도리어 이세좌가 말에서 내려 인사를 안 했다고 논란이 되었다. 또 정 2품인 도총관(都摠管) 변종인(卞宗仁)이 훈련원에 점검 차 갔을 때 그가 허참례(許參禮)를 하지 않았다고 최하위 직급인 권지(權知)들이 영접을 하지도 않은 모욕을 당했다. 통과의례의 폐해가 심하자 과감하게 면신례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사례도 있었다. 평안감사를 지낸 박이창(朴以昌)은 급제 후에 한림원 즉 예문관에 발령받았으나 50일간 면신례를 안 하고 버텼고, 율곡(栗谷) 이이(李珥)도 면신례를 피해서 파직되기도 했다.

세종 24년(1442) 7월 21일에 유생(儒生)들이 대거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편 조선의 성균관과 동·남부 유생들 26명이 단체로 삼각산에 있는 덕방암(德方庵)에 야유회를 갔다. 말이 야유회이고 당시 유생들이 절을 찾아서 분탕질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유생들의 산사(山寺) 출입이 금지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당하여 사전에 대비한 사찰 측에서 인근의 승려들을 규합하여 매복을 하고 있다가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 일로 당사자는 물론 교육 책임이 있는 성균관의 교관(敎官)과 학관(學官)마저 구속시켰다. 세종이 학교 폭력에 아주 단호한 대처를 한 셈이다.

연산군 6년(1500) 8월 29일과 중종 36(1541) 12월 29일에 면신례(免新禮)의 폐해를 기록하면서 중 국이나 오랑캐 나라에도 없는 풍속으로 파악했다. 이는 오로지 고려 말 조정이 혼탁한 시기에 권세가의 자제들이 벼슬에 입문할 때 교만 방자한 위세를 꺾기 위해서 시작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문명 시대에 만들어진 점토판에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라고 새겨져 있고, 그리스의 <일리아드>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다.”라고 적혀있다. 동양의 고전인 <한비자(韓非子)>에도 “요즘 애들은 부모의 사랑·주변의 행실·스승의 지혜라는 세 가지 미덕을 보고도 끝내 움직이지 않고, 다리의 털 하나 바뀌지 않는다(今有不才之子, 父母之愛 鄕人之行 師長之智 三美加焉, 而終不動, 其脛毛不改.)”라고 했듯이 신구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 이런 갈등이 오는 것일까?

철없이 굴던 학창 시절의 폭력과 조리돌림이니까 지금 용서되거나 용서해주자는 말은 아니다. 폭력은 폭력으로서 죄 값을 치르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치유를 해 주는 게 맞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0~20여 년이 지난 과거의 학교 폭력이나 괴롭힘 사례들이 우후준순(雨後竹筍) 격으로 폭로되는 사회 현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들이 현재 또는 미래의 학교 폭력을 근절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현상은 현 집권세력들의 영향이 크다고 보인다. 이 정부 들어 미래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과거사에만 매달리거나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편 가르기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 만연(蔓延)된 탓이라. 이들의 행동에도 폭력의 근성이 내재되어 있다.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칭(俗稱) 친문 세력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SNS 폭탄을 쏟아붓는 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심지어 같은 당의 소속 선량(選良)들까지 이런 조리돌림이 무서워서 양심에 따른 바른말이나 정책을 펼칠 수 없는 정치 풍토이니 소시민이야 말해 무얼 하겠는가? 건전한 대화와 토론이 아니라 집단 린치에 해당하는 사이버 조리돌림이 일상화된 세상이 두렵다.

학교폭력이나 스포츠계 폭력은 근절하려면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배우는 학생이라고 처벌이 느슨하고 어물쩍 눈감는 풍토를 비집고 폭력의 독버섯은 자라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이 음성적이고 교묘하기 때문에 교사가 아닌 전문적 경찰이나 검찰에서 적극 대처해야 한다. 교사의 훈육(訓育)이나 학교의 교칙(校則)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현행법을 강력하게 개정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방법뿐이다. 학교 앞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민식이법’을 만들었는데 더 심각하고 음성적이며,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교 폭력에 대해서 이렇게 관대한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정학·퇴학을 두려워서 폭력 상습자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하지 않는다. 강력한 처벌과 격리만이 그 싹을 자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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