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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팬데믹 상황에서 선조의 지혜를 다시 보다

금동수의 세상 읽기(210225)

by 금삿갓

<코로나19>의 창궐로 전 세계가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다. 각 나라마다 필요한 대책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즉효(卽效)는 보이지 않고, 공복(公僕)이나 우리 백성(百姓)들 모두 힘겨운 삶을 영위한다. 모든 나라는 전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이동의 통제와 격리, 경제적 극복을 위한 양적 완화와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긴급재난 지원금>이라는 조치를 내렸지만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들 스스로 적극적 실천과 이행 그리고 나눔이 필요하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에 대비하여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말고 민간 차원의 대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선조들은 이러한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 바로 <향약(鄕約>이라는 사회적 공동체의 실천 약속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선현들이 시행했던 사회적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향약은 중국 송나라 때 섬서성 남전현(藍田縣)에 살았던 학자 여대충(呂大忠)·대방(大防)·대균(大鈞)·대림(大臨) 4형제가 문중과 향리를 위한 자치행동 규범으로 만든 것인데, 남전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 <남전 여씨향약>으로 불려졌다. 그 후 주자가 수정하여 <주자 증손 여씨향약>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5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김문발(金文發)·이선제(李先齊)·정극인(丁克仁)·강응정(姜應貞)과 같은 인물들이 일종의 수신규범(修身規範)으로 삼았다. 그 후 중종 11년(1516년)에 경북 성주에서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이 월회당(月會堂)을 짓고 제자들에게 <여씨향약>을 본격적으로 강론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가 이를 조정에 공론하자 이듬해인 1517년에 왕명으로 전국의 향리에 널리 시행토록 하였다.

여씨향약은 4가지의 강령으로 되어있다. 내용을 보면, 덕업상권(德業相勸 : 덕업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과실은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예의로 서로 교류한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환난 때는 서로 돕는다)이다. 덕업(德業)의 덕(德)은 선행을 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이고, 업(業)이란 가정을 꾸리는 일과 학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속(禮俗)이란 예절과 좋은 풍속을 말한다. 따라서 덕업상권(德業相勸)과 예속상교(禮俗相交)도 중요하지만 과실상규(過失相規)와 환난상휼(患難相恤)이 지금의 상황에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서로 규제할 과실(過失)에는 범의지육과(犯義之六過 : 의(義) 로움을 저버리는 6가지 과오)와 불수지오과(不修之五過 : 자기 수양을 어기는 5가지의 과오)가 있다. 6가지 과오를 살펴보면 이렇다. ①후박투송(酗博鬪訟 : 술주정, 도박, 싸움질, 소송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인 이 시국에 술 마시고 주정하거나 도박, 싸움, 쟁송을 일삼은 행위는 근절하여야 한다. ②행지유위(行止踰違 : 예를 어기거나 위법한 행동거지)이다. 즉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확진자의 자진 격리 어기는 경우와 집단 모임 참가 여기에 해당된다. ③행불공손(行不恭遜 : 행실이 공손하지 못함)이다. 대중 시설을 이용할 때 기침이나 재채기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것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과오이다. ④언불충신(言不忠信 : 충직과 신의가 없는 말)이다. 확진자의 통계나 진단 치료 방안에 대한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역학조사를 위한 확진자의 동선 파악에 비협조적인 것이 과오이다. 또한 가짜 뉴스나 허위정보의 생산은 국민들에게 혼란을 준다. ⑤조언무훼(造言誣毁 : 무고나 헐뜯는 행위)이다. 확진자에 대한 개인 정보나 관련 자료를 이용하여 상대나 제3자를 무고하거나 경제적, 인격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곡 과오이다. ⑥영사대심(營私太甚 : 심한 사리사욕 추구)이다. 온 나라가 혼란스럽고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를 매점매석하거나 독점하는 행위, 생필품의 과도한 사재기 등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 사욕을 경계해야 한다.

5가지 수양 과오는 ①교비기인(交非其人 : 온당하지 않은 사람과 교유)이다. 즉 감염 위험지역을 방문하여 사람을 만나거나 다중 이용시설이나 집단시설을 무단출입 등이 이 과오이다. ②유희태타(遊戲怠惰 : 놀고 게으름 피우기)이다. 본인의 건강만 믿고 유흥업소를 전전하거나 몸에 이상이 느껴져도 진단을 받지 않고 병을 키우거나 전염을 확산하는 과오이다. ③동작무의(動作無儀 :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전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행동 수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④임사불각(臨事不恪 : 삼가지 않은 일처리)이다. 다중 이용시설의 종사자나 보건 방역 종사자는 업무 처리에 있어서 신중하고 삼가 해서 해야 한다. ⑤용도부절(用度不節 : 용도에 맞춰 절약)이다. 팬데믹(Pandemic) 상황은 경제 위기가 같이 발생하므로 규모 있는 삶과 나눔의 삶이 필요하다.

환난상휼(患難相恤)은 서로 도와야 할 7가지의 환난이 있다. ①수화(水火 : 수재와 화재), ②도적(盜賊 : 도적 피해), ③질병(疾病), ④사상(死喪 : 사망과 상사), ⑤고약(孤弱 : 외롭고 약함), ⑥무왕(誣枉 : 무고로 벌 받음), ⑦빈지(貧之 : 가난)이다. 팬데믹(Pandemic) 상황은 질병, 사상, 고약, 가난이 겹쳐서 일어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돕고 나눔을 실천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2020.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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