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辛夷塢(신이오) / 신이오
금삿갓의 漢詩工夫(251125)
辛夷塢(신이오) / 신이오
- 王維(왕유)
木末芙蓉花
목말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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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끝의 부용화
山中發紅萼
산중발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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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붉은 꽃을 피웠네.
澗戶寂無人
간호적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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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 외딴집 인적도 없는데
紛紛開且落
분분개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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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이 피었다 또 지는구나.
辛夷塢(신이오)는 在於網川山谷而與裵廸(재망천산곡이여배적)으로 遊其中(유기중)하야. 賦詩爲樂也(부시위락야)라. 辛夷塢者(신이오자)는 倘或辛夷花多發而得名歟(상혹신이화다발이명여)아. 未可知也(미가지야)라. 時有木芙蓉花爛熳於山中(시유목부용화란만어산중)하야. 紅萼之燦然(홍악지찬연)이 可愛(가애)하고 此花不以無人(차화불이무인)으로 爲嫌(위혐)하고 自開自落(자개자락)하야. 任其天機(임기천기)하니 此亦皎潔淸高之意(차역교결청고지의)를 可見也(가견야)로다.
신이오는 망천산 계곡에 있다. 친구 배적과 그 속에 노닐어 시를 지으며 즐긴 것이다. 신이오라는 것은 혹시 신이오꽃이 많이 피어서 얻은 이름인지 잘 모르겠다. 당시에 목부용 꽃이 산중에 흐드러지게 피어 붉은 꽃받침이 찬란하여 사랑할 만 하였다. 이 꽃이 사람이 없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스스로 피었다가 스스로 져서 천지조화에 맡기니 이 또한 희고 깨끗하고 맑고 높은 뜻을 볼 수 있다.
* 辛夷塢(신이오) : 왕유의 별업 망천(輞川)의 지명인데, 신이화가 풍부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산시성 남전현에 있다. 신이화는 낙엽교목으로 꽃이 처음 피었을 때 붓처럼 뾰족하여 목필(木筆)이라고도 하며, 초봄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응춘화(應春花)라고도 한다. 꽃은 자줏빛과 흰색이며 연꽃처럼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목련이다.
* 芙蓉花(부용화) : 연꽃의 다른 이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부용(芙蓉)은 아욱과 낙엽관목으로 8~10월경 꽃이 피는 식물이나 연꽃의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으나 , 여기에서의 부용은 목부용(木芙蓉), 나무 연꽃 즉 목련꽃을 말한다.
* 澗戶(간호) : 산골짜기 물가 계곡속의 외딴집.
* 萼(악) : 꽃 바침 악. 여기에서는 꽃 봉우리를 말한다.
* 王維(왕유) : 자 마힐(摩詰). 산시성[山西省] 출생. 9세에 이미 시를 썼으며, 서(書)와 음곡(音曲)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아우인 진(縉)과 함께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특히 기왕(岐王)의 사랑을 받아 731년 진사에 합격, 태악승(太樂丞)이 되었다. 후에 제주(濟州:山東省 荏平縣)의 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 좌천되었으나, 734년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감찰어사 ·좌보궐(左補闕) ·고부낭중(庫部郞中)을 역임, 이부낭중에서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안녹산의 난을 당하여 반란군의 포로가 되어 협박을 받고 할 수 없이 출사하였다. 반란 평정 후 그 죄가 문책되었으나 아우 진의 조력과 반란군 진중에서 지은 천자를 그리는 시가 인정받아 가벼운 벌로 치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다시 등용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의 자리까지 벼슬이 올라갔다. 그 때문에 왕우승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왕유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궁정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라 하여 장안(長安) 귀족사회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고 존경도 받았다. 그의 시는 산수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노래한 것으로 수작(秀作)이 많은데, 특히 남전(藍田:陝西省 長安 동남의 縣)의 별장 망천장(輞川莊)에서의 일련의 작품이 유명하다. 맹호연(孟浩然)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대 자연시인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또 그는 경건한 불교도이기도 해서, 그의 시 속에는 불교사상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왕우승집》(28권) 등이 현존한다. 그림은 산수화에 뛰어나, 수묵(水墨)을 주체로 하였는데, 금벽휘영화(金碧輝映畵)에도 손을 대고 있어 화풍 또한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순정 ·고결한 성격의 소유자로, 탁세(濁世)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는 태도 등은 남송문인화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하였다. 당시는 장안(長安)에 있는 건축의 장벽산수화(牆壁山水畵)나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 등이 알려져 있었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여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