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怨辭(원사) / 원망의 글
금삿갓의 漢詩工夫(251215)
怨辭(원사) / 원망의 글
- 崔國輔(최국보)
妾有羅衣裳
첩유라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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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있는 비단 치마저고리
秦王在時作
진왕재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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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 시절에 지은 거예요.
爲舞春風多
위무춘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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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살랑일 때 춤추기 위함인데
秋來不堪著
추래불감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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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되니 차마 못 입겠군요
此(차)는失寵而怨之之辭也(실총이원지지사)라. 秦王在時(진왕재시)에 妾之羅衣裳(첩지라의상)을 製作而春風時節(제작이춘풍시절)에는 衣此羅衣(의차라의)하고 舞之(무지)러니 現今節序(현금절서)는 秋風凉冷(추풍량냉)하야. 羅衣(라의)를 不可堪着也(불가감착야)라. 此女(차녀)가 以羅衣裳(이라의상)으로 比之(비지)하야. 得寵於秦王時(득총어진왕시)는 此春風時也(차춘풍시야)요. 失寵於秦王時(실총어진왕시)는 此秋風時也(차추풍시야)니. 此亦秋風能再熱(차역추풍능재열)이면 團扇不辭勞之意也(원선불사노지의야)라.
이것은 총애를 잃고서 원망하는 말로, 진왕(秦王)이 있을 때에 첩의 비단옷을 만들어서 봄바람이 부는 시절에 이 비단옷을 입고서 춤을 추었었는데, 지금의 계절은 가을바람이 차가워서 비단옷을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여인이 비단옷으로 비유하여 진왕에게 총애를 얻었을 때에는 바로 봄바람이 불던 때이고, 진왕에게 총애를 잃게 된 때는 곧 가을바람이 불 때였으니, 이 또한 가을바람이 다시 따뜻해지면 둥근 부채를 부쳐드리는 수고로움을 사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 崔國輔(최국보) : 생몰미상. 당나라 오군(吳郡, 강소江蘇 소주시蘇州市) 사람. 산음(山陰, 지금의 강소江蘇 소흥시紹興市) 사람이라고도 한다. 개원(開元, 당 현종 연호) 14년(726) 진사가 되어 산음위(山陰尉)와 허창령(許昌令), 집현원직학사(集賢院直學士)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등을 역임했다. 천보(天寶, 당현종 연호) 11년(752) 왕홍(王鉷)의 사건에 연루되어 경릉군사마(景陵郡司馬)로 좌천되었다. 육유(陸游)와 어울리면서 차에 대해 품평하고 수질(水質)에 대해 논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가화(佳話)로 회자되었다. 시를 잘 지었고, 특히 5언절구에 능했지만 육조 시대 오가(吳歌)의 유운(遺韻)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시는 45 수이며, 그중 오언절구는 23 수이다. 그윽하게 원망하는 시로 유명하여 幽怨體(유원체) 시인이라 칭하며, 許蘭雪軒(허난설헌)이 유원체를 본뜬 <효최국보체 3수(效崔國輔體 三首)>를 지었다. 문집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1권으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