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古意(고의) / 옛 생각

금삿갓의 漢詩工夫(251215)

by 금삿갓

古意(고의) / 옛 생각

- 崔國輔(최국보)


淨掃黃金階

정소황금계

●●○○○

깨끗하게 쓴 궁중의 뜰에


飛霜厚如雪

비상후여설

○○●○●

내린 서리 눈처럼 두텁네.


下簾彈箜篌

하렴탄공후

●○●○○

주렴 내리고 공후를 타니


不忍見秋月

부인견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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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달을 차마 볼 수 없구나.

此(차)는 擬古之作(의고지작)이니. 宮人之怨辭也(궁인지원사야)라. 夜不能寐故(야불능매고)로 掃階以露坐(소개이로좌)하야. 且以冀君之臨也(차이기군지임야)라. 此句解者(차구해자)는 俱云霜飛(구운상비)라. 愚意(우의)는 霜落(상락)이 必于五更(필우오경)이라. 當是夜坐旣深(당시야좌기심)에 白露凝階(백로응계)하야. 從月光中見之(종월광중견지)하니 厚如霜雪耳(후여상설이)라. 下句秋月之根(하구추월지근)이 便伏於此(변복어차)라.

이것은 옛 시풍을 비의(比擬)해서 지은 작품이니, 궁인들이 원망하는 말이다. 밤에 잠들지 못하므로 뜰을 쓸고 밖에 앉은 것이고, 또 임금이 오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자들은 모두 ‘서리가 난다(霜飛)’라고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반드시 오경(五更, 날 샐 무렵)이다. 이 밤에 앉기를 이미 깊어질 때가 되어, 흰 이슬이 계단에 엉겨서 달빛을 따라 그것을 보는 중에 마치 서리와 눈처럼 두터울 뿐이니, 아래 시구의 추월(秋月)이라는 근거가 문득 여기에 굴복되는 것이다.


於是(어시)에 擧頭見月(거두견월)하고 不見君王(불견군왕)하야. 乃入室下簾(내입실하렴)하고 彈箜篌(탄공후)하야. 以寄怨卿以自遣(이기원경이자견)이라. 所以下簾者(소이하렴자)는 爲秋月之能傷我心(위추월지능상아심)하야. 不忍見之耳(부인견지이)라.

이에 머리를 들어 달은 보았으나, 군왕은 보이지 않는지라. 마침내 방으로 들어가 발을 내리고 공후(箜篌)를 연주하여, 그 임을 원망하는 정(情)을 붙여 자신을 위로한 것이다. ‘발을 내렸다’라고 한 것은 가을 달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마 그 달을 볼 수가 없었을 뿐이다.

낙엽.JPG

* 崔國輔(최국보) : 생몰미상. 당나라 오군(吳郡, 강소江蘇 소주시蘇州市) 사람. 산음(山陰, 지금의 강소江蘇 소흥시紹興市) 사람이라고도 한다. 개원(開元, 당 현종 연호) 14년(726) 진사가 되어 산음위(山陰尉)와 허창령(許昌令), 집현원직학사(集賢院直學士)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등을 역임했다. 천보(天寶, 당현종 연호) 11년(752) 왕홍(王鉷)의 사건에 연루되어 경릉군사마(景陵郡司馬)로 좌천되었다. 육유(陸游)와 어울리면서 차에 대해 품평하고 수질(水質)에 대해 논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가화(佳話)로 회자되었다. 시를 잘 지었고, 특히 5언절구에 능했지만 육조 시대 오가(吳歌)의 유운(遺韻)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시는 45 수이며, 그중 오언절구는 23 수이다. 그윽하게 원망하는 시로 유명하여 幽怨體(유원체) 시인이라 칭하며, 許蘭雪軒(허난설헌)이 유원체를 본뜬 <효최국보체 3수(效崔國輔體 三首)>를 지었다. 문집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1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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