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어유미(魚幼薇, 844∼868)가 자기의 시 경루자(更漏子)를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하자 당대의 유명한 시인 온정균(溫庭筠)은 탄복을 하며 그녀를 덥석 쓸어안으며 “네가 어떻게 내 시를 그토록 정확하게 아느냐?”라고 말하고는 무릎에 앉힌다. 그때 어유미 나이 13세이고 온정균은 45세 때이다. “소녀 평소에 선비님과 시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온정균을 빤히 쳐다보며 13세의 소녀 입에서 나온 당돌한 일성이다. “어린 네가 사모가 무슨 뜻인지 알가는 하느냐?” 온정균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온정균(溫庭筠, 812~870)은 당나라의 시인으로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며 시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거문고와 피리에 능했다. 시와 음악으로 풍류를 즐겼으며, 과거시험에서 팔짱을 8번 꼈다가 풀면 8운시(韻詩)가 완성되어서 온팔차(溫八叉)라는 별명이 있다. “소녀 아무렴 사모의 뜻도 모르고 고매하신 선비님께 말씀드렸을까요?” 어유미는 사내 무릎에서 내려와 온정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예사스러운 눈빛이 아니다. 열세 살 계집아이 눈빛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불타는 눈빛이다. 온정균은 그녀의 눈망울을 보고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철없는 계집아이의 눈빛이 아니고 사내를 갈망하는 뜨거운 여인의 시선 이어서이다.
명가 후예(後裔)로 중국을 주류천하(周流天下) 해 봤어도 열세 살 전후의 계집아이가 이토록 당돌하게 다가온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온정균은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 추남에 가깝지만 낭만적이면서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비굴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또한 그는 당나라 건국 공신 온태아(溫太峨)의 일족인 동시에 명재상 온언박(溫彦博)의 손자로 어딘가 귀티가 몸에 배어 있어 더욱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재(詩才)를 한번 시험하고 싶었다. 이쪽으로 오는 길에 마침 길가에 버드나무 꽃솜이 흩날리면서 사람들 얼굴에 달라붙는 것을 보았으므로 ‘강변류(江邊柳, 강가의 버드나무)’라는 시제를 내고 그녀에게 지으라 했다. 어유미는 약간 생각하더니 재빨리 시를 하나 써나갔다. 그리고는 두 손을 들어 온정균에게 바쳤다. 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翠色沿荒岸(취색연황안) / 푸른빛 황량한 물가까지 이어지고
煙姿入遠樓(연자입원루) / 안개 같은 자태에 멀리 누각이 들어오네.
影鋪春水面(영포춘수면) / 봄 물 위에는 버들 그림자가 퍼지고,
花落釣人頭(화락조인두) / 꽃잎은 낚시꾼의 머리 위로 떨어지네.
根老藏魚窟(근로장어굴) / 늙은 뿌리는 물고기 숨는 동굴이고
枝底繫客舟(지저계객주) / 나무 밑동에는 객선이 묶였네.
蕭蕭風雨夜(소소풍우야) / 비바람 소슬한 밤,
驚夢復添愁(경몽부첨수) / 놀라 꿈 깨어나니 시름 더해 깊구나.
어유미는 원래 산시성(陜西城)의 서안(西安) 출신으로 아버지는 몰락한 선비 가문 출신으로 어릴 때 딸에게 시문의 수업을 적극 시켜서 5살에 수백 편의 시를 외울 수 있었고, 7살에는 능히 시를 지었다. 12~12살 때 시문이 장안에 유명해졌다. 그래서 시동(詩童)이란 별명을 받았고, 당대의 시인 온정균도 그 이름을 듣고 주의를 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망 후에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는 청루(靑樓)의 청소와 기녀들의 옷가지를 빨아주며 근근이 생활했다. 그래서 어유미도 기루에 나가서 일을 하며, 숙명적인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대부들의 삶을 늘 동경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항상 불만으로 쌓였다. 온정균과의 첫 대면도 그가 사대부의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유망한 시인이라서 그녀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사내로 성큼 다가왔던 것이다. 어유미의 나이는 비록 13세이나 그늘에서 웃자란 장다리 같이 20대 여성으로 보일 만큼 성숙해 보였고, 정균 역시 40대 중반의 사내지만 풍류를 즐겨서인지 30대로 보일 만큼 동안이라 보는 이의 시각에선 20대와 30대의 남녀 사이다. 어유미는 훗날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도교의 도관에 일정기간 의탁했던 시기에 도관(道館)의 관주에게 현기(玄機)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래서 어유미 보다는 어현기로 더 많이 불린다. “내가 네 격에 맞는 선비를 하나 소개해 주마. 나는 네게 안 맞는 사내다.” 말을 마친 온정균은 어현기를 끌어안는다.
그의 두 눈엔 뜨거운 욕정이 이글거렸지만 눈물을 참듯이 참는다. 욕망 같아서는 활화산(活火山) 같이 치솟는 욕정을 그녀의 골짜기 은밀한 곳에 퍼붓고 싶으나 애써 마음을 달랜다. “내 오늘은 중대한 일이 있어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품었던 어현기를 무릎 아래로 내려놓으며 온정균은 서운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오늘은 소녀가 비록 아직 어린 나이오나 존경하는 선비님을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선비님 오늘 소녀와 헤어지면 다시 또 소녀가 선비님을 뵐 기회가 있을까요?” 주류천하 풍류객인 온정균이 어현기의 이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다. “너는 이 늙은 한량이 그리 좋으냐? 네 정도의 미색에다 풍류와 시까지 능란하니 나 아니더라도 이 장안의 선비들은 네 치마폭에 얼마든지 들어올 것이다.” 온정균의 손은 마침내 어현기의 풋풋한 몸을 더듬고 있다. 그러나 욕망의 뿌리는 애써 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잠을 재우고 있었다. “선비님 소녀가 마음에 없으세요?” 어현기는 기루에 나온 이후 생애 처음으로 남자를 받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데, 정작 사내는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번 주기로 마음을 먹은 여자는 이미 몸이 달아올랐다. 치마 속 깊숙한 계곡에서는 이미 향기롭고 아름다운 물이 흐르며, 아직 덜 성숙 됐으나 나긋나긋한 가슴의 꼭지는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손길을 맞을 채비가 다 되었다.
“오늘 너와 밤을 같이 보낼 것이니라. 그러나 내 너의 마음만 받을 것이다. 그러니 나와 약조할 수 있겠느냐?” “예 선비님.” 어현기는 약간 섭섭했지만 그나마도 온정균과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렇게 되어 소녀경의 주인공 황제와 소녀가 되어 밤을 같이 보내되 교접은 하지 않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온정균이 어현기의 시재(詩才)를 알아보고 틈틈이 지도를 해주면서 정이 들기도 했다. “겉보기 보다 네 몸이 아주 훌륭하구나. 시만 잘 쓰는 천재소녀로만 알았는데, 여자로서도 당당하구나.” 사내는 풍만한 처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남몰래 한숨을 쏟아낸다. 속으로 욕정을 삭이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다. 천하의 한량인 온정균이 아끼는 그녀의 문재(文才)를 온존 하게 지켜주고, 그에 맞는 배필을 구해 주려는 것이다. 둘이 잠이 들자, 온정균은 모일(某日) 술시(戌時 하오 7시∼9시)에 모처에 와서 방에 불을 켜지 말고 다시 보자라는 쪽지를 남기고 여명이 트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한편 강릉의 명문집안 후예인 이억(李億)은 장안으로 벼슬을 얻으러 왔다. 그는 과거 대신 음서(蔭敍)로 벼슬자리에 올랐다. 온정균이 양양자사(陽壤刺史)의 막료로 있을 때 일찍이 이억과 글을 교류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억은 온정균의 집을 찾아왔다. 온정균의 서탁에서 여자가 예쁜 글씨로 쓴 시를 보고 이억이 관심을 표명한다. 온정균은 이억의 미묘한 심리를 눈치챘다. 사람 좋은 그는 어현기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들을 맺어주게 된다. 약속한 날이 되자 어현기는 어둠 속에서 그 장소에 갔다. “선비님 오셨어요?” 어현기는 어둠 속에서 등을 보이고 누워있는 사내의 옆에 누우면서 등을 쓸어안는다. 당연히 온정균으로 믿고서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온정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이억(李億)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나요. 온정균 선배께서 가라 해서 내 대신 왔소이다.” 동기(童妓)에게 깍듯한 예의다. 어현기는 깜짝 놀랍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다. 하지만 어쩔 텐가. 이미 일은 저질렀는데. 사실 이억도 정균 못지않은 시재에 나이도 젊어 오히려 조건이 좋았다고나 할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했듯이 어현기는 온정균에게 내주었던 마음을 거두어 이억에게 주기로 하였다.
“술도 한잔 안 하시고 주무시게요?” 동기(童妓)답지 않은 말투다. “아 그랬군요. 한잔하십시다.” 둘은 다정하게 술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찬찬히 살핀다. 이억은 온정균과 반대다. 키도 헌칠하고 얼굴도 예인(藝人) 못지않은 고운 피부를 지녀 귀공자 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다. 어현기는 평소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나아간 마음은 끝자락이 계속해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술은 아무에게나 올리는 술이 아니옵니다. 죽엽청(竹葉靑)으로 선인들이 즐겨 마시던 것인데 제 마음까지도 뺏을 선비님을 맞을 때 올리려고 소녀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것이옵니다.” 어현기는 두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술잔을 권한다. 그리고 그녀는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꽃을 찾아 나비가 날 듯 그녀의 춤은 이승엔 없는 선계(仙界)에서나 봄직한 유려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춤을 추었다. 이억은 술을 마시기 전에 넋을 빼앗겼다.
人道海水深(인도해수심) / 사람들은 바닷물이 깊다 말하나
不抵相思半(부저상사반) / 그리움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네.
海水尚有涯(해수상유애) / 바닷물은 오히려 끝이라도 있지만
相思渺無畔(상사묘무반) / 그리움은 아득하여 끝도 없다네.
携琴上高樓(휴금상고루) / 거문고 들고 높은 누각에 오르니
樓虛月華滿(루허월화만) / 텅 빈 누각엔 달빛만 가득해
彈著相思曲(탄착상사곡) / 그리운 곡을 타려는데
弦腸一時斷(현장일시단) / 거문고 줄과 애간장이 일시에 끊어지네.
당나라의 여류 시인 이야(李冶)의 ‘상사원(相思怨)’이라는 시를 곡조에 실어 부른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이억은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현기에게 절을 넙죽한다. 시인 이야는 자기도 존경하는 인물인데, 처음 본 동기(童妓)가 ‘상사원’을 절절히 노래하자 탄복을 넘어 존경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보통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졌다. 내 술 한잔 받아라.” 이억은 옥잔에 죽엽청을 가득 부어 어현기에게 권했다. 어현기도 주저 없이 단숨에 술잔을 비우더니 “선비님이 소녀의 주인이 되어주시지요.”라며 역시 옥잔에 죽엽청주(竹葉淸酒)를 찰랑찰랑하게 부어 권한다. 술도 술이지만 서방이 되어달라는 말에 이억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호박이 덩굴 채 굴러 들어온 것이다. 이억은 유부남이었지만 아내와 잠자리가 불편했는데 안성맞춤이 되었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며 여자 없이는 잠을 못 이루는 그에게 어현기는 하늘이 내려준 상대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많다. 아무리 소문난 한량(閑良)이라고 하지만 그에겐 문재(文材)에 명문가의 후예(後裔)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왜 소녀의 제의가 못마땅하세요?” 어현기가 다그친다. 천하의 이억이 생후 처음 여자 앞에서 오줌 마려운 강아지 모양 주저주저하고 있다. “알았다. 내 너의 제의대로 하마” 자존심이 상해 속 시원히 대답부터 해 놨으나 술이 소태맛이다. “선비님 오늘 밤부터 서방님 노릇을 해도 좋습니다.” 어현기는 뒷물을 깨끗이 하고 다시 옷차림은 한 채 잠자리에 들어갔다. 사내의 동태를 보자는 행동이다. 이억은 정작 멍석이 깔아지자 마음이 무겁다. 청조 낙조(落照)에 예쁜 동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 주인공이 어현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쁜 계집을 보고 그냥 넘어갈 이억이 아니다. ‘그래 사내 맛을 단단히 보여주마.’라고 마음을 먹고 어현기를 덥석 안았다. 젊고 황홀한 육체다. 한 쌍의 봉긋한 유방은 이억의 손이 닿자 향비(香妃 : 몸에서 향내가 난다는 몽골 왕비)와 같이 향을 뿜고, 입맞춤을 하자 입에서 죽엽청주의 알싸한 향내에 사내는 혼까지 빠지는 기분이다.
어현기도 어차피 내 맡기는 몸을 주저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몸과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이억은 첫 남자를 맞는 어현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많은 사내를 겪은 계집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어현기는 온정균도 사모했으나 이억 역시 가슴 깊이 묻고 싶은 사내였다. 어현기는 이억의 물건이 살을 헤집으면서 들어오자 아직 경험이 없는 처녀라서 너무 아파 “어머니!”하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억은 어현기가 너무 자연스럽게 전희(前戲)를 즐기기에 딴 남자를 많이 겪었나 싶었다. 그래서 심술궂게 대포 쏘듯 옥근(玉根)을 푹 질러 넣었던 것이다. 동기(童妓)의 동굴은 불이 났고 처녀막은 산산이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억은 계집이 소리를 지르자 더욱 신이 나고 힘이 쏟아 엉덩이에 힘을 넣어 더 힘껏 누르며 사내 됨을 만끽했다. 어현기도 역시 한번 열린 몸을 움츠릴 생각 없이 마음껏 사내를 맞는다. 경쟁하듯 그들은 서로의 욕정에 몸을 내어 주었다. 어현기의 다리 사이로 선혈이 낭자(狼藉)했다. “서방님 만족하셨어요?” 천연덕스런 현기의 물음에 이억이 도리어 주눅이 들었다. 장안의 춘삼월에 꽃가마를 타고 성장을 한 어현기는 이억이 그녀를 위하여지어 준 별장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한동안 즐거운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타고난 바람둥이의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의 생리를 버릴 수는 없었다. 몇 달을 본처(本妻)에도 들리지 않고 어현기의 달콤한 육체의 쾌락에 세상의 시름도 잊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강릉에는 이억의 부인 배씨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장안으로 간 후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을 데려가지 않자, 계속 서신을 보내서 재촉했다. 이억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강릉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오게 된다. 이억에게 처가 있다는 것은 어현기도 미리 알았다. 어현기는 이억을 그녀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강릉수망기자안(江陵愁望寄子安)> 즉 ‘강릉을 수심으로 바라보며 자안에게 보낸다’라는 시를 쓴다. 자안(子安)은 바로 이억의 자(字)이다.
楓葉千枝復萬枝(풍엽천지부만지) / 단풍잎은 천 가지 또 만 가지
江橋掩映暮帆遲(강교엄영모범지) / 강다리 햇살 가려 저녁 배 더디고
憶君心似西江水(억군심사서강수) /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서강의 물과도 같아
日夜東流無歇時(일야동류무헐시) / 낮밤으로 동으로 흘러 쉴 때가 없어라.
어현기는 독수공방(獨守空房)하면서 가을부터 봄까지 지냈다. 그 후에야 이억은 처를 데리고 장안으로 왔다. 비록 이억이 조심스럽게 처인 배씨에게 첩 어현기를 받아들여달라고 달랬지만, 명문출신의 배씨는 시종 응락하지 않았다. 어현기가 기거하는 별장을 찾은 배씨는 시녀를 불러 마중 나온 어현기를 땅에 꿇어앉히고 등나무로 심하게 때렸다. 어현기는 감히 반항하지도 못하고,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부인이 화를 푼 후에 그녀를 식구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배씨의 분노는 다음 날에도 가시지 않았다. 며칠 계속 소란을 피우게 되니, 이억은 어쩔 수 없이 어현기를 집에서 내보내게 된다. 당나라의 법률 즉 당률(唐律)에 따르면 첩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다. 이억은 배씨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현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혼인은 겨우 3개월간 지속되었고, 5개월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헤어진 것이다. 이억은 표면적으로는 어현기와의 관계를 끊었지만, 암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곡강(曲江) 일대의 조용한 도관(道館)인 함의관(鹹宜館)에 돈을 내서 수리하고 큰돈을 기부한 다음 어현기를 도관에 머물도록 했다.
그리고 어현기에게 “잠시만 참아주면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달랬다. 어현기는 이억의 우유부단한 본마음을 대충 알아차리자 서한(西漢) 시대의 성제(成帝)의 후궁이자 유명한 문학가인 반첩여(班婕妤, BC33∼BC7)의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써서 놓고 도관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억은 만날 수 없었다.
新裂齊紈素(신렬제환소) / 제나라 흰 비단 새로 자르니
鮮潔如霜雪(선결여상설) / 곱기가 서리나 눈 같구나.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 마름 하여 합환선을 만들었는데
團團似明月(단단사명월) / 둥글기가 마치 밝은 달인 듯.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 그대의 소매 속에 드나들며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 흔들어져 미풍을 일으켰지만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 늘 걱정은 가을이 와서
凉飇奪炎熱(량표탈염열) / 서늘한 바람이 더위 내몰면,
棄捐篋笥中(기연협사중) /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져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 사랑하는 정이 중도에 끊길까 하네.
반첩여가 미모와 문학, 현숙함으로 성제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조비연(趙飛燕)이라는 날씬하고 발이 작은 춤 잘 추는 후궁이 성제의 품으로 들어오자 황제의 총애를 잃어 장신궁(長信宮)에서 쫓겨난 그녀가 지은 시이다. 어현기의 신세는 본처에게 쫓겨나는 신세로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함의관의 관주는 나이 많은 도고(道姑)였다. 그녀는 어유미(魚幼薇)에게 현기(玄機)라는 도호(道號)를 주었다. 사실 이때부터 어유미는 어현기가 된 것이다. 글재주가 뛰어난 그녀는 결국 홀로 청등을 벗하는 도고로 지내게 된 것이다. 긴긴밤을 잠 못 자면서 그녀는 이억을 그리워했고, 눈물과 먹으로 시를 지어 그에게 보내려고 <기자안(寄子安)>이라는 시를 지었다. 자안(子安)은 이억의 자(字)이다. 도관에 들어간 어현기는 슬픈 마음을 모두 시에 쏟아부었다. 이억이 하루빨리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이억은 어현기를 함의관에 맡기고, 원래는 기회를 봐서 찾아오려 했었다. 하지만 본처 배씨가 너무나 심하게 단속하고, 배씨 집안의 세력이 장안성내에 모두 퍼져있어서, 이억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그래서 함의관에 있는 어현기를 만나러 올 수 없었다. 어현기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억을 생각하고, 이억으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도 또 <기이자안(寄李子安)>이라는 시를 또 지었다. 매번 시는 지었지만, 이억에게 보낼 수는 없어서 그저 곡강(曲江)에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 때는 도교가 유행하였는데, 유명한 도관들은 관광명승지이면서 남녀 교제장소이기도 하였다. 재주가 뛰어난 여도사들은 사교계의 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함의관은 관주인 일청도고가 성격이 엄격하고 규율을 잘 지키게 하는 바람에 아주 조용한 곳이었고, 찾아오는 손님도 적었다. 이억은 당시에 이렇게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어현기를 맡긴 것이었다. 이제 어현기는 그저 적막을 벗하면서 시를 쓰며 여도사들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삼 년이 흘렀다. 그녀는 이억이 일찌감치 처와 함께 양주로 가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현기는 자기가 버려졌다고 느낀다. 자포자기가 된 그녀는 세상의 모든 남성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새파랗게 벼리기 시작했다. 어현기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주변의 나이 어린 문동(文童)들을 가르치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어서 도관 문간에 공고문을 한 장 내붙였다. <시문(詩文)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멋있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구인 광고였다. 그것도 장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어현기 아닌가?
그 도시의 젊은 시인들이 이 공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여인을 농락할 마음으로 들뜬 젊은이도 있었다. 어현기의 도교 사원 문 앞은 그야말로 저잣거리처럼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아닐세. 이러다가는 자칫 끝장날 수도 있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온정균이 간절한 마음으로 달랬지만, 그녀는 돌아선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제 저는 옛날의 어유미가 아니어요. 어유미는 벌써 죽었답니다.” 그녀는 저 멀리 사라지는 온정균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현기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기로 작정한 지 벌써 오래였다. 지금의 그녀는 아름다운 천사가 아니라 일탈(逸脫)을 꿈꾸는 여문사(女文士)였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자기를 찾아온 이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논했다. 그러면서 이 사나이들이 몽땅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들이 자기 치마 아래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며 영광으로 여겼다.
“소첩의 큰절을 받으시죠.” 당시 그녀가 아주 좋아했던 서생으로 좌명양(左名揚)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녀가 좌명양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가 귀공자의 풍모에 당당한 의표(儀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며, 예전의 남편인 이억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좌명양에게 깊이 정을 주었고, 완전히 처가 남편을 대하듯이 좌명양을 대했다. 좌명양은 수시로 그녀의 도관에 와서 그녀와 시를 읊으면서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 어현기로서는 이억의 첩실로 있을 때 보다 삶에 향기가 돌았다. 그녀는 함의관에서 비단 장사로 떼돈을 번 이근인(李近仁)도 만났다. 이근인은 장안에서 이름난 호남(好男)에다 돈까지 많아 기녀의 기둥서방 감으론 제격이다. 그녀가 쓴 <영이근인원외(詠李近仁員外)>라는 시에서 묘사한 정경은 규중여인이 아주 기쁘게 남편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함의관의 모든 비용은 이근인이 부담했고, 몸종인 녹교(綠翹)까지 구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어현기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현기는 이근인에게 몸을 맡기는 동시에, 다른 여러 인물들과도 교유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온정균도 포함된다. 그러나 온정균은 그녀와 시종 우정을 유지한다.
당시의 관리 중에 배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현기를 매우 흠모했다. 그러나 어현기는 그가 이억의 부인인 배씨와 같은 성씨인 것을 알고는 멀리했다. 어현기는 기적(妓籍)에선 빠졌으나 신분은 여전히 화류계에 속하는 여인이다. 함의관을 중심으로 한 사교계에 여왕인 것이다. 여왕에겐 신하가 많듯 그녀의 곁엔 늘 사내들이 득실거린다. 틈만 있으면 여왕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한량들이 줄을 선 것이다. 하루는, 함의관에 악사인 진위(陳韙)가 왔다. 그는 키가 크고 모습도 준수했다. 그의 모습은 어현기의 눈길을 끌었다. 어현기는 그의 모습에 반하여 아주 노골적인 시를 써서 건네주고, 진위도 다음 날 바로 어현기를 찾아온다. 그래서 둘은 또 찰떡궁합이 되었다. 그해 어느 봄날 어현기가 근처에 봄놀이를 갈 때, 집을 떠나면서 시비(侍婢)인 녹교(綠翹)에게 “나돌아 다니지 말고, 만일 손님이 오면, 내가 어디로 갔는지 얘기해 주어라.”라고 당부한다. 봄놀이에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어현기는 함의관으로 돌아온다. 녹교가 나와서 맞이하면서 “진악사가 내방했었는데, 나는 그에게 스승님이 간 곳을 말해 주었어요. 그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바로 가버렸습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어현기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머리칼이 약간 흩어져 있고,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리하여 의심을 품게 된다.
등롱(燈籠)을 내걸고 큰 문을 닫은 뒤, 그녀는 녹교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그래, 사실을 바른대로 말하렷다!” 녹교를 바라보는 어현기의 눈빛에는 벌써 무서운 기운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러나 녹교는 오히려 차분했다. “마님을 모신 지 여러 해, 저는 언행을 신중하게 다잡으며 마님께 누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소서.” 그러나 어현기는 의심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녹교의 옷을 벗겼다. 가까이서 녹교의 몸을 검사해 보니 유방에 손톱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등나무 채찍을 들어 그녀를 때렸다. “이년아, 종년 주제에 감히 주인의 사내를 가로채?” 녹교의 엉덩이는 구렁이를 감아 놓은 것 같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샅 주위도 꼬집어 도톰하게 쏟은 불두덩이도 시퍼렇게 보기가 흉하게 멍이 들었다. 녹교는 그러나 일관되게 부인(否認)했다. 나중에는 어현기의 말에 말대꾸를 하며, 어현기의 남녀 풍류에 대하여 까지 언급했다. “저는 그 남자와 정을 나눈 일이 결코 없습니다.” 모진 매로 쓰러지면서도 녹교의 말은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저는 이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하늘이 있다면 오히려 마님께서 뭇 사내들과 맺은 음란한 성관계를 나무랄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깨끗합니다, 이는 하늘이 아는 일이옵니다.” 어현기는 녹교의 목을 붙잡고, 그녀의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나중에 녹교의 손에 힘이 빠진 것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녹교의 숨이 끊어진 것을 알았다.
어현기는 정신을 차리고 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후원의 자등화(紫藤花) 아래에 구덩이를 파서 녹교의 시신을 묻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진위가 와서 물었다. “왜 녹교가 보이지 않는가?” 어현기의 대답은 “봄바람이 나서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진위는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몸종 녹교가 죽은 뒤에도 어현기는 함의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 차를 마시고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가끔 필이 꽂히는 남자가 있으면 함께 뜨거운 밤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맘에 드는 사내 세 명을 만났다. 바로 이영·정위·진위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각각 시인·악사·화가 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장안의 저명인사 들이다. 그들은 서로 어현기의 기둥서방이 되고자 다투어 노골적으로 껄떡 인다. 현기도 싫다 할 이유가 없다. 동기로 시작해 기둥서방 두 사내를 거치는 사이에 몸은 명기(名器)가 되었는데 더 바랄 것이 없다. 재물도 있고 명성도 적당히 있는 데다 젊고 향기 나는 몸엔 사내가 들어오면 하늘을 나는 쾌락을 즐길 명기까지 있으니 탐을 내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다. 어현기는 세 남자를 모두 갖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세 사내들을 상대로 속궁합을 맞춰보기로 했다. 개인 평가를 한다는 핑계로 그들을 하루씩 걸러 도관으로 불렀다.
오늘은 화가 정위이다. “어떻게 포즈를 취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상화가 될까요? 개런티는 달라는 대로 드리겠어요.” 화창한 봄날 도관의 화원(花園)은 꽃들의 세상이다. “이곳이 좋겠어요. 날씨가 좀 쌀쌀하긴 하지만 그대의 아름다운 누드를 그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좀 당혹스러운 제의였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합시다.”라고 태연하게 응해 주었다. “이곳에서 포즈를 취해주시지요.” 연못 근처 동쪽엔 매화가 만발하고, 서쪽엔 목련이 수줍게 자태를 뽐내고, 북쪽엔 철쭉이, 남쪽엔 진달래가 화려하게 피어있다. 그 사이사이를 벚꽃이 봉오리를 삐죽이 내밀고 있어 봄의 향취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뒤엔 웃자란 대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일부러 사람을 부르지 않으면 별천지이다. “저 목련 옆에 남근상이 있는데 비단치마를 깔고 그 위에서 하늘을 보시고 포즈를 취해 주십시오. 한두 시진이면 족합니다.” 하늘엔 새털처럼 구름이 띄엄띄엄 떠 있으며 전향적인 봄 날씨다. 어현기는 밤도 아닌 대낮에 정원에서 옷을 벗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으나 그녀 특유의 순발력 있는 결정으로 뱀이 허물을 벗듯 후닥닥 나부(裸婦)가 되어 화가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정위의 붓이 굳어 버렸다. 얼굴도 예쁘지만 속살이 너무 황홀해 혼자만 보고 싶은 것이다. 나부상(裸婦像)을 그려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다. “빨리 그려요. 추워 죽겠어요.” 따가운 햇살에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현기는 오들오들 떨고 있다. “방으로 가시죠.” 정위의 음성은 벌써 물기가 촉촉이 먹어 있었다. 어현기의 몸도 태양과 바람에 경색되었으나 사내 손길을 기다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내는 열려있던 나부에서 화가 특유의 감각으로 여인의 오르가슴 포인트를 읽고 초반부터 현기가 까무러치도록 쾌락의 블랙홀로 몰고 갔다. “그만… 그만…” 어현기는 몇 달 만에 사내다운 사내를 만나 육체에 흡족한 호사를 시켰다. 그 이후 하루씩 걸러 이영과 정위도 불러 그들 고유 성향으로 몸과 마음의 향연을 즐겼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어현기가 마련한 시회에 참석했던 어떤 이가 잠시 소피 하러 뒤뜰에 나갔다가 꽃나무 등걸 아래 땅바닥에 파리 떼가 윙윙거리고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파리를 쫓아내도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며 자세히 살피니 희미하게 핏빛이 가시지 않았고, 냄새가 고약하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황급히 관아에 이 사실을 알렸다. 결국 몸종 살인 사건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당률(唐律)에 따르면, 주인이 자기 몸종을 죽이는 방법으로 징벌했더라도 많아야 벌금 몇 푼이면 끝이었다. 몸종의 지위는 주인의 재산인 ‘가축’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관리는 어현기에게 사람을 죽인 죄를 물어 사형으로 언도했다. 살인죄를 적용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어현기가 도관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이억의 본부인과 같은 성씨라고 정을 나누기를 거부당했던 배징이었다. 그 일로 인해 앙갚음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의 심리 결과를 보고받은 당의종(唐毅宗)은 딱 한 마디만 했다. “당장 집행하라.” 그녀는 이로 인하여 참형을 받게 된다. 이때 그녀의 나이 겨우 24살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50여 수(首)가 전해지는데,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되어 있다. 저서로 《어현기집(魚玄機集)》이 있고, 그의 전기는 《당재자전(唐才子傳)》 등에 수록되어 있다.(금삿갓 운사芸史 금동수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