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에 도쿄의 남쪽지방의 외딴섬 ‘이즈(伊豆)’의 호족(豪族)인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에게는 ‘마사코(政子)’라는 딸이 있었다. 10대 초반부터 처녀는 영주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실력만으로도 웬만한 남자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여인이었다. 당시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로 유력한 무가문(武家門)이었던 가와치 겐지(河內源氏)의 동량(棟梁)인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의 3남이지만 정실 자식으로는 장남이 있었다. 바로 13살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인데, 그가 아버지 요시토모와 함께 싸운 헤이지(平氏)의 난에서 초창기에는 성공을 거두어 우효에노스케(右兵衛權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결국 헤이시(平氏) 가문에 패해 도주 중에 아버지는 암살당하고, 본인은 잡혀 이즈(伊豆) 국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여기서 어린 나이 때부터 패장의 아들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곳의 거머리가 많고 습한 섬 생활은 인내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 있게 참으며 권토중래(捲土重來)하겠다는 굳은 뜻을 품고, 몰라보게 늠름한 미남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요리토모(賴朝)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술을 연마하고 이즈 섬 전체를 손금 보듯 익힌다. 당시 이 섬의 호족인 호조 마사코(北條政子)의 아버지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는 헤이시로부터 요리토모(賴朝)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은 입장이다. 그러나 도키마사는 지방 호족으로서 교토황궁과 교토시내 경비를 겸하고 있어서 이즈에 왕래하느라 요리토모(賴朝)에 대한 감시는 가족들에게 맡겨 놓았다. 절해(絶海)의 섬이라 탈출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어린 마사코는 직접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요리토모(賴朝)에 대하여 직간접으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요리토모(賴朝)보다 10년 어린 그녀였지만 총명하고 고집이 센 아이인데 현지에 있는 사내아이들은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마사코는 누군가와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이라도 할라치면 절대로 지는 법이 없었다. 놀랄만한 독서량과 명석한 두뇌로 중무장한 마사코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반론을 제기해 나가면 누구라도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남자들을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남자들이란 왜 다들 저 모양들이야? 여기가 섬이라서 그런가? 교토 같은 대도시에 가면 호걸다운 호걸이 좀 있으려나? 저따위 녀석들에게 시집가느니 처녀로 늙어 죽는 게 났겠다.” 글을 읽는 시간 외에는 섬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검술도 익히고, 산책도 하며 글을 짓기도 했다.
유배된 지 10여 년이 지나 섬 생활에 익숙해진 요리토모(賴朝)는 그날도 하오리(羽織)만 걸치고, 섬의 숲 속에서 검을 휘두르며 무술 연습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는 청명한 날씨가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면서 후드득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리토모(賴朝)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는 비에 왠지 기분이 이상해져서 누더기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도 없는 집에 그렇게 급히 돌아가지는 않았다. 요리토모(賴朝)는 발길로 방문을 걷어차고 젖은 몸으로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어둑한 방에서 “어머 누구세요?” 비명 같은 여인의 외침이다. 옷이 비에 흠뻑 젖어 근육질 몸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요리토모(賴朝) 손에 들린 장검에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사님,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 딸 마사코입니다. 우연히 이쪽으로 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주인도 안 계신데 들어와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마사코는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용서를 빈다. 그러나 요리토모(賴朝)는 긴장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집이래야 다다미 네 쪽 넓이의 방에 부엌이 달린 오두막집이다. 마사코도 비를 피해 지금 막 들어온 건지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젖은 젖가슴이 울렁거린다. 두 남녀 옷에선 빗물이 계속 떨어졌다. “귀한 집 처녀가 그런데 이곳까지 그냥 오신 것은 아닐 터, 무슨 일이지요?” 요리토모(賴朝)가 정적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사내도 여자와 같이 모두 다 젖어 몸의 굴곡과 형태가 어스름하게 드러났다. 쪼그리고 앉아있던 마사코의 눈이 사내의 사타구니께로 갔다. 요리토모(賴朝)의 눈도 역시 여자의 앞가슴에 멎었다. 여자가 말이 없자 사내가 말한다. “옷이 젖어 추울 텐데 이것으로라도 어서 갈아입으시오. 제겐 이 옷밖에 없습니다.” 요리토모(賴朝)는 무명으로 만든 하오리를 마사코에게 던져 주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젖은 옷을 벗고 남자의 하오리로 갈아입었다. 외면하면서도 힐끗 본 마사코의 뒷모습은 환상적이다. 상아빛 피부가 긴장으로 고조되어 엷은 핑크 빛이 안개처럼 끼여 있는 등과 동그란 엉덩이는 홀린 사람처럼 입을 벌린 요리토모(賴朝)를 석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 돌아앉은 마사코가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요리토모(賴朝) 앞에 놓으며 “공자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마음에 드실지?”라고 말하고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기다린다. “유배자인 나를 어떻게 알고 이런 물건을 주는 거요?” 요리토모(賴朝)는 더욱더 어리둥절해서 눈둘 바를 몰라한다. “소녀는 공자님이 이곳으로 오실 때부터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공자님은 이런 곳에 계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제 가슴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어요. 공자님을 남몰래 훔쳐보면서 온통 공자님 생각뿐이랍니다. 소녀의 행동을 용서하시고 마음을 받아주세요” 마사코는 갓 부화된 병아리가 어미 닭의 품을 파고 들 듯 요리토모(賴朝) 가슴에 몸을 던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요리토모(賴朝)도 마사코가 안겨오자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뜨거운 입술과 불같은 몸들이 부딪히면서 밖에서 내리는 폭풍우에 동화되었다. 그 후 그들은 2∼3일이 멀다 하고 몰래 만나 육체의 향연을 열기도 하며, 검술도 같이 익히고, 먼 훗날의 원대한 꿈을 같이 그려가고 있었다.
둘은 이내 사랑에 빠져들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 사실은 교토에 가 있던 마사코의 아버지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장 딸을 찾아와서 불같이 화를 내며 꾸짖었다.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남자가 있는데 왜 하필 그 녀석이냐? 그놈이 멸문을 당한 미나모토(源) 가문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지금은 다이라(平) 가문의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이라 가문에 충성을 다하는 집안이란 말이다. 바보 같은 짓 그만두지 않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아비의 손으로 네 목을 따버릴 것이야!”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마사코는 아버지의 말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사실 요리토모는 21세 때부터 이토 스케치카(伊東祐親)의 감시 하에 있었다. 이곳에서 도이 사네히라(土肥實平)나 아마노 도카게(天野遠景), 오바 가게요시(大庭景義) 등이 모여서 사냥이나 스모를 벌이곤 했는데, 이들은 모두 훗날 요리토모를 섬겨 가마구라(鎌倉) 막부의 고케닌(御家人)이 된다. 스케치카(祐親)가 교토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셋째 딸 야에히메(八重姬)와 야합(野合)해 아들 지즈루마루(千鶴丸)를 두었다. 스케치카(祐親)는 격노했을 뿐만 아니라, 헤이케(平家)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외손자 지즈루마루를 이토의 도메키가후치(轟ヶ淵)에 던져 죽이고, 딸 야에히메는 에마노 고지로(江間小四郞)에게 시집보내 버린다. 요리토모의 나이 29세 무렵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31세 때, 요리토모 감시의 직무를 떠맡고 있던 호조 도키마사의 21살 난 딸 마사코와 다시 야합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도키마사는 이 같은 사실이 헤이케(平家) 가문에 알려지면 당장 목을 내어 놓아야 될 상황이다. 그는 서둘러 마사코를 이즈 지역 관리인 야마키 가네타카(山木兼隆)에게 시집보내 무마시키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다.
야마키 가네타카(山木兼隆)의 첩으로 내정된 마사코는 신방을 차리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훔친 말에 올라 요리모토를 향해 밤새껏 달려간다. 상황을 모르는 요리토모는 말발굽 소리에 놀라 절의 대웅전 부처 뒤에 숨어 동태를 살폈다. “나 마사코예요. 요리모토님!” 마사코는 밤새 빗길을 달려와 기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다. 요리모토가 절에 있다는 풍문만 듣고 무작정 내달려 와서 그만 절도하고 말았다. 불상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요리토모가 불상 앞으로 나왔을 때는 마사코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엎어져있었다. 영원히 헤어질 뻔했으나 그들은 견우와 직녀 같이 극적으로 다시 해후했다. 정신을 차린 마사코가 말했다. “교토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날 것 같아요.” 마사코의 손이 자기를 쓸어안은 요리토모의 사타구니를 거쳐 등으로 가자 사내 물건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여인의 불두덩을 압박한다. 그들은 법당에서 모로 누워 상대방 표정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난리란 무슨 말이요?” 요리토모는 마사코의 난리란 말에 걱정이 앞섰다. 이제 겨우 감시망에서 풀려 안정을 찾았는데, 정국의 소용돌이 치면 또다시 쫓기는 몸이 되지 않을까 서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헤이시(平氏) 가문의 장남 시게 모리가 갑자기 병사했대요. 교토가 술렁거리고 겐지(源氏) 가문도 동요하고 있대요. 시국이 바뀌지 않았겠어요?” 마사코는 두 팔에 힘을 넣어 요리토모를 바싹 끌어안는다. 탱탱한 두 유방이 사내 가슴을 압박한다. 사내 물건은 시국이 뒤숭숭하다는 소리를 듣고 힘없이 쪼그라 들어갔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여기 이렇게 마음 편히 있을 때가 아니어요.” 마사코의 말에 자극을 받은 요리토모는 쪼그라들었던 물건을 일으켜 활짝 열린 그녀의 계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사코는 즐거운 율동에 몸을 맡기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헤이시와 겐지는 원수지간으로 아버지 도키마사는 헤이시 편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상황에 딸은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힘없어 보였던 이것이 어떻게 갑자기 힘이 세졌어요?” 밑에서 능수능란하게 호흡을 맞춰 섹스의 극치가 한바탕 지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사코 입에서 나온 말이다. 모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요리토모도 거의 반년 만에 몸을 푸는 것이라 사랑의 흔적이 풍성하다. “당신도 오랜만에 사랑을 나눠 기분이 좋아 보여요. 사실은 제가 당신이 쇼군이 되는 꿈을 샀거든요. 겐지 가문이 이번 난리를 평정하고 당신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될 거예요.” 요리토모는 마사코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웅전의 천정을 응시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제가 제 동생의 꿈을 샀거든요. 동생이 어느 날 쇼도쿠(聖德) 태자께서 해와 달을 양쪽 손에 쥐여 주는 꿈을 꾸었는데, 제가 아끼던 거울과 백분(白粉)까지 주고 샀어요. 달은 ‘간토’이고 해는 ‘간사이’가 아니겠어요? 어서 가마쿠라로 가셔서 겐지 가문의 무사 집단을 모으세요. 저도 아버지를 설득해 힘을 보태겠어요.” “알겠소이다. 그런 큰 뜻을 갖고 있었다니 대단하오.”
한편 마사코의 아버지는 기가 막혔지만 그렇다고 딸을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멸망한 거나 마찬가지인 미나모토 가문이 뭘 하겠어. 딸년이라고 있는 것이 저렇게 아비 속을 썩이니 이게 무슨 일이람.’ 하고 체념했다. 그런데 다이라(平) 가문에서는 이런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다이라 가문의 유력자가 마사코의 아버지를 불렀다. “당신 딸이 미나모토 요리토모와 결혼했다고 하던데, 당신 정신이 있소 없소?” 호조 도키마사는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딸년의 목을 벤다고 했는데도, 밤에 도망을 쳤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아마 딸이 미쳤나 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하긴 그깟 놈이 뭘 하겠소. 그냥 딸에게 요리토모를 꽉 쥐고 엉뚱한 짓 못하게 하고 동태를 잘 감시하시오. 자식들 이기는 부모 보았습니까? 이해하겠소.” 마사코의 아버지 도키마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세월은 흘러 마사코의 분석대로 시국의 분위기는 점차 겐지 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사코는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요리토모를 채근해 남들 눈에 잘 안 드는 외진 곳으로 옮겨 그가 실력을 닦는 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했다. 마사코의 내조는 헌신적이었지만 남편이 게으름이라도 피우는 모습이면 가차 없이 질책했다. 마사코의 이런 모습은 당시 일본 여성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내 눈은 틀림없어. 내 남편은 반드시 다시 자기 가문을 일으키고, 일본을 제패할 거야’라며 자기 암시를 했다. 교토에 있던 마사코의 아버지 도키마사도 헤이시 가문의 기둥인 시게 모리가 갑자기 병사하자 시운이 다 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교토와 가마쿠라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일촉즉발의 상태다. 요리토모는 기회를 봐가면서 다이라 가문의 눈을 피해 가며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이라 가문이 너무 교만해지면서 천황까지 능멸하기 시작했고, 중세 일본사회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었던 세력인 불교계까지 자존심을 건드려 반(反) 다이라 감정이 팽배해졌기 때문이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와 마사코는 불교계의 원로들을 설득해 군사들을 모을 수 있었다. 불교계가 나서서 적극 도와주자 요리토모는 반 다이라의 선봉에 서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드디어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다이라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갖추고 만다.
1180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던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드디어 다이라 가문과 5년간의 전쟁을 시작했다. 5년 후인 1185년 3월 24일, ‘단노우라(壇浦 : 지금의 시모노세키)’ 해안에서 두 가문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미나모토 가문은 드디어 다이라 가문을 멸망시키고 일본을 제패한다. 다이라 가문으로서는 진작에 미나모토 요리토모를 죽이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된 셈이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혈혈단신 유배자 신분에서 호조 마사코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헤이케 가문을 차례로 무너뜨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사코의 공은 절대적이다. 그녀의 헌신적 사랑과 사무라이 사회의 결집에 있어서도 그의 열정적 공로가 없었다면 겐지(源氏) 가문이 똘똘 뭉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여장부요, 논리 정연한 달변가요, 여자 사무라이였다. 겐지(源氏) 가문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아직 천하가 요리토모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아군들 사이의 논공행상과 권력 다툼은 어쩌면 더 치열한 또 다른 전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전공이 큰 배다른 막내 동생 요시츠네를 1189년 4월 30일에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가마쿠라로 귀환하고, 1192년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일본 최초의 쇼군(將軍)에 등극한다. 이러한 쇼군 체제는 일본 역사에서 약 675년간, 그러니까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867년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사코의 질투심에 대한 사례이다. 전국을 통일한 이후 어느 날 마사코는 “당신 요즘 애인이 생겼다면서요?”라며 남편에게 따진다. “당치도 않는 소리 말아요. 내가 당신을 두고 어떤 여자를 가까이한단 말이요?” 쇼군의 시치미를 띤 모르쇠 작전이다. 그러나 마사코가 누구냐? 없는 말을 하는 그녀가 아니다.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이즈섬의 어부의 딸 야마가와 기쿠에가 호위무사로 가장해 매월 1일과 15일 밤에 쇼군의 관저에 바람처럼 들어왔다가 아침 이슬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요리토모가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 사귄 친구가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다. 요리토모는 그때 비록 나이는 10대였으나 청년 티가 물씬 풍기는 교토 귀족 풍모를 갖춰 어촌에서 자란 그녀는 첫눈에 반해 시간만 있으면 그와 어울려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가 이젠 마사코를 찾지 않는 빈틈에는 그녀를 몰래 불러들이곤 했던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쇼군의 입장에서 궁지에 몰릴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어 화를 내며 술이나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자고 마사코를 어르고 달랜다. “이게 얼마 만이요.” 좀처럼 여색을 탐하지 않는 요리토모가 오늘은 서두른다. “장군께서 저를 소박 맞히니까 그렇죠.” 마사코가 쏘아붙인다. 요리토모의 오른손이 은근슬쩍 마사코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여음(女陰)으로 서서히 옮겨진다. 그곳은 벌써 쾌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손끝이 닿자 에로스의 향기가 팔을 타고 대뇌로 전달된다. 마사코는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조금 전에 어부의 딸 얘기를 해 이실직고(以實直告)를 받고 싶었으나 모르쇠 작전에 밀려 한발 물러섰으나 그냥 넘길 그녀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이 더 적극적으로 사내를 탐하고 있다. 사내도 여인의 행동을 감지했는지 여왕벌을 위한 일벌처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여인의 극치를 충족시키려 노력한다. 여인의 자궁은 해일이 넘치듯 넘실거리며 뜨거운 태양을 삼킨다. 두 다리로 엉덩이를 짓누르고 두 손으론 양어깨를 잡아당겨 활처럼 휘어서 숨이 넘어갈 자세다. 사내는 몇 번이고 절정의 순간이 몰려왔으나, 전장의 피비린내 나는 설원을 연상하면서 욕망을 냉각시키면서 여인의 쾌락 충족에만 몰두한다. “장군 멋져요. 장군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요?” 열락의 고갯길을 넘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낙지 빨판 같은 흡착력을 가진 은밀한 곳에서 쾌락의 팡파르를 부르며 점령장군을 영접한다. 사내도 용광로 같이 뜨거운 여음에 들어가 기세 등등 하던 물건이 한여름 땡볕에 아이스크림 녹듯 소리 없이 무너진다. 달빛에 비친 마사코의 나신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땀범벅의 그들은 동시에 욕탕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상기된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에게 만족했음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물을 끼얹어주며 짜릿했던 섹스의 여운을 닦아낸다.
어느 보름날 저녁이다. 쇼군 요리토모는 서재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서성인다. 오늘 저녁에 호위병으로 가장해 이즈섬에서 야마가와가 오는 날이다. 그런데 소식도 없이 두 번이나 오지 않아 오늘 안 오면 한 달 보름째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도 예감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이유를 알아볼 수도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앓고 있는데, “장군, 야마가와란 여인을 혹 알고 계신가요?”라며 들이닥친다. 느닷없는 질문에 요리토모는 소스라치게 놀라 들고 있던 서류를 다다미 바닥에 떨구었다. “난 모르는 이름이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요리토모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정작 화 낼 사람은 소첩인데” 마사코는 요리토모를 따라 들어가며 하녀를 불렀다. 하녀가 빨간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마사코에게 건넨다. 요리토모가 의자에 앉자 “장군 이것을 보세요. 누군지?” 마사코는 보자기를 풀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어부의 딸 야마가와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윤기 있는 머리는 곱게 빗겨졌고 분홍색 입술연지까지 발라져 있었다. 그리곤 울면서 자기 처소로 돌아가 버렸다. 쇼군은 너무나 놀랐지만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마누라라도 진정시켜야 될 것 같아서 급히 뒤를 쫓아서 마사코의 방으로 갔다. 마사코는 요리토모가 이실직고를 하지 않자 포기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오랜만에 육체의 허기를 마음껏 채우기로 한다. 요리토모는 전례 없이 포근한 여체로 변한 마사코에게 혼신을 다해 행복의 여행을 만끽한다. 그 후 마사코는 2년 사이로 장남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賴家 : 2대 쇼군)와 미나모토노 사네토모(源實朝 : 3대 쇼군) 등 2남 2녀를 연이어 낳는다. 마사코가 임신해 있는 동안에 요리토모는 가메노 마에(龜の前)라는 여자를 총애하게 되어 그녀를 가까이 두었다. 이를 도키마사의 후처 마키노 카타(牧の方)로부터 전해 듣게 된 마사코는 질투심으로 격분한 나머지, 11월에 마키노 카타의 아버지 마키노 무네지카(牧宗親)에게 명해 가메노 마에가 살던 후시미 히로쓰나(伏見廣綱)의 집을 부숴버리게 했다. 이때 가메노 마에는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달아났다. 요리토모는 살아있는 동안 많은 여성들과 정을 통하면서도 마사코를 무서워해 거의 숨어 다니다시피 했다. 요리토모는 주에이(壽永) 원년(1182년) 7월에 겐지 일족이었던 닛타 요시시게(新田義重)의 딸 쇼쥬히메(祥壽姬)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했지만 마사코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요시시게가 딸을 다른 곳에 시집보내버리는 바람에 실현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마사코의 임신중에 요리토모는 또다시 다이신노 쓰보네(大進局)라는 여자와 정을 통해서 후에 아들 죠쿄(貞曉)를 두었는데, 마사코를 두려워해 아이의 출산을 축하하는 의식도 생략할 정도였다. 다이신노 쓰보네는 마사코의 질투를 두려워해 몸을 숨겨버렸고, 그 아들 또한 마사코를 무서워해 유모도 두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 가며 자라다 결국 일곱 살 때 마사코로부터 도망치다시피, 출가하여 교토의 닌나사(仁和寺)로 보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사코의 삶은 결코 평온치가 않다.
요리토모는 마사코에게 남자 이전에 삶의 전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떴다. 요리토모가 사냥을 하다 낙마로 어이없이 사망하자 마사코는 세상 살맛을 잃은 것이다. 요리토모 사후 그의 아들 요리이에가 쇼군을 이어받고, 마사코는 출가하여 비구니로서 아마미다이(尼御台)라 불리게 되었다. 쇼군 요리이에는 말 타기를 좋아해 가마쿠라 거리를 종횡무진으로 달리면서 양민에게 민폐를 끼쳐 말썽을 일으키기 예사다. 말썽꾸러기 쇼군이다. 말을 타면 가마쿠라 거리가 아니면 우지 강가를 질주한다.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고 예쁜 여자를 보면 납치해 자기 여자로 만든다. 그것도 성에 안 차면 연회석에 참가한 부하 부인을 뺏기도 한다. 그래서 부하들은 부부동반 행사에 부인 동반을 극도로 신경을 쓴다. 심지어 일부러 못난이 행세를 시키기도 하고, 얼굴에 점을 붙여 미모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불씨가 되었다. 붙인 점이 매력점이 되어 부인을 빼앗긴 부하가 생겼다. 그것도 가장 아끼는 부하의 부인이다. 그 부인은 정조를 빼앗기고 남편을 맞을 수 없어 유서를 남긴 채 우지 강에 투신해 일부종사의 미덕을 남겼다. 남편 요리토모의 아들이 쇼군이 되었지만 카마쿠라 정권의 고케닌(御家人)들은 막부의 실권을 둘러싸고 암투가 심각했다. 숙청과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 숙청 전쟁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승리한 가문은 초대 쇼군의 외척 가문이자 카마쿠라 막부의 최대 투자자였던 호조 가문이었고, 이 당시 호조 가문의 실권자는 비구니 아마미다이(尼御台) 마사코와 그녀의 동생 싯켄(執權) 호조 요시토키였다. 한편 이 숙청 전쟁 과정에서 초대 쇼군의 직계 혈통마저 멸문지화를 겪었는데, 요리토모의 핏줄을 잇는 직계는 물론 카와치 겐지의 방계들도 대부분 제거가 되었다. 그러자 교토 조정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고토바 상황은 막부의 실권을 움켜쥔 요시토키가 차기 쇼군 문제로 사사건건 자신과 충돌함에 따라서 요시토키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조큐 3년(1221년)에 이르러서는 싯켄(執權) 요시토키 토벌령을 내린다. 이때 비구니 쇼군(尼将軍) 소리를 듣던 마사코는 고토바 상황이 요시토키 한 사람을 넘어 바쿠후(幕府) 체제 자체를 위협한다며, 죽은 남편 요리토모의 은혜를 입은 자는 모두 조정의 잘못된 칙령을 두려워 말고 일어나 싸우라고 선동했다. 그리고 관동무사(坂東武者)들을 규합해 정벌군을 일으킨다. 이후 막부군은 조정군을 분쇄하고 가마쿠라 막부를 지켜냈다. 막부는 교토로 쳐들어가 고토바 상황을 오키 섬으로 유배 보냈으며, 난에 가담했던 공경귀족, 무사들을 모두 참수하는 등 엄격하게 처벌했다. 또 참수한 귀족들에게 몰수한 영지는 공을 세운 무사들에게 포상으로 내렸다. 이후 마사코는 조정을 감시하기 위해 교토에 막부 기관인 로쿠하라탄다이(六波羅探題)를 설치했다. 이후 로쿠하라탄다이는 행정, 사법을 총괄하는 조정과 막부의 최고기관이 되었다. 1225년 마사코는 과로로 68세에 사망했다. 다음 해 요리토모의 직계 혈통이 끊긴 가마쿠라 막부는 요리토모 여동생의 아들 후지와라노 요리츠네를 교토로 불러 쇼군으로 세우고, 요리토모의 손녀 다케노 고쇼를 그와 혼인시켰다. 그러나 고쇼가 아이를 사산하고 산후병으로 사망하면서 요리토모의 혈통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남편을 움직여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였고, 남편의 사후에는 2대의 쇼군의 섭정을 하면서 철권통치자로 거듭난다. 그녀는 3대에 걸쳐 쇼군의 창설과 집권에 관여하며 일본의 ‘슈퍼파워’로 군림했다. 그녀는 강력한 권력을 구축하고 약 30년간 일본을 좌지우지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막부 체제를 수립하였지만, 질투심과 숙청에는 매서운 피바람을 일으켜서 후세에서 3대 악녀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금삿갓 운사芸史 금동수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