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流水曲(유수곡) / 유수곡

금삿갓의 漢詩工夫(251215)

by 금삿갓

流水曲(유수곡) / 유수곡

- 崔國輔(최국보)


歸來日尙早

귀래일상조

○○●●●

돌아오니 날이 너무 일러


更欲向芳洲

갱욕향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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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주로 가고 싶지만


渡口水流急

도구수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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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어구에 물살이 너무 급해


回船不自由

회선부자유

○○●●○

배 돌리기가 자유롭지 않네.

此(차)는 舟船(주선)을 浮於流水(부어유수)하야. 以遨以游(이오이유)하야. 極其樂意(극기락의)하고 歸來則日色尙早(귀래즉일색상조)라. 故(고)로 更欲放舟(갱욕방주)하야. 至于芳菲洲渚(지우방비주저)하야. 期盡未盡之樂矣(기빈미진지락의)러니. 渡口(도구)에 水之流太急(수지류태급)하야. 不可任意回船(불가임의회선)하니 此(차)는 水勢洶湧故耳(수세흉용고의)라. 倘或詩人(당혹시인)이 乘舟而游耶(승주이유야)아. 抑或採蓮女耶(억혹채련여야)아. 未可知也(미가지야)로다.

이 시는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고 노닐면서 그 즐거운 뜻이 극진히 하였는데, 돌아와서 보니 햇빛이 아직도 일렀다. 그러므로 다시 배를 띄우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 있는 물가에 이르러서 다하지 못한 즐거움을 다하기를 기약을 했는데, 나루 어귀에 물의 흐름이 너무나 급해서 마음대로 배를 돌릴 수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물살이 너무 세차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詩人(시인)이 배를 타고서 놀았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혹시 연밥을 따는 여자였던가? 알 수가 없다.


○ 流水曲者(유수곡자)는 游於水故(유어수고)로 以爲題(이위제)하고 吟咏其事者也(음영기사자야)라.

유수곡(流水曲)이란 것은 물에서 노닐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제목을 삼고 그 일을 읊은 것이다.

* 崔國輔(최국보) : 생몰미상. 당나라 오군(吳郡, 강소江蘇 소주시蘇州市) 사람. 산음(山陰, 지금의 강소江蘇 소흥시紹興市) 사람이라고도 한다. 개원(開元, 당 현종 연호) 14년(726) 진사가 되어 산음위(山陰尉)와 허창령(許昌令), 집현원직학사(集賢院直學士)와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등을 역임했다. 천보(天寶, 당현종 연호) 11년(752) 왕홍(王鉷)의 사건에 연루되어 경릉군사마(景陵郡司馬)로 좌천되었다. 육유(陸游)와 어울리면서 차에 대해 품평하고 수질(水質)에 대해 논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가화(佳話)로 회자되었다. 시를 잘 지었고, 특히 5언절구에 능했지만 육조 시대 오가(吳歌)의 유운(遺韻)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시는 45 수이며, 그중 오언절구는 23 수이다. 그윽하게 원망하는 시로 유명하여 幽怨體(유원체) 시인이라 칭하며, 許蘭雪軒(허난설헌)이 유원체를 본뜬 <효최국보체 3수(效崔國輔體 三首)>를 지었다. 문집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1권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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