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洛陽道 又(낙양도 우) / 낙양 가는 길에 2
洛陽道 又(낙양도 우) / 낙양 가는 길에 2
- 儲光羲(저광희)
大道直如髮
대도직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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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은 곧아 머리칼 같고
春日佳氣多
춘일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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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좋은 기운 많은데
五陵貴公子
오릉귀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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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의 귀공자들은
雙雙鳴玉珂
쌍쌍명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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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쌍이 옥가를 울리네.
* 五陵(오릉) : 낙양의 지명이며 한(漢) 나라 때의 황릉이 있던 곳으로 당나라 시절에는 고관이나 부귀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지칭한다.
* 玉珂(옥가) : 말에 달고 다니는 장식물로 주로 5품 이상의 관원들이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
五陵(오릉)은 帝王陵寢附近之處(제왕릉침부근지처)니 多貴臣所居(다귀신거소)라. 玉珂(옥가)는 馬飾也(마식야)라. 此言東都貴遊之盛也(차언동도귀유지성야)라.
오릉이란 곳은 제왕들의 능침(陵寢)에 가까이 붙은 곳이니, 많은 귀한 신하들이 사는 곳이다. 옥가(玉珂)는 말장식이다. 여기서는 동도(東都: 동쪽 도읍인 낙양洛陽)의 귀공자들이 노는 성대함을 말한 것이다.
言東都之官衢寬濶而路直(언동도지관구관할이로직)이 如髮(여발)하고, 芳春(방춘)에 韶華佳麗(소화가려)하며, 五陵年少之貴介公子雙雙兩兩(오릉년소지귀개공자쌍쌍양량)히 幷馬春游(병마춘유)하니 鳴鑾佩玉之聲(명란패옥지성)이 相續而不絶也(상속이불절야)라.
말하기를 "동쪽 도읍의 관청길이 매우 넓고 길이 곧아 머리카락과 같고, 향기로운 봄날에 봄빛이 아름답고 고운데, 오릉(五陵)의 나이 젊은 귀한 공자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말을 나란히 하여 봄놀이를 하니, 울리는 방울과 차고 있는 옥에서 나는 소리가 서로 이어져서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光羲(광희)는 潤州人(윤주인)이니, 天寶中(천보중)에 爲御史(위어사)라. ○ 盛唐(성당).
저광희(儲光羲)는 윤주사람이니, 천보(天寶) 중에 어사(御史)가 되었다. 성당(盛唐)의 사람이다.
* 儲光羲(저광희) : 707년 추정 ~ 760년 추정 정도에 생존. 당나라 윤주(潤州) 연릉(延陵, 지금의 강소江蕭 단양현丹陽縣 남쪽) 사람. 조적(祖籍)은 연주(兗州, 지금의 산동山東에 속함)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4년(726) 진사가 되고, 중서시문장(中書試文章)과 사수위(汜水尉)를 지냈다. 나중에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가 다시 나와 태축(太祝)에 임명되어 세칭 저태축(儲太祝)으로 불린다.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다. 안녹산(安祿山)이 장안(長安)을 함락했을 때 협박으로 관직을 받았기 때문에, 난이 평정된 뒤 귀양 가 영남(嶺南)에서 죽었다. 원래 문집 70권이 있었지만, 이미 없어졌다. 현재 『저광희시(儲光羲詩)』가 전한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4권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