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木蘭柴(목란채) / 목란채
금삿갓의 漢詩工夫(260108)
木蘭柴(목란채) / 목란채
- 裵迪(배적)
蒼蒼落日時
창창낙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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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숲에 해가 질 무렵
鳥聲亂溪水
조성란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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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시냇물에 요란하네.
緣溪路轉深
연계로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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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두른 길은 돌아서 깊어지니
幽興何時已
유흥하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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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흥취가 어느 때에 다할까.
木蘭柴(목란채)는 與鹿柴(여녹채)로 同(동)이라. 夕陽(석양)이 紅歛(홍렴)하고 天色(천색)이 黃昏(황혼)하면 山溪樹木(산계수목)의 蒼蒼之色(창창지색)이 倍加光輝而此時(배가광휘이차시)에 歸鳥之聲(귀조지성)이 嘈嚶于溪畔叢林(조앵우계반총림)하니 緣溪之路(연계지로)가 轉爲深邃(전위심수)하여 幽興(유흥)이 何時而可已乎(하시이가이호)아.
목란채(木蘭柴)는 녹채(鹿柴)와 같다. 석양이 붉게 걷히고 하늘빛이 황혼이 되면 산속 시냇가나무들의 짙푸른 빛이 갑절이나 빛나게 된다. 그리하여 이때에 돌아온 새의 소리가 시냇가의 떨기 진 숲에서 지저귀어 시내를 따라 난 길이 돌아서 깊어지니, 그윽한 흥취가 어느 때나 그치겠는가?
* 裵迪(배적) : 자(字)나 호(號)와 생애는 불상(不祥)이고 당대(唐代)의 관중(關中, 지금의 섬서陜西) 출신으로 시인이다. 일찍이 종남산(終南山)에 은거(隱居)하였다가, 숙종(肅宗, 756~762) 때에 촉주자사(蜀州刺史)를 지냈다. 개원(开元) 말경에 장구령(张九龄)의 형주(荆州) 막부(幕府)에 들어갔다. 왕유와 절친해서 왕유의 망천 별장 근처에 그 역시 별장을 짓고, 서로 왕래하며 지냈다. 술도 함께 마시고, 시도 서로 주고받아서 왕유가 <작주여배적(酌酒與裵迪-배적에게 술을 권하며)>라는 시도 남겼다. 두보, 이기(李頎) 등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배적의 시는 맑고 고우며, 또 고고(孤高)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그는 전원산수파(田園山水派) 시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