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7살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된 항탁(項橐)

불치하문(不恥下問)

by 금삿갓

아랫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모르는 사항은 물어야 한다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은 공자(孔子)의 배움에 대한 자세이다. 공자는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던 중에 뽕따는 못생긴 아가씨에게 봉변을 당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구멍이 구불구불한 구슬을 꿰는 현명한 방법을 물었다. 또 공자(孔子)에게 7살 난 항탁(項槖)이란 어린 스승(?)이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설(說)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传)>에 12살짜리 상경(上卿) 감라(甘羅)와 승상(丞相) 여불위(呂不韋)의 다음과 같은 대화의 기록이 있다. 감라는 감무(甘茂)의 손자인데, 감무가 죽은 후 감라는 나이 12세로 진나라의 승상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를 섬겼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강성군(剛成君) 채택(蔡澤)을 연(燕) 나라에 사신으로 보낸 지 3년 뒤 연왕 희(喜)가 태자 단(丹)을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진나라는 장군 장당(張唐)을 연나라에 재상으로 보내 연나라와 연합하여 조나라를 쳐서 하간(河間)의 땅을 넓히고자 했다. 장당이 문신후에게 “신이 일찍이 진 소왕(昭王)을 위해 조나라를 토벌하자, 조나라는 신을 원망하며 ‘장당을 잡는 사람에게 100리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연나라로 가려면 조나라를 거칠 수밖에 없으니, 신은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여불위는 불쾌했지만 강요할 수 없었다. 감라가 “군후(君侯)께서는 왜 그렇게 불쾌해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불위는 “내가 연나라와의 연합을 위해 장당에게 연나라의 재상이 될 것을 청했거늘 가려하지 않는구나.”라고 했다. 감라가 “신이 그를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문신후가 “관두라! 내가 직접 요청했는데도 듣지 않았는데, 어린 네가 무슨 수로 가게 한단 말인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감라는 “항탁(項橐)은 일곱 살 때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는데, 지금 신은 벌써 열두 살입니다. 군께서 신을 시험해 보시면 될 일이지 어째서 큰소리로 나무라십니까?”라고 했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지은 <전국책·진책오(战国策·秦策五)>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한다.

항탁(項槖)은 춘추시대 거국(莒国, 지금의 산동성 일조시 일대)에 살았던 신동(神童)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설(說)에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일조시(日照市) 남산구(嵐山區) 비곽진(碑廓镇)의 성공산(圣公山) 아래 죽하애(竹河崖)에서 살았다고 한다. 공자는 그의 총명함에 탄복하였다고 한다. 항탁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 사료나 상세한 기록이 부족하다. 학자들은 보통 그와 공자(BC 551년-BC 479년)의 교집합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공자가 51~55세쯤에 항탁을 만났다고 할 때 그가 7세였다면, 그의 출생 연도는 BC 508년 또는 BC 504년이었을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항탁이 열다섯 살쯤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주요 생활 시기는 BC 508년~BC 488년 사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옛 중국에서 어린이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데 쓰던 교재였던 <삼자경(三字經)>이라는 책이 있다. ‘세 글자로 된 책’이라는 제목처럼 모든 구절이 세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와 저술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송나라 때 왕응린(王應麟)이 지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 “昔仲尼(석중니),師項橐(사항탁), 古聖賢(고성현), 尙勤學(상근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옛날 중니(공자)가 항탁을 스승으로 모셨고, 옛 성현은 오히려 학문에 힘썼다고 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항탁과 공자의 일화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춘삼월의 화창한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동쪽인 거(莒) 지방으로 유람을 떠났다. 거나라에 당도하여 성안을 지나는데, 마침 그곳에 한 떼의 아이들이 길 가운데서 진흙을 가지고 성루(城樓)를 만들며 놀고 있었다. 공자 일행이 탄 마차는 아이들 놀이에 가로막혀서 지나갈 수가 없었다. 공자 일행이 길을 비켜달라는 요청을 하자, 한 어린이가 손으로 길 위에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키며 “어르신, 어르신이 보시기에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보니, 그것은 진흙과 깨진 기와 조각으로 만든 한 채의 장난감 성루였다. 그래서 성루 같다고 했다. 그 어린아이는 “그럼 성이 마차에게 길을 양보해야 합니까, 아니면 마차가 성을 피해서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당돌한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공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네 이름이 뭐냐? 나이는 몇 살이고?”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제 이름은 항탁(項橐)이고, 7 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말을 아주 잘하는구나! 내가 다시 한번 더 시험해 보고 만약 대답이 맞으면, 우리 마차가 길을 돌아서 가마. 그런데 만약 대답이 맞지 않으면, 네가 곧 성루를 헐어서, 우리가 지나가게 해 다오, 알겠느냐?” 그 말을 들은 항탁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 해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바위가 없는 산, 물고기가 살지 않는 물,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은 각각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금세 “토산에는 돌이 없고, 우물에는 고기가 없고, 반딧불에는 연기가 없지요.”라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몇 가지를 질문했지만, 모두 그 어린아이는 전혀 난처해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공자는 자기도 모르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향탁을 칭찬했다. 그리고 마부에게 말머리를 돌려 다른 길로 마을에 들어갔다.

마을에서 묵은 공자 일행이 들길로 나서자 길옆의 논밭에서 한 농부가 김을 매고 있었다. 공자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어제 이 마을 어린아이에게 당한 것이 괘씸해서 괜스레 그 농부에게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그 농부에게 “ 여보시오, 농부. 오랫동안 농사일에 숙달되었으니 한 가지 묻겠소. 그대는 하루에 호미질을 몇 번씩 하는지 알고 있나요?” 질문을 받은 농부도 습관적으로 호미질을 할 뿐이지 몇 번하는지는 관심이 없기에 알 수가 없었다. 농부가 잘 모른다고 하자, 질문한 사람이 농사일을 하면서 그런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하니 농사일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다그쳤다. 마침 그때 저쪽에서 엎드려 김을 매던 어린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들, 우리 아버지는 호미질하는 숫자를 알고 계시지만 학문을 배우지 않아서 숫자 감각이 없어서 말씀 못하는 것뿐입니다. 어르신들은 학문도 많이 하시고, 오랜 기간 마차를 타고 여러 곳을 여행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아침에 여기까지 오는데 말발굽이 몇 번 옮겨졌는지 알 수 있습니까?” 질문을 한 사람이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 아이는 공자를 보고 말했다. 이 질문 말고 다른 질문을 드려서 잘 대답하면 자기가 스승으로 모시고, 답을 모르면 어떻게 하실 건가 물었다. 공자가 그 아이를 자세히 보니 어제의 그 항탁이란 아이였다. 공자도 관심이 생겨서 자기도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어린아이지만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약조를 했다. 그러자 형탁이 “오리는 어떻게 물에 떠 있으며, 기러기는 어째서 잘 울며, 산의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푸른지 말해 보세요.” 공자가 대답했다. “오리는 가벼운 털과 물갈퀴가 있어서 물에 뜰 수 있고, 기러기는 목이 길어서 그 소리가 좋게 울 수 있으며, 소나무는 속이 단단하게 꽉 차있기 때문에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푸른 것이다.” 대답을 들은 항탁이 고개를 저으면서 제대로 된 답이 아니란다. “그럼 자라나 거북이는 털도 없고 물갈퀴가 없어도 물에 잘 떠있고, 두꺼비와 개구리는 머리와 목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목이 짧아도 잘 만 울며, 대나무는 속이 텅텅 비었는데도 사시사철 푸른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공자가 크게 한 방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마차에서 내려와 어린 항탁에게 예를 표하고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중국에서는 ‘삼난중니(三難仲尼)’ 또는 ‘공자삼난(孔子三難)’ 등의 용어로 각종 문헌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힘이 장사였고, 활 쏘는 기술과 마차를 모는 재주도 뛰어났지만, 절대로 자신의 힘과 무예를 자랑한 적이 없었다. 공자는 주(周) 문왕(文王)을 가장 존경하였고, 음악을 사랑하였다. 그런 공자는 어린아이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공자의 학문과 교육에 대한 정신은 바로 불치하문(不恥下問)과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일 것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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