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광하면 당연히 에펠탑을 첫 손으로 꼽을 거다.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고 파리에 오면 보기 싫어도 에펠탑을 봐야 한다. 에펠탑 건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유서 깊은 건축물이 많은 파리에 철골로 흉물스럽게 탑을 거대하게 만든다고 엄청 반대가 심했다. 마치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유발을 이유로 수입 금지하라고 데모하던 좌빨들처럼. 그런데 그토록 싫어하던 파리 시민들이 어느 순간 즉 만국박람회가 끝나고 에펠탑을 철거한다니까 반대가 더 심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앞장서서 외치던 모 연예인이 미국 수입 쇠고기집을 개업하듯이. 이런 현상을 바로 에페탑 효과(Effel tower effect)라 한다. 어떤 사물을 자주 접하면 익숙해져서 좋아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래도 여전히 싫어했던 사람은 소설가 모파상이었다. 맨날 시간이 되면 에펠탑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단다. 기자가 에펠탑을 싫어하면서 왜 맨날 여기서 밥을 먹느냐고 묻자 이 식당에 들어오면 탑이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단다.
에펠탑은 그 높이가 324m이며, 이는 81층 높이의 건물과 맞먹는 높이이다.2층이 57m이고, 3층이 115m, 4층인 전망대가 274m 더 올라 가 있으니 층간 간격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남산 타워보다는 해발 고도가 낮다. 그래도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에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단 2년 만에 지을 수 있었다는 게 경이롭다.
당시 조선의 사정을 돌이켜 보면 에펠탑 건립 보다 22년 전에 경복궁을 2년에 걸쳐 복원하여 확대 중건한 것이다. 대원군 이하응의 의지로 조선의 뭔가를 보여주려고 건립자금을 위해 당백전(當百錢)까지 발행하며 조선의 경제에 파동을 치게 만들었다. 반면 에펠탑은 프랑스가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는 기념물로 만들기 위해 공공 응모를 해서 만든 것이다. 귀스타포 에펠은 건축과 다리 등의 설계 및 건축 전문가인데, 뉴욕의 자유여신상의 철골도 설계한 경험이 있었다. 그의 노력으로 오늘날 명물인 이 구조물이 탄생했다.
당시 대원군은 건립비용을 위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강요하거나 당백전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에펠탑의 건설비용은 파리시가 20%밖에 부담하지 않자 에펠 자신이 나머지를 부담해서 지었다. 그런데 이게 대박 벤처산업이었다. 지은 지 3년 만에 건설비용을 다 뽑고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에펠탑의 2,3층 입장료와 최고층 전망대의 입장료 수입이 황금알을 낳는 쇠(鐵)로 만든 거위였던 것이다. 그 당시 입장료가 파리시내 고급 식당의 점심값의 2~3배의 가격이었다니 좀 비싼 편인데도 박람회 기간 중에만 입장객이 180만 명에 달했단다. 대원군도 장사 수완을 발휘하여 경복궁 관람료를 받는 것으로 수익사업화 했더라면 경제가 파탄을 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관점과 관념의 변화가 역사에 큰 획을 긋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2자 세계대전 때에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자 프랑스군이 에펠탑의 전원 등 모든 작동 장치를 파괴시키고 철수했다.그러자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계단으로 올라갈 수밖에. 그런데 히틀러가 와서 전망대에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가 힘들어 포기했다. 그러자 호사가들이 히틀러가 파리는 점령했지만 에펠탑은 점령 못 했다고 수근덕 거렸다. 그래서 엿 먹어라는 심정으로 독일군은 에펠탑 밑에다 적군이나 간첩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