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이다. 대서양의 비스케이만에서, 지중해의 리옹만으로 돌출한 크레우스곶까지 거의 동서 방향으로 뻗은 산맥이다. 최고봉인 아네토봉이 약 3,400m이니 매우 높은 산이다. 한 23년 전에 출장 와서 승용차로 이곳을 넘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가 5월 중순이었는데 눈이 너무 내려서 스페인 교통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지금은 7월이니 그런 걱정은 없으리라.
<피레네산맥 산티아고 순례길 : 금삿갓>
생장 마을의 언덕길을 휘적휘적 걸어 올라오니, 드디어 그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지막 집을 만난다. 생장에서 갈라지는 두 갈래 중 왼쪽의 시세(Cize) 언덕길을 택해야 첫날밤을 보낼 오리손 산장으로 갈 수 있다. 지금부터는 숙소로 예약한 오리손 산장까지 8km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 중간에 5km 지점에 운또 산장이 있고, 또 7km 지점에 까요라 산장이 있다. 어제 야간 버스를 타고 잠도 못 잤기 때문에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않고 8km만 걷고 산장에서 쉬기로 했다. 오리손 산장은 무조건 사전예약을 해야만 숙박이 가능하다.
순례자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은 두 가지 루트가 있다. 첫 번째는 시세 언덕길(Ruta de los Puertos de Cize)로 산티아고를 가는 도보 순례자들이 지나는 일반적인 루트이다. 이 루트는 웅장한 피레네 산맥의 풍광과 주변의 소와 말, 양들의 목장과 광활하게 트인 조망과 넓은 잡초밭을 만난다. 또한 울창한 활엽수림이 길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루트를 지나기 위해서는 해발 1410 미터의 레푀데르 언덕(Col de Lepoeder)을 넘어야 한다. 이 길은 1809년에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할 때 이용한 길이라서 나폴레옹 루트라고도 한다.
두 번째 길은 자전거 순례자들과 기상이 좋지 않은 시기에 주로 이용하는 루트인 발카를로스 루트(Via Valcarlos)이다. 발카를로스를 거치는 이 길은 시세 언덕길보다는 조금 긴 27Km의 길이다. 시세 언덕길 루트 보다 경사도가 낮아 편하지만 계곡길이 많아 경치가 별로라는 평가가 많다. 그렇지만 이 루트 역시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운 계곡길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단다. 아름다운 샤를마뉴의 계곡(Valle de Carlomagno)을 지나게 되며 해발 1,057미터의 쁘에르또 데 이바녜따(Puerto de Ibañeta)를 넘어야 하는 코스이다. 그래서 조선 과객 금삿갓은 시세 언덕 코스를 택했고, 그 중간에 오리손에서 자고 아침의 멋진 일출을 볼 작정이다.
아직까지는 산길이 아니고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어서 한국에서의 등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하다. 최고 고도 1,420m를 넘어야 한다고 글로만 읽고 엄청 걱정했는데, 완만한 경사도로 북한산 등산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있지만 주변 경치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길섶에는 싱싱하게 자라는 풀들과 가축들의 목장이 즐비하고, 저 멀리 끝없이 산들이 보인다.
중간중간 입간판으로 도로 표지판이 있어서 남은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풀들이 대부분 양치식물 즉 우리나라 고사리처럼 생긴 풀들이 평원처럼 깔려있다. 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고 그저 넓은 초원이다. 날씨가 점차 어둑어둑해지더니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자 기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욱하게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혹시 비라도 올려는 것일까?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에 피레네 산맥이 비로 흠뻑 적시는 환영을 해줄까 봐 걱정이다.
드디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배낭의 우비 커버를 씌우고, 급히 우산을 꺼내 들고 비를 가려본다. 임시방편으로 가볍고 조그마한 우산을 준비했는데, 나그네의 전신을 가리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날씨가 추운 계절이 아니기에 비를 맞아도 그리 춥지 않고 감기 걸릴 위험도 적다. 피레네가 조선의 과객 금삿갓을 반기는 좋은 징조라 생각하고 걷는다. 서서히 배낭의 무게가 어깨와 다리을 압박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