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호르무즈(Hormuz) 해협의 기구한 이야기
미국·이스라엘 연합군과 이란의 전쟁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아슬아슬하다. 세계의 이목(耳目)은 단순히 전쟁 그 내용 보다 너비 39Km인 호르무즈 해협으로 쏠려있고, 이란은 엄포와 약간의 위협으로 이 해협을 유효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잠시 근래 역사만 돌아보아도 이곳은 뜨거운 불씨가 이글거렸던 요충지였는데, 이곳에 목줄을 걸고 있는 서방 세계가 어떻게 확실하고 비가역적(非可逆的)인 조치도 없이 방치했던가? 궁지에 몰린 이란이 기뢰를 설치하리란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전략이다. 특히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지금 우물이 말라가는 사막에 던져져 있는 형국이다. 1984년의 석유 기지 카르그(Kharg) 섬 공격으로 인한 이란·이라크 전쟁, 1988년 미국·이란 해전 말고도 크고 작은 충돌이 이 해협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곳이 항구적인 평화와 안전 항해를 보장하는 조치는 실효성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전쟁으로 그야말로 숨통이 꽉 조이게 된 것이다.
<발이 묶인 유조선들>호르무즈(Hormuz)란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정설은 없다. 페르시아어로 조로아스터교의 주신(主神)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또는 오르마즈드(Ormazd)나 호로마제스(Horomazes) 등의 이름에서 발음이 변하여 된 것이란 설이 있다. 다른 설은 페르시안인들이 즐겨 먹는 과일인 ‘대추야자의 밭’을 나타내는 말인 후르-무즈(Hur-Mogh)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오만(Oman) 본토에서 떨어져 나와 두바이(Dubai) 쪽에 붙어있는 오만 반도가 대추야자처럼 생기기는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서기 309년에서 379년 사이에 통치했던 페르시아의 10대 왕인 샤푸르(Shapur) 2세의 어머니인 이프라 호르미즈드(Ifra Hormizd)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주장이다. 필자 금삿갓은 개인적으로 이 유래가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호르미즈드라는 이름도 조로아스터교의 신의 이름의 다른 발음이다. 이곳은 그 당시에도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업적 번영을 누렸을 것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이 점령하기 전까지도 호르무즈 왕국은 실크로드의 교통로로서 부와 번영을 누렸다. 그 이전 15세기에 명나라의 정화(鄭和) 함대가 왔을 때도 부유한 것으로 기록했다. 이곳은 오랜 역사 동안 이프라 호르미즈드 여왕의 삶처럼 숱한 사건 사고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기구한 운명처럼 이곳도 잠잠한 날이 없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짓밟히는 역사의 연속이다.
<이란의 비대칭 무기 샤헤드>호르미즈드 여왕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의 귀족의 딸로 태어나서 사산왕조의 8대 왕인 호르미즈드 2세(Hormizd II)와 결혼하여 왕비가 된다. 그녀와 남편의 출생 연도는 부정확하지만 남편의 재위기간은 303년~309년으로 아주 짧았다. 그와 남편 사이에는 세 아들을 두었고, 남편이 사망할 당시에 그녀는 막내를 임신하고 있었다. 장남은 아두르 나르세(Adur Nars도)로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1년도 못 넘기고 귀족과 사제들에게 폐위되어 살해당한다. 왕후가 살아 있지만 실권이 없다 보니 귀족들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왕을 살해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둘째 아들은 눈을 찔러서 실명시켜서 즉위를 못하게 했다. 셋째 아들은 감옥에 투옥했다. 이 아들은 어느 힘 있는 귀족의 딸과 눈이 맞아서 그녀의 도움으로 탈옥하여 동로마제국인 콘스탄티노플로 망명을 가서 그곳에서 살았다. 호르미즈드 여왕의 입장에서는 정말 지옥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세 아들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장님이 되고, 남은 아들은 외국으로 망명을 갔으니 기구한 운명이다. 배 속이 아이가 하나 더 있었지만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쿠데타를 일으킨 귀족들이 모든 권력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와 유복자를 죽이지는 않고, 왕관을 가져와서 그녀 부른 배 위에 올려놓았단다. 유복자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그야말로 왕이 된 것이다. 역사상 태어나기도 전에 왕이 된 사례는 바로 이 샤푸르(Shapur) 2세 왕이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왕이 되어 70년간 왕위에 있다가 죽었으니 사산왕조에서 최장기 왕위에 재위한 것이다. 갓난 아기가 왕이니 당연히 어머니가 섭정을 하겠지만 실권이 없고, 귀족들이 거의 통치를 했을 것이다. 16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섭정을 하고, 사망하자 그는 서서히 왕권을 확립하여 70년간 통치하면서 사산왕조의 황금기를 열었고 가장 훌륭한 왕 4명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으로 고생한 어머니를 위하여 그 정도의 이름을 부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뢰의 종류 : 나무위키>아무튼 호르무즈 해협은 천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면 지금 최대의 타오르는 불덩이가 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보았듯이 현대의 전쟁은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지만 그것과 대비된 비대칭 무기의 효율성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공중전에서 일방이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드는 첨단 무기를 대거 사용하는데 반하여 상대방은 수천만 원짜리 값싼 무인 드론인 샤헤드(Shahhed)를 대거 투입하여 유효 적절한 공세를 유지한다. 해전에서는 더하다. 조(兆) 단위 규모인 항공모함의 발목을 잡는 것이 몇 백만 원짜리 값싼 기뢰(機雷)와 수중드론이다. 해협 봉쇄의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으로 봉쇄를 하거나, 봉쇄를 효과적으로 뚫는 사례가 있다. 동로마제국이 보스포루스 해협 입구에 있는 금각만(金角灣) 즉 바다를 지키는데 배를 사용하지 않고 톱카프(Topkap) 궁전에서 맞은편 갈라타(Galata) 탑이 있는 곳까지 튼튼한 쇠줄을 쳐놓아서 적선(敵船)이 못 들어오게 막았다. 수백 년간 함대를 막은 난공불락의 전략으로 정말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오스만 터키제국의 술탄 메흐메트(Mehmet) 2세는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비대칭 전략으로 이를 가볍게 돌파해 버렸다. 타고 온 배들을 산으로 끌어올려 이 쇠줄 방어막을 보기 좋게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가 우리나라 속담인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바람결에 들었나 보다. 이런 것이 바로 상상을 초월한 비대칭 전략이다. 상대가 비대칭 전략을 쓰면 거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비대칭 전략을 써야 할 것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Netanyahu)는 빨리 이런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풀던가 조기 종전 협약을 통하여 배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라. 그래야 세계인들의 숨통이 트이고 만백성이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지 않겠는가? 이들은 거대 페르시아제국을 세우기 훨씬 전인 BC3,200년에 벌써 큰도시인 수사(Susa)를 건설한 엘람문명을 세워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경쟁했던 민족이다. 알렉산더, 징기스칸 조차도 제대로 굴복시키지 못했고, 아랍에 먹히기도 했지만 도리어 시아파 회교의 종주국이 되어 이란으로 살아남은 끈질길 사람들이다. 너무 쉽게 볼 일은 아닐 것 같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