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오리손 산장의 만찬(7/15)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첫날밤처럼 어색하고

by 금삿갓

생장에서 출발하여 중간부터 비를 맞으며 8km를 걸어서 드디어 오늘의 숙소인 오리손(Orrison) 산장에 15:30분에 도착했다. 오리손 산장은 해발 792m 높이의 산속에 덩그러니 서있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도 없다. 오로지 이 산장뿐이다. 옛날 순례객들이 많을 때에는 론세스바예스수도원의 부속 수도원이 있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객이 밤을 보내는 숙소를 주로 스페인에서는 알베르게(albergue)라고 부르고, 프랑스는 허피쥬(Refuge)로 불린다. 영어권에서는 주로 도미토리(Dormitory)로, 조선에서는 주막, 현대 한국에선 여관 또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로 쓰이니까, 같은 방을 두고 다양하게 불린다. 커다란 방에 여러 사람이 이층침대를 사용하며, 남녀 구별도 없고 혼숙(混宿)이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공용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조선 과객 선비가 남녀 유별(有別)한데,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남녀를 구분하더라도 코 고는 사람, 이 가는 사람, 잠꼬대하는 사람 등 가지가지 수면 타입이 있을 텐데 잠자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배정받은 방은 6인실이다. 이층침대가 3개인 방이다. 공용인 화장실, 샤워실, 빨래하는 장소를 알려주고, 이곳은 샤워기에 코인을 넣으면 5분간 물이 나오니까 그 시간 안에 샤워를 마치라고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어디 논산훈련소 다시 입대한 기분이다. 방에 들어오니 먼저 온 남녀가 네 명이 있었다 서로 수인사와 통성명을 했다. 조선 과객 선배인 김삿갓 선생도 어느 주막에든 유숙하게 되면 우선 주인장과 객들에게 통성명을 하고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일 순위였다. 필요하면 시 한수를 지어서 서로 통하기도 했겠지.

모두 부부간이다. 한 쌍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50대의 Josep Hovat 부부이고, 다른 한쌍은 프랑스 느베르지방에서 온 Beatrix Bonnefoy 부부인데 60대 초반이다. 이들은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단다. 그들은 집에서 출발하여 현재까지 27일째 걷는데, 시간 관계상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못 가고 팜플로나까지만 걷고 다음에 나머지 구간을 완성한단다. 우리도 40주년이라니까 이것도 인연이라고 즐겁게 같이 걷자고 했다. 겉보기에 우리가 갑장 수준으로 보였는지 나이를 따져보자고 했다. 외국에서 민증(民證)까기는 처음이네. 아무튼 우리가 5살이 많자 깍듯하게 예의를 지킨다. 졸지에 팔자에 없는 형님 대접도 받고 재밌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남자애, 에스토니아에서 여자애를 입양해서 장성시켜 결혼 시켰단다. 남자들 병역 의무가 없어서 그런가 우리 보다는 조혼(早婚)이다. Josep Hovat 부부는 각자 돌씽에서 재혼하여 10년이 되었단다. 이런 것도 대단한 인연이다.

7시가 되자 저녁 식사시간이다. 이곳은 산속의 대피소 기능을 하므로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람이 여기서 식사를 같이 해야 한다. 모든 순례객들이 식당에 모여서 같이 식사한다. 렌털콩 수프와 바게트빵, 닭고기 요리에 와인이 메뉴이다. 다 함께 건배를 하고 각자 돌아가면서 1분간 자기소개 또는 스피치 시간도 가졌다. 우리 룸메이트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 내내 깔깔거리면서 재미있는 첫날 저녁을 보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가 난무한다. 구글의 번역기와 네이버의 번역기가 간만에 고생 좀 했겠다. 엉터리 번역기 덕택에 서로 배꼽을 잡고 웃을 때도 많았다. 순례길의 물가도 무척 올랐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말하는 알베르게 숙박비와 식사비는 정말 옛날 이야기다. 오리손 산장도 숙박비와 저녁 식사비를 포함해서 1인당 45유로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간 순례객들이 거의 발을 끊었기 때문에 그동안 수입원이 없었던 알베르게에서 그간의 손실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가격을 많이 인상시킨 것으로 보인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독점적 지위에서 누리는 경쟁력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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