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손 산장에서 15km를 걸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드디어 스페인의 첫 알베르게인 공립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 도착했다.이 마을은해발 950m에 소재한다. 높고 깊은 산 속이라 특별한 편의시설도 없고, 과거 수백 년 전에 세워진 성당의 건물 일부를 개조한 그저 공동숙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이층 침대로 구성된 숙소는 수용인원이 217명이다. 이 많은 인원이 동시에 씻고 먹고, 자고, 볼일을 봐야 하는 공간이라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같다.
론세스바예스라는 마을 이름도 롤랑의 전투에 기인한다. 후미 롤랑부대가 전투에 패한 것을 알게 된 샤를마뉴는 전투가 있었던 계곡까지 돌아가 끔찍한 대학살을 보고, 죽은 병사들을 위한 가톨릭식 무덤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옷을 벗겨서 함께 매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적군과 아군을 섞어서 매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샤를마뉴는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증표를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조금 뒤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와서 입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시체가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에 이들을 분리해서 가톨릭식 무덤에 매장했다. 이것이 로시스 바예(Rosis Valle : 장미의 계곡) 즉 론세스바예스라는 지명의 기원이다.
인원이 많다 보니 식사도 한꺼번에 못하고 19시와 20시에 두 번에 나누어했다. 화장실과 샤워실 사용은 전쟁이다. 그래도 이곳은 성당에서 운영해서 그런지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다. 침실은 혼숙이다. 예약도 필요 없고 선착순으로 도착 순서에 따라 침대를 배정한다. 이층침대를 배정받으면 그야말로 밤새 유격 훈련을 받는 것 같다. 숙박과 저녁식사는 옵션으로 묶여서 누구나 같이 해야 한다. 이곳은 공립 알베르게라서 비교적 숙박비가 저렴했다. 1인당 숙박비가 14유로, 저녁 식사비가 12유로, 합해서 26유로이다. 빨래는 손수 손빨래를 해도 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을 수용하므로 빨랫줄을 맬 수가 없어서 각자 입고 말리든가 젖은 채로 배낭에 넣고 가던가 해야 한다. 대신 세탁소에 맡기면 무게나 양에 관계없이 1인당 세탁에 4유로, 건조에 4유로이다. 아침은 식당에서 먹으면 5유로이고, 도시락으로 포장을 하면 8유로이다. 숙소에 식당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 민간인이 하는 레스토랑이 두 곳이 있는데, 숙소에서 임의 배정해서 두 곳 중 한 곳을 이용한다. 산속 높은 지역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여름이라기보다 늦가을 날씨다.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이다.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초기의 건물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고딕식 성모 마리아 조각이 보관돼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성직자 회의실엔 강건왕 산초 7세의 고딕 양식 무덤이 있고, 라스 나바스 데 똘로사(Las Navas de Tolosa)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일부도 있다고 한다. 회랑은 17세기 양식이고, 현재의 성당 건물은 원래의 건물 자리에 13세기에 재건축된 것이다. 원래의 건물은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인 전투왕 알폰소 1세의 소망에 따라 빰쁠로나의 대주교 돈 산초 데 라로사의 재임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었다. 아름다운 작품들은 산초 엘 푸에르떼의 건축가들이 가져왔고 산초 왕의 후계자들이 마무리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고딕 회랑과 회의실, 다른 부속 건물 등이 있으나 세월의 무게 때문에 부분적으로 무너졌다. 1445년에 화재가 일어나 성당 건물이 훼손되었으며, 1600년에는 지붕에 쌓인 눈의 무게 때문에 남쪽 회랑과 성전의 지하층이 무너졌다. 따라서 1615년 건축가 돈 후안 데 아라네기에 의해 재건되었단다.
아래 건물이 성령의 소성당 (Capilla del Sancti Spiritus)이다. 샤를마뉴의 헛간(Silo de Carlomagno)으로도 불리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남쪽, 산티아고 소성당 옆에 있다. 이 건물은 론세스바예스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의 조카인 롤랑이 두란다르떼(Durandarte)로 내려친 바위 위에 지었다고 한다. 17세기 초반에 반원 아치의 현관문이 추가되었고, 론세스바예스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