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정은 수비리까지 21.5km를 걷는다. 지도상의 거리이고 실제 사진을 찍으면서 우왕좌왕하면 더 긴 거리를 걸어야 할 것이다. 정확히 해발 950m인 론세스바예스를 아침 6시 30분에 출발했다. 높고 깊은 산중이라서 칠월의 이른 아침이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다. 성당의 공립 알베르게를 나와서 도로에 들어서면 산티아고 까지 790km라는 거리 표지판이 반긴다. 아직 멀고도 험한 여정이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은 평지이지만 이내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이 숲길은 부르게떼까지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낙엽송이 우거진 정말 근사한 숲의 터널로 이어져 있다.
2~3km 정도의 숲길이 끝나고 순례자들은 스페인 중세 왕국인 나바라의 전통 문양을 가지고 있는 붉은색의 커다란 창문과 돌로 만들어진 저택들이 있는 부르게떼 마을을 만나게 된다. 부르게떼 마을은 신비로우면서도 조용하다. 그래서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한 장소로 보인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이곳으로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머물렀던 유명한 인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순례객들이 주로 이 마을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우리도 여기서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이라야 빵조각에 카페콘레체 즉 우유를 탄 커피가 일반적이다. Leche(레체)가 스페인 말로 우유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스페인의 낭만파 시인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Gustavo Adolfo Bécker), 미국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헤밍웨이는 스페인을 정말 사랑하여 스페인 내전 당시에 정부군에 4만 불을 희사하기도 하고, 종군 기자로 참가하여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또한 그는 산 페르민의 도시 빰쁠로나의 소음을 피해 이 마을로 와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하였다. 그래서인지 부르게떼는 비록 론세스바예스와 2.5km 정도의 가까운 작은 마을일지라도 휴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론세스바예스와 달리 필요한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순례자들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지나면서 길 양 옆으로 늘어선 건물들과 주택들이 있는 부르게떼 마을의 주 거리를 지나게 되는데 헤밍웨이가 묵었던 조그마한 호텔이 눈길을 끈다. 고등학교 때 헤밍웨이 전집을 월부로 사서 읽은 적이 있다. 같은 반의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월부 책 장사를 하던 때라서 없는 돈에 도와주기 위해 샀다가 1년 동안 굶어 죽는 줄 알았다. 그 덕에 책값이 아까워서 헤밍웨이를 읽었고, 지금도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수년 전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와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가 묵었던 곳을 찾아가서 지내기도 했던 것이 아마 그 친구 덕택이리라.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아직 호텔의 바(Bar)가 문을 열지 않아서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의 전통으로 9월에 16세기부터 이어져 온 가나도 축제(Feria de Ganado)를 즐길 수 있단다. 부르게떼는 롤랑의 전설과 론세스바예스 전투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며, 이베리아 반도와 현재의 프랑스가 연결되는 나바라의 역사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샤를마뉴, 롤랑, 샤를 7세 등이 스페인 원정 전투 중 부르게떼를 거쳐 갔다. 또한 보르도(Burdeos)에서 아스또르가(Astorga)로 이르는 로마 가도, 나폴레옹의 길, 전설적인 묵시록의 길이 모두 이 부르게떼를 지나간다. 이 마을에 있는 산 니콜라스 성당은 16세기에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그마하지만 바로크 양식 정문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