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폰세바돈에서 하룻밤(8/5)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내 위에서 예쁜 독일 처자가 잔다

by 금삿갓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마을에서 6Km가량의 거리를 언덕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도착한 마을이 폰세바돈(Focebadon) 마을이다. 직전 마을이나 이 마을 모두 정말 작아서 인구가 몇 명 되지 않는다. 이 마을은 폐허가 된 벽돌집들이 길가에 남아 있고 좀 황량한 마을이다. 하지만 중세에는 번창했다고 한다. 레온왕국의 아라곤왕인 라미로(Ramiro) 2세가 이곳에서 10세기에 회의를 개최하고, 수도원도 지었다고 한다. 그 후에 11세기에는 수도원장이었던 가우셀모가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허물어져가는 종탑이 철빔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 이곳은 해발 1500m 정도 되어서 정말 사방으로 시야가 확 터져 있고, 한 여름의 낮 날씨이지만 햇살만 따갑고 공기는 시원하고 쾌적하다. 아스트로가(Astroga)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26Km를 걸은 것이다. 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산을 오르는 오르만 길이라서 더 이상 걸을 힘도 없고, 더구나 앞으로 10Km 정도는 숙소가 있는 마을은 없고 계속 1500m 고지대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했다. 마을의 초입에 있는 몬테 이라고(Monte Irago) 알베르게에 들어가서 숙박 수속을 했다.


알베르게의 주인 여사장은 독일 출신으로 매우 서글서글한 성격이다. 남편은 스페인 사람인데, 조선 과객 금삿갓처럼 방랑벽이 심해서 1년이면 6개월은 해외로 여행을 나다닌단다. 다행히 지금은 집에 있는 기간이라서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숙소에 일찍 도착한 보람이 있어서, 창가 이층침대의 1층을 나란히 두 개 배정받고, 샤워를 한 후에 숙소 길 건너편에 있는 빨래터에 가서 손빨래를 했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태양이 작열해서 빨래는 잘 마르겠다. 빨래를 끝내고 손바닥만 한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고 오니, 숙소가 만원이다. 그 사이 순례자들이 꾸역꾸역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배정받은 이층침대의 위쪽은 독일에서 온 20대의 젊은 아가씨들이 차지했다. 모두 쭉쭉빵빵이다. 몸에 꽉 끼는 타이즈 같은 복장으로 조선의 선비 과객 금삿갓이 앉아 있는 앞의 사다리를 타고 연신 오르락내리락한다. 옷들도 아무 스스럼없이 마구 훌훌 벚어젖힌다. 눈 둘 곳을 모르겠다. 빨리 저녁 식사를 끝내고 와인 진탕 마시고 잠을 청해야 정신이 헷갈리지 않겠다.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다. 주인 여사장이 음식을 주기 전에 세리머니를 한다. 자기 남편을 소개하고, 딸 소개, 자기소개도 하면서 일장 연설을 한다. 딸은 정말 한국을 좋아 해서 내년에 서울로 유학을 오려고 준비 중이란다.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아주 노래까지 한 곡조 뽑는다. 마치 워커힐호텔 연말 디너쇼를 보는 건지 아리송하다. 노래는 그런대로 들어줄만했다. 음식에 대한 소개까지 한다. 저녁 한번 얻어먹기 힘들다. 특별한 음식을 주는 것도 아닌데, 식전 빵과, 콩 수프, 그리고 메인은 빠에야다. 금삿갓이 가장 기다리던 와인도 하우스 와인이라고 잔뜩 자랑한 후에 제공한다. 오늘도 저녁 식사 좌석 선택운이 좋았다. 금삿갓 바로 앞에 프랑스에서 온 여성 순례자와 베네수엘라 출신의 스페인 최대은행인 산딴데르(Santander)은행의 직원 도밍소(Domingo)이다. 프랑스 여성 순례객 이름은 까먹었다. 그녀는 와인을 한잔도 마시지 않아서 금삿갓의 몫이 더 많아졌서 고마웠다. 그런데, 도밍고도 이외로 난 체하느라 하우스 와인을 즐기지 않고 자비로 생맥주를 시켜서 마시겠단다. 이런 웬 횡재수가. 와인 한 병을 독차지할 수 있으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음식맛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와인 인심이 최고였다. 방랑벽의 주인 남자 사장이 기타를 두드리면 다른 테이블에서 남긴 와인병을 모조리 조선 주객 금삿갓 앞으로 가져다주는 게 아닌가. 정말 무료 와인으로 흠뻑 취한 뻑적지근한 만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식사를 끝내고 떠났으나 도밍고랑 둘이서 주객 금삿갓은 남은 와인을, 도밍고는 생맥주를 추가로 시켜서 흠씬 마셨다. 이 친구와는 전에도 몇 번 순례길에서 마주쳤는데, 앞으로도 순례길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즐거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층의 독일 아가씨는 저녁 시간에 못 봤는데, 다른 레스토랑에서 들고 왔는지 벌써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잠꼬대인지, 잠이 안 들어 전전반측인지, 새벽녘까지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너무 쓰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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