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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발자욱(7/2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발자국과 발자욱

by 금삿갓

시나 노래 가사에 많이 등장하는 발자욱은 맞는 말일까? 표준어는 발자국이 맞다. 아니면 발자취도 표준어이다. 그런데 시인들이나 작사가들은 발자욱을 많이 쓴다. 비표준어지만 어쩐지 좀 더 정감이 가고 시적으로 들리고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 과객 금삿갓도 이 글에서 발자욱이라 쓰고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티아고 길을 걷으면서 돌 길과 산길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이렇게 흙으로 된 폭신한 길을 만날 때도 있다. 이런 길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자전거 순례자나 농사용 농기계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쑤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경우에는 길에 찍힌 수많은 발자욱을 들여다보곤 했다. 신발 밑창의 모양이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예수님이 아니고는 누구나 걸으면 발자욱을 남기게 된다. 이 발자욱이 범죄자를 잡아내는 증거가 되기도 하고, 서부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앞서간 사람이나 동물을 쫓는 요긴한 표식이 될 수도 있다. 산티아고 길에 수백 년 동안 무수한 순례자들이 발자욱을 남겼겠지만 앞서간 발자취는 뒤에 가는 사람의 발자욱에 깔려 그 형채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발자욱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길이 되고, 후세 사람들이 따라 걷는 것이리라. 장기간 순례길에 피곤한 다리로 인해 발을 질질 끄는 사람도 있고, 사뿐사뿐 밟아서 발자욱이 선명한 것도 있다.

발자욱을 보고 걷아보니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한시라고 잘못 알려진 "야설(野雪)"이 생각났다. 이 시가 서산대사의 작품인지는 정설이 없고, 특히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다. 근거가 명확하게 나오는 작자는 조선 후기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고, 장지연(張志淵)의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천설(穿雪)>로 올라 있어 그의 작품이 분명하다. <야설(野雪)>은 들판의 눈이고, 천설(穿雪)은 눈을 뚫고 가는 것이다. 제목이 약간 다르고, 내용 중에 두 군데 즉 기구(起句)에 답설(踏雪)과 천설(穿雪), 전구(轉句)에 금조(今朝)와 금일(今日)이 다를 뿐이다. 임연당 이양연은 시와 학문에 뛰어났고, 저서에《침두서枕頭書》, 《석담작해石潭酌海》, 《가례비요嘉禮備要》, 《상제집홀喪祭輯笏》등이 있고, 민요시《촌부村婦》, 《전가田歌》, 《해계고蟹鷄苦》등을 남겼다.

야설(野雪)

穿(踏)雪野中去(천설야중거) / 눈을 덮인 들판을 뚫고 가는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어지럽게 함부로 가지 마라

今朝(日)我行跡(금조아행적) / 오늘 아침 나의 행적은

遂作後人程(수위후인정) / 뒤에 오는 사람의 길잡이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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