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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부들부들 부들길(7/2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초콜릿 바를 그리며

by 금삿갓

스페인 순례길을 걷다가 정말 오래간 만에 길 옆의 수로에서 부들이 줄지어 자라는 걸 보고 반가웠다. 독자 분들은 부들이란 식물을 아시는가? 제목을 보고 억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부들이란 이름이 생긴 유래이다. 이 식물이 암수 이삭이 서로 조금 떨어져 아래위로 있고, 초여름에 수정(受精)을 하기 위해서 밑에 있는 암이삭이 꽃가루받이를 한다. 이때 암이삭이 꽃가루를 잘 받아서 수정하기 위해서 꽃대가 부들부들 떨린다고 부들이란 이름이 붙었다. 또 다른 일설은 이 부들의 잎을 말려서 방석이나 짚신 같은 것을 만드는데, 그 잎이 잘 부스러지지도 않고 부드러워서 부들이라고도 한단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부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부들의 이삭은 짙은 갈색이라서 마치 초콜릿 아이스바처럼 생겼다. 어떤 것은 핫도그나 소시지처럼 색깔과 모양이 비슷한 종자도 있다. 어릴 때 조선 과객이 자란 시골의 늪지대나 개울의 어귀에 이것과 똑같은 부들들이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들은 어른들의 이야기 한 구절이 있다. 동네 아이들은 이 부들의 이삭이 나오면 늪지대로 몰려 가서 부들의 이삭을 뽑아서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런데 동네 노인들이 이걸 보고 아이들을 타이른다. 부들의 암이삭을 만지면서 가지고 놀다가 소변을 보려고 자기의 고추를 만지면 고추가 부풀어 올라 부들처럼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고추가 부들처럼 부풀어 오르면 큰일이다. 얼마나 아프겠는가? 더구나 부들의 암이삭은 약간 보들보들하고 감촉이 좋으며, 마치 비단결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약간 미세한 갈색 가루가 손가락과 손바닥에 조금씩 묻어나니, 어른들의 경고를 귓전으로 흘려듣기엔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부들 이삭을 냇물에 던져버리고 모래와 진흙으로 손을 몇 번이고 씻고 씻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70을 바라보는 조선 과객이 이역만리 스페인 순례길에서 어릴 때 보던 부들을 길가에서 보다니 옛날 생각이 잠시 떠올라 몇 자 적어 본 것이다. 지금 순례길을 걷는 이 순간 더위로 차라리 저것이 시원한 초콜릿 아이스바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뿐이다. 고추가 커지든 말든 손 닿는 데로 잡아서 우적우적 먹고 싶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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