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팜플로나 성문(프랑스문) 도착(7/18)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첫 대도시로 들어서다

by 금삿갓

지친 다리와 아픈 발을 이끌고 드디어 오늘의 여정의 종착지인 팜플로나 성문까지 왔다.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아르가 강을 건너는 돌로 만든 다리가 라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이다.

이곳 아르가 강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아침 아르가 강물 위에 이상한 물체가 둥둥 떠내려 왔다. 사람들이 이것이 성모상이라는 것을 알고 장대를 가지고 성모상을 강가로 끌어오려고 했으나, 성모상은 이상하게 장대를 피해 갔다. 저녁이 되도록 성모상을 강물에서 꺼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람들이 마침내 지쳐서 강둑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때 산 뻬드로 수도원(Convento de San Pedro)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들이 강가로 다가와 성모상을 보고 놀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모상이 강가로 떠내려 와서 수녀들이 건져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멈춰 섰다. 이렇게 해서 수녀원으로 성모상을 모셔가자 그때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롭던 수녀원장의 건강이 회복되었단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이때부터 수녀원에서 이 성모상을 모셨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길옆에 나병환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단다. 까미노에는 도시나 마을의 입구에 나병환자를 위한 시설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교외에 병원을 두었던 이유는 주민들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순례자들은 프랑스 문(Portal de Francia)으로 도시에 들어서게 된다. 이 문은 수말라까레기의 문(Puerta de Zumalacárregui)이라고도 불린다. 프랑스 문이라고도 부르는 이 아치 문은 1553년 까를로스 5세가 다스리던 시절 부왕이었던 알부르께 공(公)이 건설했다. 이 문이 수말라까레기의 문(Puerta de Zumalacárregui)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돈 까를로스를 지지하던 군인 또마스 수말라까레기(Tomás Zumalacárregui)가 까를리스따 전쟁 발발 이후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어두운 밤에 홀로 이 다리를 건너 팜플로나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치 위엔 황제의 문장(紋章) 즉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가 있는데, 18세기에 개폐식 다리의 바깥쪽 문을 추가했으며 부벽과 평형추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이 문은 까미노 순례자들이 팜플로나 성으로 들어오는 인 것이다. 성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성곽의 외벽과 내벽 사이의 통로를 따라 들어오게 된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성의 위용을 보면서 나바라 왕국의 당시 상황이 짐작이 간다. 일본의 오시까 성이나 구마모토 성처럼 크고 웅대한데 단지 그것에 비하여 해자(垓字)가 없는 것이 다르다. 하긴 이 성은 아르가 강을 끼고 있으니 자연 해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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