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5. 팜플로나의 전설(7/19)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마누라 길들이기?

by 금삿갓

장자시처(壯子試妻) 즉 장자가 부인의 정절을 시험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이 있고, 이를 절제하는 것이 교육과 도덕, 법률 등의 통제 장치다. 장자가 어느 날 남편 무덤에 부채질하는 여인 이야기를 부인에게 하자, 부인이 그 여인은 정말 상식과 도덕이 없다며 자기는 평생 수절(守節)할 거라고 한다.

어느 날 장자가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죽은 척하니, 부인이 장례 절차에 따라 입관하고 문상을 받는다. 문상객 중 이웃 나라 왕자가 혼자 왔는데 정말 잘 생겼고, 젊은 사내였다. 부인의 마음이 그에게 홀려 흔들렸다. 그가 하룻밤을 묵게 되고, 서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맞아 주안상(酒案床)을 마주하여 앞날을 약속하게 된다. 그런데 마침 합방(合房)을 하려는 찰나에 그 왕자가 갑자기 병이 생겨 죽게 생겼다. 부인의 입장에서 이 절묘한 인연이 물거품이 될까 백방 노력하는데, 왕자 말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신의 골을 먹어야 기사회생할 수 있단다.

욕심에 눈이 먼 부인이 도끼로 남편의 관뚜껑을 부수자, 그 속에서 장자가 자고 일어나듯이 무슨 일이냐고 일어나는 것이다. 너무나 놀란 부인이 건넌방으로 달려가보니 왕자도 없고 빈방이다. 장자의 도술(道術)에 속은 것이다. 부인은 너무나 부끄러워 장독 항아리를 뒤집어쓰고 죽고 말았단다.....쩌업.

팜플로나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팜플로나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티아고로 순례 중이던 프란시스코회 수도사 한 명이 팜플로나로 와서 그녀의 집 옆에 묵게 된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을 갖고 있어서 모든 여인의 선망이었다. 그녀도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여인은 짝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 몰래 수도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써서 하인에게 전달시켰다. 그러나 하인은 여인의 남편인 주인에게 들키게 되어 편지를 빼앗겼다. 얼마 후 다시 여인이 수도사에게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집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물론 남편은 마누라의 바람기를 알기에 일부러 먼 영지(領地)를 둘러보러 간다고 먼저 얘기했다. 남편이 집을 비우고, 부인과 수도사가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남편은 밤이 되자 프란시스코회 수사복으로 변장하고 불을 끈 어두운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욕정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팔을 뻗어 그를 안으려고 하자 수사로 변장한 남편은 옷 속에 숨겨둔 몽둥이를 꺼내 여인을 때려 혼내주었다. 다음날 시치미를 떼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팔다리에 심각한 류머티즘이 생겨 몸이 아프다고 둘러댔다. 아내의 바람기를 완전히 잡겠다고 생각한 남편은 또 다른 꾀를 내서 저녁식사에 그 도사를 초대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길에서 만난 수도사가 ‘당신 아내에게 귀신이 들었으니, 퇴마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해서 믿을 수 없지만 한번 초대했노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 여인과 수사가 단둘이 방에 남도록 남편이 잠깐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아내는 화가 나서 수사를 손톱으로 할퀴며 욕을 하기 시작했고, 수사는 그런 여인에게 귀신 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귀신을 쫓기 위해 수도사는 여인에게 성수(聖水)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때 남편이 들어오자 부인은 사실을 들킬까 봐 입을 다물고 얌전하게 퇴마 의식을 당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도사는 자신의 퇴마 의식이 성공했다고 믿게 되었고, 남편은 자신의 속임수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벌을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이 사건이 있은 이후 더욱 남편에게 충실하고 상냥한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조선 과객 금삿갓은 장자시처(壯子試妻)가 아니라 인내심(忍耐心) 시험대에 올라있다. 순례길을 같이 걷던 부부 중에 이천리를 무탈하게 잘 완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단다. 중간에 의견 충돌로 따로 걷던가, 한 명이 귀가하던가 하는 사례가 많다. 끝까지 그런 불상사 없이 마치려니 속에 천불이 난다. 그래도 예수님처럼 원수에게 왼뺨을 내놓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이나 인내심을 본받는 게 이 길을 걷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