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집에서 준비할 때부터 짐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고민거리다. 하루 이틀 가는 여행도 가방 싸는 게 일인데, 두 달간 집을 비우고 떠나니 짐 정리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짐의 내용물 수량과 부피, 무게는 고스란히 주인의 어깨와 등과 다리와 발을 짓누르는 고역덩어리다. 입고, 덥고, 꾸미고 하는 생활 필수 용구 말고도 길 위에서 한 달 이상을 생활하는데 최소한의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물에 욕심을 부리면 육체가 고생을 한다. 즉 고통은 욕심에 비례한다.
생장 삐에드 뽀르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 접수 담당 자원봉사자 노인이 조선 과객의 배낭 무게를 확인하더니 웃더라. 그래서 이것은 내 인생의 무게라고 호기롭게 대답한 걸 팜플로나에서 후회하고 있다. 나름 심각한 고민과 여러 가지 상황을 저울질 한 끝에 짐을 줄이기로 결단을 내렸다. 인생의 무게도 줄이고, 욕심의 무게도 과감히 줄이자. 내려놓고 사는 삶이 편하고 단순하니 좋은 것이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이 아프고 등등 모든 부작용은 일단 배낭의 무게에서 오는 게 제일 큰 이유이다.
등산화도 과감히 버리고, 침낭도 포기하고, 옷도 단벌 신사(?) 아니 단벌 과객으로 콘셉트를 바꾸자. 조선의 옛 선배 김삿갓 어른이 어디 옷 몇 벌을 괴나리봇짐에 넣고 다녔을라고? 조선 과객 금삿갓을 자처하는 필자가 단벌 옷에 연연할 처지가 아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처럼 쉬이 가는 게 최고지, 패션 쇼하러 오지 않았다.양말 속옷 등도 과감히 삭감, 정말 순례길에서 필수적인 것만 빼고 모두 큰 배낭(60L)에 넣었다. 살아남은 필수품을 작은 배낭(35L)에 넣어서 적응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걸 당장 필요 없다고 버리고 갈 수도 없다. 순례길 35일 정도 마치면 나머지 한 달가량 여행을 더 해야 하니 필요한 것이다.
나름 서울서 준비할 때, 조선 과객을 나타내는 태극기도 부착하고 행장을 완벽하게 했다. 막상 길에 들어서니 욕심과 현실은 차이가 있고, 그것은 바로 육신의 고통으로 직결된다. 과감히 손절(損折)했다. 주식 투자도 손절을 잘해야 패가망신 안 한다. 이렇게 순례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는 서비스가 바로 순례길 택배 서비스이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돈키서비스(Donkey service)로 알려져 있다. 아마 옛날 순례객들의 짐을 당나귀에 싣고 옮겨 주었나 보다.
알베르게 접수 프런트 주변에 이 택배 서비스의 신청서가 회사별로 준비되어 있다. 예약도 필요 없고, 대화도 필요 없다. 신청서 양식이 봉투로 되어 있다. 자기가 보내야 할 다음 숙박지의 지정한 알베르게 이름을 쓰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재한 후에 그 봉투에 해당 요금을 넣어서 배낭에 매달아 두면 된다. 회사에서 오전에 알베르게를 돌면서 수거하여 지정된 곳에 가져다 두게 된다. 선불택배인 것이다. 최소 4유로이고 무게와 거리에 따라 그 이상이다. 매일 배낭을 택배하고 조그만 색(Sack)에 마실 물과 간식만 메고 걷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매일 택배 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 과객의 체면 상, 아니면 천국 가서 김삿갓 선배 만나면서 지청구 듣기 싫어서라도 배낭 하나는 거뜬히 지고 가야지. 큰 배낭을 매일 돈키 하는 것도 귀찮고, 다음 어느 목적지에 어느 알베르게에 묵게 될지 전혀 예약이나 파악을 하지 않고 무대포로 들이대는 역마살 과객에겐 낯선 서비스다. 그래서 팜플로나 중앙우체국으로 달려가서 장거리에 장기간 택배를 신청했다. 산티아고 콤포스테라 중앙 우체국으로 보내서 30일간 거기에 장기 보관을 시켰다 비용은 이외로 저렴해서 28유로 정도이다. 단돈 4만 원에 아주 훌륭한 짐꾼을 구해서 짐을 옮기고, 그 짐을 이 과객이 갈 때까지 맡아 둔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인생의 무게와 욕심의 무게가 많이 줄어드니 몸무게도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