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님(문재인)

금동수의 세상 읽기(201231)

by 금삿갓

중국의 우한(武漢)에서 최초로 발병하여 지금까지 전 세계를 강타(强打)하고 있는 COVID-19 전염병(傳染病)이 벌써 1년이 되었다. 2020년 말인 오늘 현재 국내에는 60,740명이 확진(確診)되어 900명이 사망했다. 세계적으로는 확진자가 8,199만 명을 초과하였고, 사망자는 179만 명을 넘어섰다. 과학문명이 미개했던 중세(中世)의 전염병 확산 시기와 엇비슷하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생활 양상(樣相)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 상에 존재 이래 재난과 전염병으로부터 무수하게 공격을 받았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역병(疫病)에 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백제 온조왕(溫祚王) 때이다. 사서(史書)에서 전염병은 다양한 용어로 기록되어 있다. 병명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고 역(疫), 역병(疫病), 역질(疫疾), 여역(癘疫), 역려(疫癘), 당독역(唐毒疫), 염병(染病), 시기병(時氣病), 온역(瘟疫)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최초의 역질(疫疾) 기록은 태조 2년 1393년 7월 회암사(檜巖寺)에 역질이 돌아 왕사(王師)인 자초(自超)를 광명사(廣明寺)로 옮기도록 한 것이다. 격리(隔離) 조치인 셈이다. 이것을 포함해서 실록에 전염병에 관한 기록이 1,455회에 달한다. 500년 역사에 엄청 많은 역병으로 민초들이 고통을 당한 것이다.

심하게 창궐(猖獗)한 시기는 현종(顯宗), 숙종(肅宗), 영조(英祖) 때까지 이다. 서양 속담처럼 화불단행(禍不單行) 즉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기근(飢饉)과 역병은 동시에 발생했다. 현종 때인 경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에 발생된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으로 100여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 역질로도 88,150명이 죽었다.

25년 뒤인 숙종 때인 을해년(1695년)과 병자년(1696년) 즉 을병대기근(乙丙大飢饉)은 더욱 참혹했다. 숙종실록에 숙종 25년 기묘(1699) 11월 16일(경술) 날 호적(戶籍) 조사를 완료하고 남긴 기록이다. “계유년(1693년)에 견주어보면 호수(戶數)는 253,391이 감소되었고, 인구는 1,416,274명이 감소되었다. 을해년(1695년) 이후 기근(饑饉)과 여역(癘疫)이 참혹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다.” 1693년의 가구수 1,293,083가구 중 19.6%가 소멸되었고, 인구는 5,772,300명 중 24.5%가 사망한 엄청난 재난이었다.

52년간의 집권(執權)으로 조선조(朝鮮朝) 최장기 집권 왕인 영조 시대에도 역질이 기승을 부려서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했다. 실록(實錄)에 나타난 그의 집권기의 연도별로 역질 사망자를 보면, 1731년에 703명, 1733년에 6,609명, 1741년에 3,700명, 1746년에 5,343명, 1749년에 50~60만 명, 1750년에 223,578명으로 대충 70~80만 명인데 아마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참혹(慘酷)한 대재앙이었다.

조선시대의 왕들도 역병에 대항하여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세종(世宗)은 역질 퇴치(退治)를 위한 약제로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소시호탕(小祡胡湯) 등의 처방전을 직접 만들어 지방관에게 내려 보냈다. 세종의 처방 중에는 기발(奇拔)하고 요상한 것들도 있었다. 발효 콩, 아궁이 흙, 어린이 소변, 복숭아 잎, 측백나무 잎, 복숭아벌레의 똥 등도 있고, 전염예방을 위해 콧구멍에 참기름을 바르거나 한지(韓紙)를 말아 콧구멍을 간지럽혀서서 재채기를 하는 방법도 있었다. 왕들은 역질의 발생 원인을 자신의 허물로 보고 스스로 음식수(飮食數)를 줄이고 술과 음악을 폐(廢)하였다. 말하자면 두려워하며 수양·반성하는 공구수성(恐懼修省)의 생활로 모범을 보였다. 또한 미신이지만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여제(厲祭)를 직접 올리거나 각 지역에서 제(祭)를 지내도록 했다.

현종은 경술(1670)년 5월 2일에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災殃)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고 몸 둘 바를 모르겠으니, 넓은 대궐(大闕)이 무엇이 편안하겠으며 먹는 것이 무엇이 맛있겠는가?”라며 근신(謹愼)했다. 영조도 경오(1750)년 5월 10일에 “금년의 역질은 병란(兵亂)보다도 더 심하다. 만일 이대로 그치지 않는다면 백성이 다 죽어버리겠다. 두 번이나 제사를 지냈는데 나의 부덕(否德)과 성의가 얇아 아득히 감응(感應)하는 조짐이 없는 것이다. 아! 저 적자(赤子)들의 죽음이 줄을 이어도 그 임금 된 자가 구해내지 못하니 어찌 한갓 우리 적자(赤子)들을 저버렸다 하지 않으랴?”라며 안타까워했다. 여기서 적자(赤子)란 백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 시대에도 <K방역>처럼 전염을 막기 위한 방역(防疫) 대책을 시행했다. ①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격리(隔離)하는 조치를 했다. 왕이나 왕의 가족이 역질에 걸려도 서로 격리토록 했다. ②대규모 행사의 취소 및 노역(勞役)·군역(軍役)을 면제시켰다. 집단이 모이지 않게 하고 환자의 군역이나 노역을 면제했다. ③감염원(感染源)을 매몰(埋沒) 조치하였다. 급속한 창궐로 시신을 처리하지 못해 산이나 들판에 버리는 것을 금하고 관리들을 동원하여 매장(埋葬)토록 하였다. ④전염병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서 지방관들이 대처토록 했다. 중종 때 의관(醫官) 박세거(朴世擧)·김순몽(金順蒙) 등이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펴냈고, 광해군(光海君) 때 허준(許浚)이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을 편찬하여 각 지역의 전염병 대처 의학서(醫學書)로 활용했다. ⑤지방관의 치료와 구휼(救恤) 책임을 강화했다. 역질의 발생 보고, 치료 대처, 사후 결과 보고 등에 미흡(未洽)한 지방관을 엄히 문책하였다.

국내의 코로나 상황은 겨울로 들어서자 정부가 입만 열면 자랑하던 <K방역>을 조롱하듯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효력이 없고, 집단 수용시설(收容施設)인 요양병원(療養病院)이나 교정시설(矯正施設) 등의 폭발적 감염은 매우 심각하다. 이런 곳은 코호트(Cohort) 격리(隔離)를 하므로 더욱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교정시설의 집단감염은 엄정한 국가적 책임이다. 민간회사인 세월호의 사고 수습에 관하여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던 정치집단이 국가관리 중요시설(重要施設)의 감염병 관리에 실패한 책임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정말 무책임한 정권이다. 더구나 영국에서 발생된 강력한 전염성을 띤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에 제2차 팬데믹(Pandemic)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넘쳐나는 확진자로 병상(病床)의 부족과 장기간 지친 의료종사자들의 탈진(脫盡) 상황은 앞날을 두렵게 한다. 바이오 기업들의 노력으로 몇 가지의 백신(Vaccine)이 개발되어 12월 말 현재 45개국에서 접종(接種)이 시작되고 있다.

어쩌자고 우리의 잘나신 개혁(改革) 정부 책임자들은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면서 <K방역> 홍보만 하고 백신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는가? 마스크와 광화문(光化門) 집회(集會) 금지만이 세계 최고의 방역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만 했다. 남미와 동남아 저소득 국가들도 확보한 백신을, 경제규모 10위권의 한국이, 한심한 위정자(爲政者)들의 방심(放心)으로 실기(失期)하여 우리 국민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이것은 옛날로 치면 나라님이 백성을 내동댕이친 것이다. 세종은 손수 약제(藥劑) 처방을 만들어 내리고, 현종과 영조는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는데 우리의 나라님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단 말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백성만 참담(慘憺)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참혹(慘酷)함이 나라님의 탓이 아니라고 우기는 정치 모리배(謀利輩)들에겐 백신을 젤 나중에 접종해야 한다. 구멍가게 나마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운동권> 인사들에게 나라를 맡긴 우매(愚昧)한 백성들이 아직도 많은 까닭이다. 백신 없이 2021년을 맞이하고, 백신 접종이 가능한 하반기까지 우리 국민은 어떻게 버틸까?(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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