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루에서 새벽 일찍 출발했다. 아직 날이 새기 전이라 랜턴을 켜고 순례길의 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잘 살펴야 한다. 마을을 나서는데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같으면 공동묘지라면 으스스하고 전설의 고향 드라마가 생각나는데, 여긴 마을 구성원의 일부이다. 교회 즉 성당과 함께 있기도 하고, 따로 있기도 하며, 마을의 집들과 거의 붙어있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일 년에 한두 번 벌초하려고 차 막히는데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전설의 고향을 들먹이니까. 이곳 전설이 있단다. 마네루와 그다음 마을인 시라우끼(Zirauki 또는 Cirauqui)의 사이에 있는 교차로에 두 마을의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단다. 옛날 시라우끼와 마네루는 두 마을의 경계를 정하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각 마을 대표로 나이 많은 두 노파가 경쟁을 하여 정하기로 하고, 대표 노인을 각각 선발했다. 경기는 둘 중에 상대편 마을 사람들이 채운 포도주 한 단지를 먼저 다 마시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정하기로 했다. 마네루 사람들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시라우끼의 노파가 마실 포도주 단지에 죽은 쥐를 넣었다. 두 노파가 같은 시간에 단지에 든 것을 모두 마셨다. 승부가 나지 않아 몇 번의 내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시라우끼의 노파가 승리를 했다. 마네루 주민들은 시라우끼의 노파가 쥐까지 먹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네루 사람들이 그 노파에게 뭔가 이상한 것을 못 느꼈냐고 묻자 시라우끼의 노파는 목에 무슨 파리 같은 것이 걸린 것 같았으나 다 마셔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포도주를 잘 마셨던 그 할머니 무덤도 여기에 있을까?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인생의 순례길을 걷다가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맞아 그 길을 끝낸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고 동일하고 공평하다. 그러나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서 제각각이다. 죽음에 대한 물질적 기억이 무덤이고 비석이 아닐까? 거창한 것이 있고 소박한 것이 있다. 조선의 대 유학자 퇴계 이황선생도 비석을 조그마하게 세우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명(自銘)을 지었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올리브농원 옆으로 도 지나가는데, 올리브 나무의 수령이 굉장히 길게 보인다. 올리브 열매는 아직 익지 않고 한창 자라고 있는 시기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이다. 7-8월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다.
글세, 아침부터 공동묘지를 만나더니 이곳 시라우끼 마을도 초입부터 공동묘지가 조선 과객 금삿갓을 반긴다. 옛날 조선시대 유명한 과객(過客)이자 소객(騷客)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선배가 평안도사(都事)로 부임하다가 송도에서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호기롭게 제문을 지어 잔을 올리고, 유명한 시조 한 수를 읊었다가 임지(任地)에 당도하기도 전에 파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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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느냐
잔(盞) 잡아 권(勸)할 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백호 선배처럼 묘지를 볼 때마다 잔을 올릴 수는 없고, 또한 서양의 법도에는 잔이나 절을 올리는 법도가 없으니 그냥 마음속으로 불특정 다수의 먼저 간 순례객들에게 묵념을 보내본다. 죽음에 불평등이 없으니 불만은 있을 수 있으나 불평은 하지 못하는 게 죽음이다. 천국 가기를 열망하는 사람도 당장 내일 아침에 천국행 열차표를 준대도 싫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