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과객 금삿갓이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손부채나 등목만으로 더위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어릴 때 우리 집의 대청마루는 마당에서 축대를 쌓은 위에 있어서 좀 높았다. 집 옆구리도 돌아가면서 마루가 깔려 있어서 그 툇마루가 더 시원했다. 옛날 체면을 중시한 조선의 선비나, 남녀가 유별(有別)한 양반집 여인들은 자신의 행동거지를 남들이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에서는 밖이 내다보이고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으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원한 바람이 잘 통해 더위를 식혀줄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래서 만들어진 것이 곧 발, 주렴(珠簾), 렴(簾)이다. 주렴은 그야말로 구슬을 꿰어 만든 것이라 지체 높은 집이나 부유한 집에서 사용했고, 일반 서민은 대나무나, 곧은 싸리나무 발을 썼다. 대나무를 가늘고 잘게 쪼개 발틀에 올려 고드랫돌을 앞뒤로 넘겨 네모지게 짠 것이 발(簾)이다. 이것이 선조들의 여름 나기를 쉽게 해 줬다. 또 대청마루에 걸어 얼굴을 가리는 차면(遮面) 즉 체면을 차릴 수도록 해 줬다.
발은 백성뿐 아니라 궁궐에서도 긴요하게 쓰였다. 궁궐의 전각은 백성의 가옥보다 커서, 발의 길이가 길고 굵기가 굵었다. 무엇보다 붉은 칠을 하고, 푸른 실로 짜서 장식한 점이 다르다. 이렇게 붉은 칠을 한 발을 붉을 주, 주렴(朱簾)이라 부른다. 주렴은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한눈에 보여준다. 주렴을 궁궐에 걸어 왕실의 내부공간을 외부인과 차별화시키고, 왕실과 그 밖의 회합 참석자의 신분에 따른 계층을 차등화했다. 주렴은 왕실 행사에서 심리적 물리적 위계를 분리하는 중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왕실 여인들은 주렴 안쪽에 앉아 연희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궁중무용을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은근하게 감상하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왕실에서는 발이 정치적 권위를 상징하는 장치가 되었다. 바로 드라마에 숱하게 나오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다. 수렴(垂簾) 즉 발을 늘어 뜨리고, 청정(聽政) 즉 정사(政事)를 듣는다는 것이다. 미성년의 어린 왕이 즉위할 경우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인 대왕대비나 대비가 발을 치고 왕과 함께 정치를 담당하는 제도이다. 조선에서 수렴청정은 여러 차례 있었다. 성종대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52세)가 수렴청정의 효시이고, 명종대 중종비 문정왕후 윤씨(45세), 선조대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36세)가 있다.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에 순조대(11세) 영조비 정순왕후 김씨(56세), 헌종대(8세)와 철종대(19세) 순조비 순원왕후 김 씨(46세, 61세), 고종대(12세) 익종비 신정왕후 조씨(56세) 등 7차례 6명이 수렴청정을 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최고의 경지다.
스페인의 도시에서는 별로 못 봤는데, 순례길을 걷는 시골 마을에 있는 집의 현관에는 사진과 같은 발 즉 주렴이 늘어져 있다. 이 발의 용도는 우리나라 발의 용도와 비슷하지만 실용성에서 차이가 많다. 스페인의 여름은 태양이 정말 작열(灼熱)한다. 뜨거울 정도가 아니라 아플 정도이다. 이들은 이런 태양의 뜨거운 공격을 피하고 서늘함을 즐기기 위해서 발을 무조건 치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의 여름은 엄청 길다. 7월경에는 해가 9시 반을 넘어야 넘어가고, 8월도 8시 반경에 일몰이다. 햇빛을 유효 적절하게 가려서 청량감을 즐기면서도 출입 시 자유로운 장치는 세로로 늘인 발이 제격이다. 스페인 북부의 여름은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서는 정말 서늘함을 느낀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떨 때는 낮인데도 그늘에서 추위를 느낄 때도 있다.
이들은 이런 용도 이외에 곤충들의 공격도 막고, 외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용도로 발을 사용한다. 집집마다 발을 늘어뜨린 모습이 아주 이채롭다. 바(Bar)나 레스토랑은 손님의 출입 편의를 위해 한쪽을 묶어서 공간을 내기도 한다. 발의 모양과 색깔도 다양하고 재질도 아주 튼튼하다.
스페인이나 유럽 집들의 태양을 가리는 장치는 창문 밖에 덧대는 페르시아나(Persiana)가 있다. 창문 셔터라고 불릴 수 있는 외부 장착 장치로 여름에는 태양을 가리는 차양 셔터이고, 겨울에는 난방을 위한 덧창으로도 쓰인다. 장치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투박하게 나무로 만든 밀폐된 여닫이 문을 다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의 버티컬 블라인드 형태로 줄을 당기거나 손잡이를 돌려서 개폐하는 형식도 있다. 이들의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 유럽 창문의 정밀함과 견고함을 만들어낸 원동력일 것이다. 유럽 창문의 개폐방법이 우리나라 창문처럼 일률적인 여닫이 방법이 아닌 상부 개폐식도 함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