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수의 세상 읽기(201223)
기원전 202년 초(楚) 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한(漢) 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天下)를 다투던 때, 항우(項羽)는 유방(劉邦)에게 밀리는 형세였으나 그의 부모와 처자식을 볼모로 잡고 있어서 가까스로 협상이 되었다. 볼모를 풀어주는 대신 홍구(鴻溝 : 지금의 하남성 운하지역)를 경계로 서쪽은 유방, 동쪽은 항우가 차지하는 홍구지약(鴻溝之約) 즉 평화·정전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유방의 책략가인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양호유환(養虎遺患) 즉 호랑이를 키워 근심을 남긴다고 항우를 치자고 설득한다. 사나이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꺼리던 유방도 천하를 차지할 호기(好期)로 보고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 건성후(建成侯) 팽월(彭越)과 같이 동쪽으로 돌아가는 항우를 공격했다.
천하의 맹장(猛將)이지만 지친 군대, 식량 부족 등으로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한신(韓信)·팽월(彭越)·영포(英布) 등에게 포위(包圍) 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 체로 보이지 않고, 병졸(兵卒), 사기(士氣), 군량미 모두 줄어들고 한나라의 포위망(包圍網)을 점점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楚) 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故鄕)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에 항복(降服)한 모든 초나라 병사들에게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심리전(心理戰)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항우(項羽)와 초나라 병사들은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이리도 초나라 사람이 많은가?」하고 탄식(歎息)했다. 그는 총애(寵愛)하던 우미인(虞美人)과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시를 이렇게 읊었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건만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騅不逝) : 시운이 불리하고 추(騅 : 준마)도 달리려 않는구나.
추불서혜가나하(騅不逝兮可奈何) : 추마저 달리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는가.
우혜우혜내약하(虞兮虞兮奈若何) : 우희(虞姬)여, 우희여! 그대는 어찌하면 좋은가.
우미인(虞美人)도 그에 화답하는 해하시(垓下詩)를 읊고 경극(京劇)이나 영화 <패왕별희(霸王別姬>의 한 장면처럼 자결(自決)했다.
한병이략지(漢兵已略地) : 한나라 군이 이미 땅을 다 빼앗아,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네.
대왕의기진(大王義氣盡) :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는데
천첩하료생(賤妾何聊生) :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오.
항우(項羽)는 800기(騎)의 잔병을 이끌고 적진을 뚫어 강동(江東)으로 가는 오강(烏江)에 이르렀으나 하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해서 강을 건너지 않고 자결(自決)했다. 그의 나이 고작 31세였고 초나라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고사(故事)를 보면서 남북이 대치한 우리의 현실을 잘 살펴봐야 한다. 현 정권은 북측에 무슨 말 못 할 빚을 졌기에 대북 퍼주기와 평화·정전협정(停戰協定)에 목을 맨듯하다. 핵(核)으로 무장한 공산독재(共産獨裁) 정권과의 평화협정이나 종전협정이 무슨 힘으로 우리의 평화를 지켜줄 것인가? 한낱 휴지 조각이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정은이 한(漢) 나라의 유방(劉邦)과 같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진보정권 10년간 햇볕정책이다 남북교류다 하면서 북한 정권에 돈과 물자, 발전소 등을 무수하게 지원하였건만 돌아온 건 무엇인가? 국가 안보는 안전핀이 고장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 외에도 천안함 폭침(爆沈), 미사일이나 장거리포 발사, 남한 국민의 사살,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爆破), 개성공단 및 금강산 시설 압류(押留) 등 심심하면 발생하는 도발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것을 대화나 정전·평화협정으로 막을 수 있을까?
유엔의 대북제재(對北制裁) 정책과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經濟封鎖) 등으로 중국과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유 우방이 전면적으로 북한을 잘 포위하고 있다. 마치 한나라가 초나라의 항우군(項羽軍)을 포위하듯이 말이다. 탈북민 단체 등이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對北傳單)이나 물품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초나라의 고향노래(楚歌)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외부 정보의 단비요 북한 정권에게는 심리적 아픔을 주는 좋은 수단이 되어왔다.
김여정이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키는 법을 만들거나 잡도리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개성공단 철거와 연락사무소 폐쇄,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라고 협박했다. 그러자 우리 정부와 여당이 헐레벌떡 대북전단 살포금지(撒布禁止) 관련 법안을 만들어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막으려 준비했다.
드디어 2020년 12월 14일에 남북관계발전법이 다수 여권의 힘으로 개정되었다. 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다. 앞으로는 대북전단 살포가 불법이고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罰金刑)을 받게 된다. 적대국(敵對國)의 위협을 이유로 법을 제정하여 자국민의 행동을 제한하고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우방들의 포위 전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북한에 더 이상 사면초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는 518 왜곡 처벌법과 함께 이 정부가 무리수를 둔 최악(最惡)의 재갈물리기법(Gag Law)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우리 정부의 이 법률 개정에 대하여 자유 우방에서 우려(憂慮)의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超黨的) 기구인 톰 란토스(Tom Lantos) 인권위원회 공동 의장인 Chris Smith 하원의원이 대북전단 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또한 미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Michael McCaul 의원도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 의회 지한파(知韓派) 모임인 Korea Caucus 의장인 Gerald Connolly 민주당 의원도 문대통령의 수정 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욱이 장차 취임할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인권 문제에 더 원칙적이라서 한미 관계의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영국 의회 북한 문제의원 그룹(APPG-NK)의 David Alton 상원의원도 영국 외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서 한국 정부에 재고를 촉구하라고 했다. UN 북한 인원 특별보고관인 Tomas Ojea Quintana도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문제 처리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동맹(同盟) 결속에 금이 가고, 대북제재에 균열이 갈까 심히 우려된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