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어서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벼룩시장이 열린 광장을 지나서 기다란 공장 굴뚝을 뒤로하고 걷는데 길옆의 싱싱한 과일 가게의 향기로운 과일들이 눈길을 유혹한다. 그 옆으로 경찰서 건물이 있다. 라 리오하주의 경찰청 건물이다. 이름도 거창하게 '정의의 전당(Palacio de Justicio)'이라고 붙여 놓았다. 친절하게 길바닥에 로그로뇨를 떠날 방향은 철제판을 박아 놓았다. 시내가 끝나는 구간에 남녀의 순례자 동상이 로그로뇨를 등지고 걷는 모양으로 서 있다. 우리도 그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오늘의 최종 종착지로 예정하고 있는 벤토사(Ventosa)까지는 아직도 21km가량 남았으니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그것도 평지가 아니라 약간 오르만 길이다. 로그로뇨시가지가 해발 385m인데 벤토사는 715m 고지에 있다. 라 리오하주는 포도주로 유명한 지방이니 술꾼 조선 과객의 입장에선 저녁에 마실 와인 생각만 하면서 걸으면 덜 힘이 드리라. 스페인 사람들 말로 스페인에서 리오하만큼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지역은 없다고 한다. 특히 적포도주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단다. 프랑스의 보르도 사람들이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에스파냐인들의 호기도 만만치 않구나. 비노 호벤(Vinos Jovenes), 끄리안사(Crianzas), 레세르바(Reservas), 그란데스 레세르바(Grandes Reservas)와 같은 포도주가 생산된다. 이 포도주들은 오래된 떡갈나무통에 숙성되어 균형 잡히고 풍성하며 풍부한 색깔, 적당한 산도, 섬세한 향, 기분 좋은 감칠맛을 낸단다. 술꾼 금삿갓은 막걸리나 소주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포도주와는 화류계 50년 경력에 별로 친하지 않아서 와인의 등급이나 맛에 별로 관심이 없다. 로마네 꽁티나 스페인 슈퍼에서 5유로에 산 와인이나 차이가 없다고 금삿갓의 혀는 강력하게 말한다. 10여 년 전에 나파밸리에 갔을 때, 신세계 와인의 종주국 미국의 와인 산업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미국 스포츠계의 거물 '은둔의 크랑키(Kroenke)'라고 불리는 스탠 크랑키가 운영하는 최고의 카베르네 품종의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이라고 해도 그냥 비싼 와인이구나 하는 정도의 감흥이다. 요즘 순례길을 걸으면서 매일 와인을 한 병씩 비우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소주 한 병이 훨씬 더 좋은데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