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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나바레떼 마을을 지나서(7/23)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도공(陶工)의 마을

by 금삿갓

그라헤라 공원을 가로질러 저수지를 돌아가면 자동차 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는 산을 넘어 나바레떼 마을로 이어지는데, 도로 옆으로 평행하게 이어져있는 순례길과 도로 사이에 있는 철망에 순례자들이 걸어놓은 작은 나무 십자가들이 무수히 많이 반긴다. 모두 순례객들이 피곤한 일상을 잊기 위하여 각자 소망과 생각을 담아 나뭇가지나 물건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철망에 끼어 놓은 것이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쓰레기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모두가 십자가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철망길을 끼고 사유지를 지나서 순례길이 이어져 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황소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스페인이 투우의 종주국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소 목장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가는 지역마다 황소 모형의 거대한 조형물을 도로 옆의 산 언덕에 세워두고 있다. 간혹 돈키호테 형상의 거대한 조형물도 있다.

이곳은 옛날 순례객들의 병을 치료하던 병원의 유적이다. 산 후안 데 아크레(San Juan de Acre)였는데 모두 허물어지고 지금은 기초 부분만 겨우 남아 있어서 그 옛날의 성대했던 모습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다. 이 병원 시설은 1185년 도나 마리아 라미레즈(Dona Maria Lamires)가 순례자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했다. 완성은 그의 아들인 마르틴(Martin) 주교가 했다. 그 뒤로 나바라의 와이너리인 보데가(Bodegas)의 방계 와인너리 돈 따꼬보(Don Tacobo)가 보인다. 순례길 옆으로 이 와이너리의 주력 상품인 돈 따꼬보 와인병이 커다란 자태로 서서 지나가는 순례객을 유혹하고 있다. 잠시 들여서 맛을 보고 가라는 간판도 있지만 갈길이 바쁜 조선 과객 금삿갓은 그 유혹을 뿌리치고 걷기를 계속한다.

드디어 나바레떼(Navarreta) 마을에 들어간다. 로그로뇨에서 13km 되는 지점이고,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576km이다. 전체 길이로 따지면 30% 정도 좀 못 되는 길을 걸은 것이다. 나바레떼는 도공(陶工)의 마을이란다. 오래된 도자기 공장들과 창고들이 많으며 호텔과 오래된 알베르게가 순례자의 발길을 잡아끌지만 금삿갓은 그냥 지나가야 한다. 나바레떼는 옛날 까스띠야와 나바라 사이의 전투가 치열했던 장소이면서 로그로뇨보다 더 이전에 만들어진 도시란다. 마을에는 오래된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떼데온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형적인 이유로 지역 방어에 중요한 도시였다. 오랫동안 나바레떼는 언덕 위에 있는 성곽 안에 수많은 중세풍 집들이 있었다.

이 마을의 성모승천 성당 (Iglesia Asuncion de la Virgen)이다. 사각형 기단에 세 개 신랑과 아치형 궁륭이 있는 성당으로, 1553년에 후안 데 바예호와 에르난도 데 미멘사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후 한참 동안 중지되었다가 1645년에 완공되었단다. 내부의 제단화는 리오하 바로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일 뿐만 아니라 17세기말, 18세기 초 후기 바로크 양식의 모든 경향이 모여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라 리오하 주에서 유일하게 고대 도기(陶器) 터가 남아있는 이곳 나바레떼는 도공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이 있다. 길가의 순례객 음수대에도 도공을 기념하는 모형이 있다. 물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인의 자태이다. 조선의 여인들만 물을 길어 올 때 항아리를 이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스페인의 여인들도 물항아리를 이고 다녔던 모양이다.

길가의 항아리 공장에는 커다란 질그릇 항아리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그 옛날의 명성을 이어가는 것 같았다. 스페인어로 도공을 알파레로(Alfarero)라 하는데, 공장의 간판이 알파레리아(Alfareri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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