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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벤또사 마을에서 하룻밤을(7/23)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1Km의 예술을 감상하며

by 금삿갓

오늘은 아침에 비아나를 출발하여 로그로뇨와 나바레따를 지나서 마지막 종착지인 벤또사(Ventosa)가 끝이다. 총거리는 30.3Km이고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계속 오르막길로 이루어졌다. 나바레따에서 벤또사까지도 오르막 길이다. 벤또사는 715m의 산 안똔 언덕(Alto de San Anton)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산 안똔 언덕(Alto de San Antón)을 포함하여 모든 오르막은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다. 오르막도 그리 높지 않고, 먼 거리에서 장시간 걸어온 순례자들에겐 조금 지친 몸에 힘이 더 들뿐이다. 나바레떼를 나와 벤또사의 언덕길을 오르기 전 까미노를 따라 내리막을 가다 보면, 1986년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벨기에 순례자 앨리스 그래이머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순례길을 걸을 때도 교통사고를 대비해야 한다. 특히 마을을 나와 고속도로나 포장도로를 건널 경우 더욱 주의를 하여야 한다. 벤또사로 가는 길목에 멀리서 보면 마치 평창의 메밀꽃이 핀 밭이 보이는 듯하다. 무슨 식물인지는 몰라도 드넓은 밭에 흰꽃이 만발했다. 식용인지 약용인지도 모르고, 잡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꽃만 가득 핀 걸로 보아서 잡초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나고 자란 것은 아닐듯하다.

벤또사의 마을 어귀에 이곳부터 1Km 예술지대라는 표지판이 서있고, 길 옆으로 사진 작품들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이는 벤또사 주민들과 유명한 예술가들이 협력하여 산티아고 길을 재창조하고, 자연환경에 예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사진과 그림, 설치조형물 들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길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을을 찾아드는 순례객들의 눈요기가 되는 것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벤또사 마을의 중심에는 사뚜르니노 성인에게 봉헌한 성당이 있고, 전원풍 건물들이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인 이곳은 순례길에 지쳐서 조용함과 평온함을 찾는 순례자들에게는 이상적인 마을이다. 기록에 따르면 11세기에 산초 3세가 산 미얀 데 라 꼬고야 수도원에 이 마을을 기부했다는 것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세 벤또사 부근 까미노에는 산 안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 오래전 폐허가 된 이 병원에는 아름다운 예수의 상이 있었는데,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하여 현재는 로그로뇨의 순수미술 박물관에 소장돼 있단다.

이 마을에는 산 사뚜르니노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Saturnino)이 있다. 산 사뚜르니노 성당은 벤또사 중심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다. 사각형 기반에 벽돌로 만든 13세기 후반의 탑이 있다. 탑의 끝부분은 여덟 면으로 피라미드형으로 되어있다. 탑의 16세기 고딕 양식 현관은 동식물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위에 올라가면 매력적인 마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내부의 궁륭과 창미창이 아름다우며, 14세기에 제작된 누워 있는 그리스도상과 펠리컨이 피를 흘리며 새끼들을 먹이는 조각상이 있다.

7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는 벤또사의 뿌에블로 광장에서 마을의 무용수들이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는 축제를 한단다. 우리가 도착한 것이 7월 말경이니 그 축제를 보지는 못했다. 이것은 바로 벤또사의 수호성인 블랑까 성모에 대한 전설로부터 나온 축제란다. 옛날 산 사뚜르니노 성당에 블랑까 성모상이 있었는데, 하루는 한 소년이 종루로 새를 잡으러 올라갔다가 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긁힌 자국 하나 남지 않고 멀쩡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성인 블랑까 성모가 도와주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 다른 전설도 전해지는데, 블랑까 성모상을 훔치려 한 도둑의 이야기다. 어느 날 도둑이 성모상을 가지고 도망을 가는데, 뿌에블로 광장 근처에서 갑자기 성모상이 너무나 무거워져서 훔쳐갈 수 없어 바닥에 내려둔 뒤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근거로 이런 축제가 매년 개최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알베르게가 이 마을의 카미노협회에서 운영하는 산 사뚜르니노 알베르게 하나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차라리 조용하고 편안했다. 마을이 작아서 슈퍼마켓은 고사하고 구멍가게도 필자가 어렸을 때 살던 시골 동네의 점방 정도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식료품은 마을에 있는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음수대는 번듯하게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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