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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나헤라 마을을 지나서(7/2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전설이 깃든 마을

by 금삿갓

벤또사에서 날이 밝아오자 06:00에 다시 순례길을 시작했다. 알베르게를 나와서 길 위에서 보니 온 세상이 아직 어둡고 먼동이 터오는 시간이다. 동쪽에서는 약간 불그스레한 빛이 감돈다. 벤또사에서 산 안똔 언덕의 정상까지는 가까운 거리여서 금세 올라온다. 정상 부근에 순례객의 쉼터도 조성되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첫 번째 지나갈 마을인 나헤라(Najera)까지는 계속 내리막 코스이다. 포도밭이 계속되기도 하고 불모지가 계속되기도 한다. 나헤라까지는 10Km가 조금 넘는 거리이다. 중간에 얄데강(Rio Yalde)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나헤리야 강(Rio Najerilla)을 건너면 바로 나헤라에 당도하게 된다.

길가에 있는 확성기를 설치한 구조물에 새가 아주 근사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새들은 정말 정교한 건축가이다. 어떤 지형지물이든 적절히 활용하고, 자연에서 나는 각종 재료를 조합하여 자기만의 멋진 집을 짓는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마을의 성당 에는 하나같이 높은 종탑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높은 종탑의 꼭대기에도 새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우리나라도 봄철이면 까치들이 한전의 전신주에 집을 짓는데, 가끔 나뭇가지가 아닌 철사나 전기가 통하는 물질을 물고와서 지으면 전선이 합선이 되어서 정전사고가 잦다고 한다. 그래서 한전은 봄철이면 까치집을 제거하느라 까치와 전쟁을 선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집을 부셔 놓으면 그 다음날 바로 다시 짓는 기민성이 있단다. 산란기인 봄철의 까치집 제거는 한전의 숙제이고, 문화재나 오래된 목제 건축물도 비둘기나 다른 새들의 집을 지을 수 없도록 망을 두르기도 한다.

나헤라는 나헤리야 강을 사이에 두고 8개의 아치를 가진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리((Puente de San Juan de Ortega)가 구도시와 신도시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나헤라는 특히 아름다운 기사들의 회랑과 신비한 왕가의 영묘를 볼 수 있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이 있는 도시이다. 신시가지 도시로 먼저 도달하는데, 도착한 시간이 아침시간이라서 식사할 곳을 찾는데, 마침 중국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소피아라는 중국음식점이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전날 숙소인 벤또사로부터 2시간가량 걸어와서 지금 8시 5분으로 기온은 20도 정도로 쾌적한 상태이다. 신도시는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 길옆에 문을 열어 놓은 레스토랑이 있어서 들어가서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아가씨가 아주 상냥하고 친절해서 같이 사진도 한 장 촬영했다. 나헤라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대부분 붉은 암석으로 된 산이고, 토양도 많이 붉은색이었다. 나헤리야 강을 중심으로 나헤라는 바리오 데 아덴뜨로(Barrio de Adentro)라고 하는 구시가지와 바리오 데 아푸에라(Barrio de Afuera)라고 하는 신시가지로 나뉜다. 나헤라는 과거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 왕국 사이에 있었다. 로마 시대에 세워진 이 도시를 아랍인들은 ‘바위 사이의 도시’라는 의미인 나사라(Naxara)라고 불렀다. 산초 엘 마요르 왕은 나헤라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지나가게 함으로써 도시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나헤라에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같이 훌륭한 건축물이 많다. 이곳에는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 현명왕 산초, 도냐 블랑까 데 나바라 등 서른 명 가량의 왕의 무덤이 있단다. 근교에 산 미얀 데 라 꼬고야 수도원, 라 리오하의 수호성인인 발바네라의 수도원 등이 있어 방문할 수 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리 (Puente de San Juan de Ortega)는 처음 건설된 것은 10세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12세기에 산 후안 데 오르떼가 다시 지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번 보수되었으나 나헤리야 강의 주기적인 홍수를 이기지는 못했다. 1866년에 원래 다리가 있던 자리에 현재의 다리를 다시 건축했고 2003년 교통량 증가로 폭을 넓혔다고 한다.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 (Monasterio de Santa Maria la Real)은 산초 3세의 아들인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6세에 의해 11세기에 세워진 클뤼니 수도원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은 흔적만 남아있고, 15,16세기에 재건축되었다. 건축 양식은 추리게레스코식 고딕 양식이며, 15세기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보관되어 있다. 수도원 안에는 성당, 왕가의 영묘, 기사들의 회랑 등이 있다. 이 중 산초 3세의 부인이자 알폰소 8세의 어머니인 도냐 블랑까 데 나바라의 무덤이 돋보인다고 한다. 이 수도원의 건립 기원에 대한 전설이 전해 온다. 어느 날 나바라의 왕 돈 가르시아의 사냥용 매가 비둘기를 쫓고 있었는데, 매와 비둘기가 숲으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매를 기다리다 지친 왕이 직접 매를 찾아 나섰다가 숲 속에서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 동굴에서는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왕이 동굴에 들어가자 찬란한 빛을 내는 백합 화병과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와 비둘기가 마치 좋은 친구 사이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왕이 이 자리에 성소와 수도원을 지으라고 명령하여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왕은 이곳을 나바라 왕의 묘지로 쓰기로 결정했는데, 이 전설이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의 기원이다. 성모상을 발견했을 때 성모상을 장식하고 있던 떼라사(Terraza : 화병)를 기념하여 라 떼라사 기사단이 결성되었단다.

수도원 광장에 수도사와 기사단 복장을 한 마네킨을 세워두었는데, 지나가는 순례객들이 이 조형물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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