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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나헤라에서 아소프라까지(7/2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붉은 토양의 포도밭들

by 금삿갓

라 리오하(La Rioja) 주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땅의 빛깔이 붉게 물들어있고, 바위들도 붉은색이다. 마치 미국의 애리조나주 세도나 정도는 아니지만 불그스레하다. 이런 석회암과 충적토가 많은 땅은 잡초를 억제하는 동시에 포도나무의 성장을 촉진해 준다고 한다. 스페인의 태양을 닮은 이 붉은 황토와 포도나무는 레온의 황무지까지 계속 이어진다. 순례자는 한국에서 평소에 먹는 포도보다 훨씬 알이 작고 단맛이 강한 포도가 생산되는 포도밭을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중세 아랍인들의 마을이었다고 전해지는 아소프라(Azofra)에 도착한다. 나헤라(Najera)에서 약 6km 정도이다. 나헤라를 나와서 2.5km 떨어져 있는 나헤라 언덕을 넘어가면 된다. 나헤라를 빠져나오면 까미노 길은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의 가장자리를 돌아 뻬냐에스깔레라(Peñaescalera)의 비탈길로 가는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오래된 도로를 따라가면 붉게 물든 바위산 사이의 소나무 숲을 통해 비탈길로 된 통행로를 만나게 된다. 이 통행로를 거쳐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다. 마을을 나오면 답답한 가슴을 씻어 줄 라 리오하 평원이 펼쳐진다.


포도밭에 물을 대기 위한 시멘트로 된 긴 수로들이 순례길 옆으로 쭉 늘어서 있다. 가끔 이음새 부분에서 물이 줄줄 새는 아쉬운 광경도 보게 된다.

산티아고가 581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가끔 남은 거리를 표기한 표지판에 숫자가 무척 차이 나게 표기된 것도 있다. 지나온 길의 거리와 잘 맞지 않는다. 그냥 순례객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대충 표기한 것인가? 아무튼 남은 길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고, 걸음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되고 나니 몸의 피로도도 점차 떨어진다. 발의 물집도 이젠 제법 아물어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이 포도밭의 포도나무를 보라. 수령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튼실하게 포도를 주렁주렁 매달고 잘 영글고 있다. 포도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것이 희귀성과 풍미의 복합성을 띠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대략 20년 정도가 되면 최고의 생산성을 나타내고, 40년이 넘어가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올드바인이라고 100년, 200년 되는 포도나무가 있지만 이들은 포도가 열리는 숫자가 줄어들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와인업자들이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와인병의 라벨에 V.V(Vieilles Vignes)라고 표기한다. 기록상으로 현존하는 가장 수령이 오래된 포도나무들은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 지역에 있는 Zametovka 포도나무로 400년가량 된단다.

포도밭을 끼고 저 멀리 아소프라 마을이 보인다. 나헤라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니 도달할 수 있었다. 까미노는 포도밭 사이로 이어져 있어서 알알이 영글어 가는 포도송이를 보면서 아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왼쪽에는 데만데 산맥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또로뇨의 하얀 언덕이 멀리 보인다. 아소프라까지의 여정은 매우 쉽고 유쾌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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