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수의 세상읽기(201216)
조선시대에 왕이 믿을 만한 당하관(堂下官 : 정 3품 통훈대부, 어모장군 이하)을 뽑아 지방으로 비밀리에 파견하여 수령방백(守令方伯)·토호(土豪)들의 잘못을 규찰(糾察)하거나 백성들의 고통을 탐문케 하는 제도가 암행어사(暗行御史)이다. 암행어사는 비밀성·잠행성에 있어서 일반어사와 다르고, 조선 초기 행대어사(行臺御史) 제도가 발전된 형태이다.
왕은 어사를 파견할 적에 직접 또는 3정승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발했다. 선발된 어사의 파견지는 360개 지방관서의 이름을 적어 넣은 죽통(竹筒)에서 추첨하여 선정하였다. 선발된 어사는 파견지가 적힌 밀봉된 봉서(封書)와 어사의 직무 지침서인 사목(事目), 마패(馬牌), 표준 도량형기인 놋쇠로 만든 자 유척(鍮尺)을 수령해서 목적지로 떠났다. 봉서에는 파견 지점의 사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겉면에 어느 지점에서 열어 보라고 기재되는데 주로 4대문을 나서면 개봉하도록 했다. 마패는 교통수단인 역마(驛馬)를 사용할 수 있는 증패(證牌)로 1마리~5마리의 5종이 있는데, 대부분 2마패를 지급했다. 마패는 암행어사임을 증명하는 신분증 역할과 각종 문서에 날인하는 직인(職印)으로도 사용하였다. 유척은 지방관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형구(刑具)를 사용하는지 측정하는데 사용했다.
암행어사는 그 특성상 비밀성과 잠행성(潛行性)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체로 아래와 같이 운용되었다.
불시분견(不時分遣) 불시에 갑자기 각 지방으로 나누어 파견한다.
추생분견(抽栍分遣) 행선지는 추첨으로 나누어 파견한다.
출기불의(出其不意) 상대가 알지 못하도록 뜻밖에 나타나도록 한다.
폐의파립(弊衣破笠) 남루한 복장을 한다.
제기선성(除其先聲) 행방이 미리 소문나지 않도록 한다.
성기도종(省其徒從) 따르는 무리를 소규모로 단속한다.
출입여락(出入閭落) 마을을 드나들며 염탐한다.
염문정찰(廉問偵察) 몰래 살펴서 알아낸다.
수령득실(守令得失) 수령의 잘잘못을 살핀다.
민생이병(民生利病) 백성들의 이익이나 병듦을 살핀다.
향간호우(鄕奸豪右) 적당히 처리하거나 권세 부리는 것을 살핀다.
실령발적(悉令發摘) 빠뜨리지 말고 모조리 적발한다.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 판소리에서 유명한 암행어사를 익히 알고 있다. 박문수(朴文秀)와 이몽룡(李夢龍)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몽룡은 작품상 허구의 인물이지만 실존 인물인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 춘향전의 주인공이다. 그는 남원부사를 지낸 성안의(成安義) 아들로서 암행어사를 3번 역임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도 암행어사를 역임했다. 순조 때 암행어사 만오(晩悟) 박래겸(朴來謙)은 서수일기(西繡日記)를 지어 어사의 활동을 자세히 남겼다.
모든 제도가 양면성이 있듯이 암행어사 제도도 여러 가지 폐해(弊害)가 잇달았다. 충원어사 이재간(李在簡)은 양진창(楊津倉)의 곡식을 부족하게 관리한 충원현감을 잘 다스리지 못해 파직당하거나, 호남어사 이희갑이 나주목사 조시순의 진휼(賑恤) 처결이 부적절하여 처벌받는 등 어사들의 부조리도 발생했다. 또한 어사 이종성과 한현모는 대리인에게 조사를 시키기도 하였다. 지방관들의 저항 또한 만만찮았다. 황해어사 조종경이 강령현에 당도해도 현령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강원어사 송기수의 압수 공문서를 강릉부사 장계문이 증거를 인멸(湮滅)하려고 훔치기도 하였다. 당한 지방관들과 그와 연계된 조정의 신료들에 의한 보복 또한 일어났다. 어사 이계와 나주목사 구봉서의 관계가 그러했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도 보복성 탄핵으로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 어사 홍량한(洪亮漢)은 의문의 중독사를 당했고, 권준(權晙)은 수령에게 체포되어 갇히기도 했다. 더구나 가짜어사 즉 어사 사칭(詐稱) 사례가 많이 발생하였다. 나주의 도적 김국보, 홍경래란 때에 유한순 등이 어사를 사칭하였고, 황해도에서는 박광복이 가짜어사 노릇을 하다가 효수(梟首)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 정치권에도 현대판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하려는 중이다. 정치권이나 학계, 법조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收斂)하여 헌법 원리에 맞게 입안함이 바람직하겠지만 다수의 힘과 안건 신속처리제도(Fast Track)라는 것을 이용하여 처리했다. 그리고 또 공수처(公搜處) 구성에 대한 여야(與野)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시행도 못해본 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여 다수의 힘으로 기습 의결하였다.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여론의 54.2%가 공수처법 일방 처리를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지금 온 나라가 코로나 창궐(猖獗)로 숨이 막히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화로 자영업자를 포함한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핍박(逼迫)한가? 그런데 맨날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등 백성들의 삶과 동 떨어진 짓거리나 하는 정치권에 신물이 난다. 민생은 뒷전이고 밥그릇 싸움이나 일삼는 이들을 보고 이몽룡(李夢龍)이 되살아온다면 무어라 할까? 남원부사 변학도(卞學道)의 생일잔치에서 읊은 것처럼 이렇게 읊으면서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칠 것이다.
기습의결중우정(奇襲議決衆愚政) 날치기 기습 의결은 중우정치(衆愚政治)이고,
반대벌기사연산(反對罰技似燕山) 반대파의 처벌 기술은 연산군(燕山君)을 닮았네.
역질창궐민루락(疫疾猖獗民淚落) 코로나 창궐로 백성의 눈물 흐르는데,
택가고처원성고(宅價高處怨聲高) 집값 오르는 곳에 원성도 높구나.(금삿갓 芸史 琴東秀)
<암행어사 출두로 혼비백산한 생일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