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수의 세상 읽기(201210)
일본 겐로쿠(元祿) 14년(1701년) 3월 중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고베(神戸) 지역의 아코(赤穂) 번주(藩主)인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가 단도로 할복(割腹) 자결을 했다. 형(刑)을 집행한 다무라 다쓰아키(田村建顯)가 “벚꽃은 떨어질 때가 제일 아름답다.”라고 말하자, 그는 “바람에 날리는 벚꽃보다 슬프구나!”라며 34세의 젊은 청년이 벚꽃처럼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 처형이 발단이 되어 주신구라(忠臣藏)라는 소재가 일본에서 가부키(歌舞伎), 조루리(淨瑠璃), 고단(講談), 영화, 드라마 등의 문학예술에 가장 많이 활용되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Ruth Benedict의 <국화와 칼>, 아르헨티나 문호 Jorge Luis Borges의 <불한당들의 세계사>에도 등장한다.
사건의 시놉시스(Synopsis)는 대강 이렇다. 일왕(日王)의 칙사(勅使)가 에도막부(江戶幕府)에 의전 상 매년 오는데, 이를 접대하는 관리로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가 선임되었다. 의전에서 결례가 없도록 막부의 의전담당인 키라 요시나카(吉良義央)가 지도역(指導役)을 맡았다. 그는 지도의 대가로 암암리에 뇌물을 요구하지만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가 원칙주의자라서 듣지 않는다. 칙사가 도착한 그 순간까지도 지도역이 괴롭히고 망신을 주자 아사노(淺野)가 칼을 뽑아 키라(吉良)에게 상해를 입힌다. 막부의 법으로 에도성 내에서는 칼을 쓰는 것이 금지이고, 공식행사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자 아사노(淺野)는 할복형(割腹刑)을 받고, 아코번(赤穂藩)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당시 막부에는 싸움이 발생하면 시비(是非) 불문하고 쌍방 처벌인 겐카료세이바이(喧嘩両成敗)라는 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노(淺野)만 처벌받고, 키라(吉良)는 승승장구했다. 그러자 주인을 잃은 가신(家臣) 사무라이(侍)들이 낭인(浪人)이 되거나 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 아사노(淺野)가 죽은 이듬해인 1702년 12월에 가신(家臣) 중 우두머리인 오이시 요시오(大石良雄)를 중심으로 47인들이 뭉쳐서 키라(吉良)의 저택에 눈 내리는 야밤에 침투했다. 그리고 그의 목을 베어 주군(主君)의 무덤에 바치는 복수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막부(幕府)의 법을 위반한 혐의로 집단 할복형(割腹刑)을 받는다. 짧은 봄날의 벚꽃처럼 스러져간 주군을 따라 설국(雪國)의 차갑고 맑은 눈꽃처럼 생을 등진 것이다. 그들은 당시 막부의 법을 위반했지만 충성심이나 무사도(武士道), 의리에 부합하는 행위로 민중과 사무라이들로부터 칭송받아서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일어나는 법·검대란(法·檢大亂)을 일본의 주신구라(忠臣藏)에 대입해 보자. 일왕(日王)은 요즘으로 치면 주권(主權)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고, 에도막부(江戶幕府)인 도쿠가와(德川)는 대통령에 해당되겠다. 그 당시의 일왕(日王)과 지금의 우리 국민들도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도쿠가와(德川) 막부가 일왕과 백성을 위하여,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 막부가 정신적 지주인 일왕의 칙사를 잘 모시라고 아사노(淺野)를 임명했다.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을 포함해서 모든 비리를 척결(剔抉)하고 정의를 세우라고 검찰총장을 임명했다. 임명받은 관리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막부는 키라(吉良)를 지도역으로 임명하였고,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주장하며 정치인 출신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다.
지도역인 키라(吉良)는 자기의 영향력을 키우고 더 많은 뇌물을 알겨내기 위해 사사건건 아사노(淺野)에게 트집을 잡거나 자존심을 뭉개고 촌놈이라며 무시하기 일쑤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이 자기의 부하라며, 지휘권(指揮權)을 발동하고, 감찰을 실시한다. 더구나 아예 파직을 시키기 위하여 징계처분까지 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키라(吉良)는 막부에서 엄금하는 뇌물을 암묵적으로 요구하지만 아사노(淺野)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이나 자기편에 대하여 사정의 칼날을 겨누자 법무부 장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옥죄어 내치려고 한다. 주신구라(忠臣藏)에서는 아사노(淺野)가 더 이상 참지 않고 상관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다. 현실에서도 탈원전 정책 결정이나, 장관이 시행한 감찰과 징계처분에 절차나 과정에서 불법·탈법이 있는지 검찰총장이 역공(逆攻)을 가하고 있다.
에도막부에서는 성안에서 칼을 휘두를 수 없다는 당시 법에 따라 아사노(淺野)를 즉각 처형하고 영지인 아코번(赤穂藩)을 몰수했다. 하지만, 싸움이 발생했을 경우 시비에 상관없이 쌍방을 모두 처벌한다는 겐카료세이바이(喧嘩両成敗)법을 어기고 가해자만 처형하고, 원인 제공자는 승승장구했다. 그러자 아코번(赤穂藩)의 가신인 47명의 사무라이들이 1년 10개월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한 후 권토중래(捲土重來)한다. 주군과 본인들의 명예와 복수를 위해 원인 제공자인 키라(吉良)의 목을 베어 죽인다. 주군에 대한 끝없는 충성과 명예의 회복을 하였지만 더 높은 막부에게는 불충(不忠)이 되어서 모두 할복형을 당했다. 하지만 이 행위는 충절과 의리를 바로 세운 본보기로 당시에도 엄청난 찬양을 받았고, 시대를 뛰어넘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3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역사상 가장 좋은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로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 가부키 등등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서 재생산되고 있다. 죽었으되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것이다.
법·검대란(法·檢大亂)으로 눈을 돌려보자.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징계위원회 개최와 해임(解任)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해임과 별개로 공직자들을 더욱 옥죄기 위한 공수처법을 국회에서 기습 처리하여 대응하고 있다. 해임 여부를 떠나 검찰총장의 인기는 에도막부 시대의 그 사건 때와 비슷하게 높아지고 있다. 집권자 측에서 쫓아내려고 시도할수록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동반 사퇴 없이 일방적 해임으로 결말이 난다면 검찰 조직의 사활이 걸린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큰 싸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의 가신(家臣)은 아니지만 검찰 조직의 존재 이유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한 싸움이다. 똘똘 뭉쳐 무소불위의 살아있는 권력에도 비리 척결(剔抉)의 칼날을 가차(假借) 없이 들이대어야 한다. 목숨을 내놓은 47인의 사무라이처럼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단호하게 붙어야 검찰 조직이 살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공명정대한 큰 칼로 썩어 빠진 정치집단들의 더러운 환부(患部)를 모조리 도려내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때다. 거대 권력의 삭풍(朔風)에 맞설 수 있는 매화 봉오리만이 온 세상에 그 향기를 전할 수 있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