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노비의 무덤에 침을 뱉으랴?

금동수의 세상 읽기(201209)

by 금삿갓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나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아니다. 또한 메어 자르치(Meir Zarchi) 감독, 카밀 키튼(Camille Keaton) 주연의 영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I Spit on Your Grave.)>는 더욱 아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왕조시대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실학자(實學者)의 삶을 살면서 남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비(奴婢)에 대한 관대한 입장으로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그의 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인사문(人事門) 편(篇)에 노비에 관한 글을 두 편을 실었다. 하나는 <노비(奴婢)>라는 논설이고, 다른 하나는 <제노문(祭奴文)> 즉 노비에게 올리는 제문(祭文)이다. <노비(奴婢)>라는 논설문의 내용은 대강 아래와 같다.

조선의 노비법(奴婢法)은 천하 고금에 없는 법이다. 한번 노비가 되면 평생토록 고역(苦役)을 겪는 것도 불쌍한데 하물며 법에 따라 어미의 대(代)를 이어 신역(身役)을 치른다. 어미의 어미와 그 어미의 어미의 어미로부터 멀리 10세(世)·백세(百世)를 소급하여 어느 세대의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면서 외손(外孫)으로 태어나면 노비로서 한량없는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다. 과연 노비가 된다면 안회(顏回 : 공자의 제자)와 백기(伯奇 : 주나라 때 효자)도 그렇게 행실을 할 수 있을까? 관중(管仲 : 제나라 명재상)과 안영(晏嬰 : 제나라 청백리)도 그런 지혜를 쓸 수 있을까? 용감해서 이름난 맹분(孟賁)과 하육(夏育)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남의 집에 붙어 학대(虐待) 받고 괴롭힘 받으니 이처럼 궁한 백성은 천하에 없을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은 “노비도 사람의 자식이니 잘 대우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른바, 사람의 도리로써 사람을 부린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또한 <제노문(祭奴文)>의 서문(序文)에서 “종과 주인의 관계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임금은 귀한 벼슬과 봉록(俸祿)을 주니 그 은혜를 입은 신하가 그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그러나 주인은 종에게 잘 먹이고 입히지도 못하면서 온갖 고역(苦役)을 다 시키고 성날 때에 형벌은 있어도 기쁠 때도 상이 없다. 조금만 잘못이 있으면 벌로서 다스리니 왜 그럴까? 신하는 임금의 상(喪)에 머리를 풀지 않는데, 종은 주인의 상(喪)에 머리를 풀고 꼭 처자(妻子)와 같이 한다. 신하가 죽으면 임금이 조상(弔喪)을 하고 제문(祭文)을 보내는 예(例)가 있는데, 종의 죽음에는 주인이 슬퍼하지도 않고 술 한 잔 붓는 일이 없으니, 그것은 또 왜 그럴까?”라고 했다.

그래서 ‘관(管)’이란 종이 죽은 지가 오래 동안 그 무덤에 제(祭)를 지내지 않는다기에 제노문(祭奴文)을 지어 위로한다고 했다. 그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너는 한평생 부지런히 윗사람을 받들었으므로 내가 사실 힘입음이 컸는데 어찌 차마 잊겠느냐? 너의 자식이 불초(不肖)하여 내가 훈계(訓戒)하였지만, 제 살길을 찾아 떠나 버려서 너의 무덤에 풀이 우거져도 벌초(伐草)할 사람이 없구나. 살아서는 고생이 심했고, 죽어 귀신도 늘 굶주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너를 불쌍히 여겨 약간의 떡과 과일을 갖춰 너의 외손(外孫)을 시켜서 무덤에 술 한 잔을 붓고 변변치 못하나마 몇 마디 고(告)한다. 네가 비록 문자(文字)를 해득(解得) 하지 못하지만, 귀신의 이치로 통하고 정성이 닿으면 깨닫기 마련이니 이를 흠향(歆饗)하라.”

조선 중기에 미천한 신분인 기생(妓生)의 무덤에 제(祭)를 올린 선비가 또 있으니 그가 바로 백호(白湖) 임제(林悌)이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그가 평안도사(平安都事)로 부임(赴任)하는 길에 황진이(黃眞伊)를 만나러 갔으나, 이미 타계해서 무덤에 술을 붓고 눈물 흘리면 지은 시조이다. 그는 명(名) 문장가였지만 이 일로 삭탈관직(削奪官職) 당하고 천하를 주유(周遊)하다가 불혹(不惑)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일화가 있다. 성호(星湖)와 백호(白湖)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인격이 한 시대를 뛰어넘은 인사로 보인다.

지금 우리 시대는 신분(身分)의 차별도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라고 한다. 정말 이런 정신이 온 누리 구석구석 잘 스며들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일까? 최근 한 방송사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은 탈당(脫黨)해서 무소속이지만 더블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재선인 이모(謀) 의원과 관련된 의혹이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증권회사 펀드매니저로 재력을 쌓아 철강·플랜트로 건실한 기업 KIC를 인수했다. 이를 발판으로 반도산업·이스타F&P·새만금관광개발·삼양감속기·마스터솔루션·에이스2020 등 10여 개의 계열사로 KIC그룹을 형성했다. 그리고 새만금 관광개발을 대주주로 하여 지역 거점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을 설립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는커녕 수상한 자금거래로 상장회사인 KIC란 회사만 폭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용은 KIC그룹 내부 자금거래로 이스타F&C에 344억 원, 에이스2020(본인 지분 99%)에 100억 원, 반도산업(본인과 자녀 소유)에 70억 원, 이스타항공에 85억 원 등 이리저리 자금을 빼돌리고 손실(損失) 처리했다는 의혹이다. 금액은 적지만 아들의 골프 코치를 직원으로 해서 7,500만 원, 이혼한 전 부인을 임원으로 등재해 4.6억 원, 누나 부부의 고문료 명목으로 5.5억 원, 조카의 증여세 7,200만 원 등을 회사자금으로 지급하여 그의 형(780억 원 배임·횡령)과 조카(46억 원 횡령)가 징역형을 받았단다. 횡령(橫領)의 수혜가 대부분 이모(謀) 의원 본인이나 가족에게 수렴(收斂)되었음에도 명목상의 대표였던 형과 조카만 처벌되고 본인은 법망(法網)을 피해 갔다고 한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스타항공이 경영이 어렵게 되자 2020년 9월에 종업원의 절반이 넘는 605명에게 정리해고(整理解雇)를 통보했다. 또한 지금까지 임금체불이 300억 원데이 이른단다. 회사가 고용보험료 5억 원을 미납하여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고용유지 지원금 혜택도 못 받는다. 엄동설한이 다가오는데 길바닥에 나앉거나, 봉급을 못 받은 종업원들의 생계가 조선시대 하층민 중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공식 개인재산으로 신고한 금액이 212억 원이고,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의 지분 모두를 아들과 딸이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기업이나 종업원을 구하기 위한 사재(私財)의 출연(出捐)이나 자구노력 등 책임지는 자세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이런 파렴치(破廉恥)한 인사를 공천하여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기업 파괴 의혹자를 중소벤처기업 진흥공단 이사장으로 만든 집단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605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고, 1,600명의 노동자가 임금을 못 받아 막막하다. 과거 대우차나 쌍용차 사태 때는 쌍수를 들고 개입하던 정치권이 이 문제에는 눈만 껌벅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일간지의 사설(社說)처럼 최고의 권력이 뒷배를 책임지고 있어서일까? 다스의 주식을 안 갖고도 실소유주로 간주되어 횡령 등의 혐의로 17년의 징역형을 받은 판례도 있다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근로자를 포함한 수많은 피해자로 보아 다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악질적(惡質的)이고, 반사회적임에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책으로 집권한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가?

자신을 위해 부리던 사람의 무덤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할망정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몰아쳐 오는 계절에 쪽박을 차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필코 그들의 무덤에 침을 뱉어 주어야 한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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