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好酒家) 조선 과객 금삿갓이 밀밭길을 걷자니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 없는 막걸리만 그리워하지 말고 술 익는 마을을 찾아 이역이천리(異域二千里)를 구름에 달 가듯이 찾아가보자. 금삿갓이 과객(過客) 즉 지나가는 나그네이므로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나그네>를 좋아한다. 원래 이 시(詩)의 원류(源流)는 같은 청록파(靑鹿派) 시인인 조지훈(趙芝薰)의 <완화삼(玩花衫)>이다. 옛날 선비들은 같은 운자(韻字)로 한시를 지어서 서로 주고받는 수창(酬唱)을 하였다. 그런 예를 따른 것인지 이들도 그랬다. 조지훈이 경주의 박목월 집에 가서 머물다가 돌아와서 고마운 마음으로 먼저 <완화삼>을 지어 보내니, 박목월이 차운(次韻)하듯이 <나그네>를 지어서 화답한 것이다. 두 시 모두 주옥같은데, 박목월의 <나그네>가 더 압권(壓卷)이다.
<완화삼 - 박목월에게> / <나그네 - 조지훈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 강나루 건너서
하늘은 멀어 / 밀밭 길을
산새가 구슬피 / 구름에 달 가듯이
울음 운다. / 가는 나그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 길은 외줄기
나그네 긴소매 꽃잎에 젖어 / 남도 삼백리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술 익는 마을마다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 타는 저녁놀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 구름에 달 가듯이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가는 나그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길 옆으로 밀 밭이 끝 간 데를 모르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길을 걷는 지금이 7월 말경에서 8월 초순인데도 밀의 수확을 하지 않고 있어서 밀 이삭이 꼬부라지고 건조해서 그냥 부서질 듯하다. 조선 과객이 어릴 때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기 때문에 작물들의 경작에 대해서 약간 알고 있다. 밀과 보리는 늦가을에 파종을 하여 초겨울에 싹이 터서 그야말로 겨울에 논밭이 파랗게 물든다. 겨울이면 서리가 내리고 논밭의 흙이 서리로 인해 약간씩 들뜨기 때문에 이른 봄에 보리나 밀의 뿌리가 땅속으로 잘 안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른 봄에 보리싹이나 밀싹이 땅에 잘 착근하도록 보리밟기를 한다. 그리고 봄에 잘 자란 보리나 밀은 모내기를 하기 전인 5~6월 경에 수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모작으로 논에는 벼를 심어서 쌀을 생산하고, 밭에는 다른 작물을 심어서 가을에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밀들은 8월이 되었는데도 수확을 하지 않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예 밭에서 밀을 세워둔 채 바짝 건조한 뒤에 수확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밭에 농부가 한 사람도 없어서 궁금해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농기계가 움직이면서 수확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오랜 기간 밥 힘으로 살아왔다. 밥은 쌀과 보리 등이 주원료이고, 밀은 전통적으로 국수나 전을 부치기 위한 밀가루로 활용되고, 밀가루로 가공을 하고 나온 부산물인 밀기울은 막걸리를 담그는데 원료인 누룩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밀 농사가 그리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우리밀은 금강밀, 조경밀, 고소밀, 백중밀, 앉은뱅이 밀 등의 품종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1% 채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농업 대국들은 밀 생산량이 어마어마하다. 2020년 통계로 중국이 밀 생산량 1위이다. 연간 1억 3,425만 톤을 생산한다. 다음이 인도이고, 러시아와 미국이 뒤를 잇고 있다. 세계의 곡창지대라고 불리고 지금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8위이다. 이곳 스페인은 연간 814만 톤을 생산하여 세계 18위이다. 곡물의 자급률이 곧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데 식량의 생산량 증가에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도 농업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유휴 경작지가 늘어나는 추세이니 농촌의 문제가 비상이다. 우리도 대규모 기업영농으로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소규모 영세영농으로는 거대 농업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농촌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농지에 대한 국가적 활용대책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