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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7/24)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31.2Km 를 걷다.

by 금삿갓

오늘은 벤토사(Ventosa)에서 아침 06:00에 출발하여 나헤라(Najera), 아소프라(Azofra), 시루에나(Ciruena)를 거쳐서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했다. 총 거리 31.2Km를 걸은 것이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닭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을 가진 마을이다. 15세기 경에 독일 윈넨뎀 출신의 우고넬이라는 이름의 18살 청년이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함께 산띠아고 순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여 한 여인숙에 묵었는데, 그 여인숙집의 딸이 그 청년의 잘생긴 외모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신앙심이 남달랐던 우고넬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 부끄럽고 상심한 처녀는 앙심을 먹고,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우고넬의 짐 가방에 몰래 넣고 도둑으로 고발을 했다. 재판소로 끌려간 우고넬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청년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산띠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음성을 들은 그 부모가 이 마을의 재판관을 만났다. 마침 닭고기 요리로 저녁식사 중이던 재판관에게 아들이 무죄이며, 살아있다고 말했다. 재판관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내가 먹으려던 이 닭들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닭이 그릇에서 벌떡 일어나서 즐겁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재미있는 전설 덕분에 1993년부터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기적의 청년 우고넬의 고향인 독일의 윈넨뎀과 자매결연을 맺었단다. 그 후 산또 도밍고의 재판관들은 우고넬의 결백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사죄로 몇 백 년 동안 목에 굵은 밧줄을 매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과 전통 때문에 중세에 순례자들에게 여행 중에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은 징조로 여겼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순례길을 걸으며 닭의 깃털을 모았는데, 그것이 순례 중에 그들을 보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 폴란드인들은 순례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서 닭에게 주고 했는데, 닭이 빵을 쪼아 먹으면 순례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각가 호세 라몬 로드리게스(Jose Ramon Rodriguez)의 조각 작품이다. 다리의 기둥 모양에 성인 산토 도밍고의 모습을 나타냈다. 11세기에 산토 도밍고는 순례자들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오하강(Rio Oja)에 다리를 건설했다고 한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까미노의 건축가 성인’이라고도 불리는 성인이 남긴 것이며 도시의 이름도 성인의 이름과 동일하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성과 성당, 순례자를 위한 병원, 궁전, 스물 네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오하강(Rio Oja) 위의 다리 등이 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 대성당(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은 12세기에 세워져서 13, 15, 18세기에 여러 번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제단부는 여덟 개의 기둥으로 마요르 소성당(Capilla Mayor)과 분리되어 있다. 천장을 덮은 궁륭과 성인의 영묘, 주제단화, 15세기의 기적에서 유래한 암탉과 수탉이 살고 있는 닭장 등이 눈에 뛴다. 성인이 잠들어있는 영묘는 여러 양식이 혼합된 작품으로, 성인이 누워 있는 무덤 부분은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기적에 대해 기록되어있는 탁자는 고딕, 소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이다. 15세기 다미안 데 포르멘뜨에 의해 그려진 주제단화는 1994년까지 마요르 소성당 안에 있었는데, 이 그림은 스페인 르네상스의 보물로 알려져 있다. 닭들이 사는 닭장은 15세기의 고딕 양식인데, 아직까지도 성당 내부의 이 닭장에서 살아 있는 흰 닭 한 쌍을 키우고 있다. 까미노를 밝혀주는 대성당의 아름다운 탑은 18세기에 증축된 것이다. 대성당 탑은 세 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첫 번째로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은 1450년 번개를 맞아 무너졌고, 두 번째로 만들어진 고딕양식의 탑은 붕괴 위험이 있어서 해체하고, 마르띤 베라뚜아에 의해서 현재의 세 번째 탑이 건축 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이 탑의 높이는 무려 70미터에 달하는데,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 때문에 대성당 건물과 분리해서 지어야만 했다. 탑에는 일곱 개의 종이 있는데, 그 중 두 개가 시계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탑의 장식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어서 보수되었다.

<도시의 음수대>이다. 레이난도 카를로스 3세가 "산토 도밍고 시의 공공의 이익을 의하여" 라고 쓰여 있다. 아마 1799년에 설치한 순례길의 음수대로 보인다. 정말 오래된 순례길의 음수대이다. 이 마을에는 대성당 이외에 수태고지 성모 수도원(Monasterio de Nuestra Senora de la Anunciacion)과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Convento de san Francisco), 재판용 원주(Rollo Juridiscional)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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