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일간의 강행군이 서서히 몸의 피로로 누적되었는지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준비한 후 6시 정도는 순례길을 출발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한참 늦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서 07:50에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일찍부터 서두는 부지런한 순례객들이 다 떠나고 난 다음이다. 오늘은 늦게 출발했으니 평소보다 짧게 걸을 예정이다. 해는 벌써 높이 떠올라 있고, 순례길은 평소보다 약간 더운 상태이다. 알베르게를 나와서 마을을 벗어나니 해바라기 밭들이 쭉 이어져 있다. 한참을 걸어가니 약간 언덕으로 길이 이어져 있고, 언덕 중간쯤에 아주 투박한 십자가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십자가 옆에는 자귀꽃이 만발한 자귀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십자가 옆에 안내 표지판이 있기에 구글 번역기로 읽어보니 대충 "용맹한 자의 십자가"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 설명에는 '이 십자가는 목초지를 둘러싼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와 그라뇽 사이에 일어난 중세 시대의 분쟁을 기억한다고 적혀 있다.
역사적으로 비옥한 그라뇽의 땅은 늘 다툼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분쟁이 19세기 초반에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와 그라뇽 두 마을 사이에 위치한 데에사 밭을 두고 싸운 것이었단다. 분쟁이 격화되어도 해결 방안이 없자 결투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했단다. 각자 마을에서 대표로 한 명씩을 뽑아서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해서 이긴 쪽 마을이 땅을 차지하기로 정했단다.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라뇽의 마르띤 가르시아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결투를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Cruz de los Valientes)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결투가 일어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라뇽에는 마르띤 가르시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으며, 마을의 주일 미사에서는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두 마을의 문장이 나타나 있는데, 그라뇽의 문장에는 말의 문양이 그려져 있고,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문장에는 암탉과 수탉이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언덕을 넘어 그라뇬으로 들어가는 길 가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표지판에 559Km가 남았다는 표기를 누군가 해 놓았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길에 달팽이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이들도 순례길에 나온 걸 보니 순례에 동참하는가 싶어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저 달팽이처럼 꾸물거리면 산티아고 까지 얼마나 걸릴까? 달팽이는 평생을 달려가도 닿지 못할 거리인데, 아무 생각 없이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건조한 순례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저러다가 지나가는 순례객의 발에 밟혀 죽거나 너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말라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달팽이는 제 집을 지고 다니니까 제 집을 찾아다는 것은 아닐 테고, 새로운 먹이가 있는 곳을 찾느라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나선 것일 게다.
아침 늦게 출발하였지만 드디어 그라뇽 마을 입구에 도달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 마을에서 6.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마을 입구를 들어가는데 프랑스에서 온 할머니 순례객을 만났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커다란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전혀 힘들디 않고 즐거운 순례길이란다. 마을 계단을 올라가니 마을의 초등학교 여학생 두 명이 좌판을 펴고 조그만 조약돌에 그림을 그려서 순례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아주 저렴한 원재료로 훌륭한 순례 기념품을 만들어서 순례객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 게 기특했다. 그라뇽은 리오하(Rioja) 주(州)의 마지막 마을이고, 다음 마을부터는 부르고스(Burgos) 주(州)이다. 이 마을은 마리벨 언덕에 알폰소 3세가 세운 성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중세부터 호황을 누렸던 마을이다. 마을에는 산 후안 바우띠스따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이 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서 로스 후디오스 소성당(Ermita de los Judios)과 까라스께도 소성당(Ermita de Carrasquedo)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