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걷노라면 마을을 당연히 지나게 되고, 그 마을의 어귀나 마을 근처에 가끔 공동묘지를 만나게 된다. 조선 과객 금삿갓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런 공동묘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묘지를 한번 둘러보고, 하다못해 성호(聖號)라도 한번 긋고 사진을 찍고 지나곤 했다. 그리고 순례길섶에는 가끔 가다가 외롭게 서있는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이런 십자가는 대체로 순례길을 걷다가 영원히 안식의 순례길에 든 사람들을 기리는 무덤이다. 정확하게 이름이 기록된 것도 있지만, 오래되어 이름도 표식도 없는 것도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순례길에 나섰다가 삶을 마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과거에는 도둑이나 강도들의 손에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현대에는 교통사고나 기타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tes de Oca) 마을도 지나오는데 마을 공동묘지 옆에 커다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묘지를 거의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담한 묘지의 2/3가 그늘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자면 저렇게 음지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텐데 여긴 다른가 보다.
나중에 순례길을 더 가서 묵었던 고색창연한 도시 폰페라다(Ponferrada)에서 성 에스테반 성당(Iglesia de San Esteban de Columbrianos) 근처의 공동묘지(Cemeterio de Columbrianos)에 아주 큰 울림을 주는 문구가 있어서 소개한다. 왼쪽 문기둥에는 <Hasta aqui segun tu vida(여기까지는 너의 목숨에 따라)>, 오른쪽 문기둥에는 <Desde aqui segun tus obras(여기서부터는 너희들의 업에 따라)>라고 적혀있다. 타고난 목숨대로 살다가 죽으면 이승에서 각자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일 것이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tes de Oca) 마을도 지나 언덕길을 점차 오르다 보면 기념비가 하나 있다. 안내판에는 이 기념비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의 초기 몇 달에 총살을 당한 300명의 가족들이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설치했다고 되어 있다.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36년 7월에 모로코인 용병을 포함한 자신의 직속 군대를 이끌고 공산주의 정부인 인민전선 정부에 반대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다. 이 내전이 1939년까지 이어졌으나 그가 마드리드를 함락시키고 승리하여 그 후 38년간 스페인을 독재체제로 통치하게 된 것이다. 한 마리의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나뭇잎을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는 연약한 민중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련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