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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Oct 19. 2023

22> 驚雁(경안) / 놀란 기러기

漢詩工夫(한시공부)

驚雁(경안) / 놀란 기러기

- 丁若鏞(정약용) -


銅雀津西月似鉤

동작진서월사구

○●○○●●◎

동작나루 서편 달이 갈고리 같은데


一雙驚雁度沙洲

일쌍경안도사주

●○○●●○◎

한 쌍의 놀란 기러기 모래톱을 건너네.


今宵共宿蘆中雪

금소공숙노중설

○○●●○○●

이 밤은 눈 덮인 갈대밭에서 같이 자지만


明日分飛各轉頭

명일분비각전두

●●○○●●◎

내일은 각자 머리 돌려 헤어지리라.

이 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 신유사옥으로 체포되어 11월에 강진으로 유배길에 올라 한강의 동작진을 건넌 후 과천에 도착하여 쓴 시이다. 시의 제목에 부제(副題)로 도과천작(到果川作)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동작진을 건널 때 지은 <야과동작도(夜過銅雀渡)>는 칠언고시이다. 이 시는 기구(起句)의 2번 자인 작(雀)이 측성(仄聲)이라서 측기식(仄起式) 칠언절구이다. 압운(押韻)은 ◎표시된 구(鉤), 주(洲), 두(頭)으로 우운목(尤韻目)이다. 각 구(句)의 이사부동(二四不同)·이륙동(二六同) 조건은 잘 충족하고 있다. 기구(起句)의 1번 자 동(銅), 승구(承句)의 1번 자 일(一), 3번 자 경(驚) 자의 평측(平仄)을 변화시켜서 작성하였다.

시어의 뜻을 살펴보자. 동작진(銅雀津)은 한강의 동작에 있던 나루터이다. 과천을 경유해서 오는 모든 사람과 화물은 이곳을 경유하여 한양으로 왕래한다. 구(鉤)는 갈고리를 뜻하는데 다산이 유배를 떠날 때가 음력 초 아흐레정도 이므로 아직 초승달이어서 갈고리 모양일 것이다. 도(度)는 건넌다는 뜻있다. 도(渡)와 같은 용법으로 두루 쓰인다. 사주(沙洲)는 모래톱을 말한다. 소(宵)는 밤인데 야(夜)와 같아서 평측을 맞추기 위해서 대신 사용한다. 로(蘆)는 갈대이다.

정약용은 형제가 천주교도로 나란히 유배길에 올랐다. 동작나루를 건너 첫 숙박지인 과천에 도착하여 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쓴 한시이다. 놀란 한 쌍의 기러기들이 눈 속 갈대밭의 어설픈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면 내일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하여 날아갈 것으로 생각하고, 두 형제가 각기 다른 유배지로 떠나야 할 처지를 빗대어 쓴 시이다. <야과동작도(夜過銅雀渡)>와 이 시 <경안(驚雁)>은 형제가 천주교도 박해의 제물로 몰려 나란히 유배를 떠나는 길에 한 사람은 흑산도로, 한 사람은 강진으로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하는 그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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