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즐거운 밤(8/01)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운수좋은 18일째 밤(무료숙박에 호텔식사까지)

by 금삿갓

오늘 아침 6시 10분에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마을에서 이곳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 마을까지는 총 32Km를 걸었다. 엘 부르고 라네로는 전형적인 작은 마을이지만 순례객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서비스가 갖춰져 있어서 순례자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마을 근처에는 작은 연못과 저수지가 많이 있어서 강우량에 따라 그 기능을 하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솔개, 까치, 황새, 제비, 참새, 부엉이, 수리부엉이 등의 새들이 살기 좋은 곳이다. 다양한 양서류도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의 이름이 스페인어로 라네로(Ranero)는 개구리가 많이 자라는 습한 땅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이 마을은 남쪽에서 레온 근교 산에 있는 목장까지 가축을 이동시키기에 적당한 환경이다. 목축업자들은 시스띠에르나 계곡이나 리아뇨 계곡으로 가축을 이동시킬 때 기차로 이 마을까지 옮긴 후 이동을 시작합니다. 마을의 중심 구역에 위치한 건물들은 고대에 겪었던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수수한 모습의 산 뻬드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에는 예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레온의 대성당 박물관에서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는 매년 6월 21일 성 베드로 축일 전날에 마을의 젊은이들이 혼기가 찬 처녀들의 창문 아래 나뭇가지를 걸어 놓는 전통이 있단다. 마을의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이 큰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주변에서 밤늦도록 축제를 즐긴다. 축제 기간에는 이 지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뻴로따 프론똔(Pelota Fronton)이라고 불리는 전통 구기 챔피언을 뽑는다. 뻴로따 프론똔은 벽처럼 생긴 폭 6m, 넓이 5m의 보드에 손이나 기구로 고무공을 치는 경기이다. 무턱대고 눈에 띄는 숙소를 잡았다. 알베르게는 Municipal Domenico Laffi인데, 잡고 보니 횡재수(橫財數)이다. 숙소 측에서 시원한 얼음냉수와 수박을 무료로 마음껏 먹으라고 내준다. 정말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지 않을 수 있겠나? 목마른 자에게 물과 수박은 천금과 같이 귀한 것이다. 숙소까지 무료란다. 돈을 안 받는다. 침대 시트 값만 받는다더니 잔돈이 없어서 10유로를 냈더니 거스름돈이 없다고 그냥 두란다. 약간 어리둥절하다. 기부금으로 양심껏 내야겠다. 샤워를 한 후에 마을을 둘러보러 산보를 나섰다. 마을 어귀에 물저장고 건물이 거대하게 건축되어 있었고, 그 주변의 놀이터에는 동네 꼬마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사진도 찍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이 드신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자매 간인데 언니는 젊었을 때 적십자 봉사자로 아프리카의 콩고지방에서 한 20년간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니까 너무 심심하다고 했다. 숙소 앞 광장에서 도네 사람들이 축제 복장을 하고 떠들썩하게 즐기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엘 부르고에서의 밤의 휘날레는 역시 멋진 저녁 식사였다. 하루 종일 걷고, 샤워하고 마을까지 다녔으니 속이 너무 출출하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숙박료를 받지 않는 도네이션 숙소이다. 무료인 대신 각자 양심껏 기부금을 벽에 설치되어 있는 함에 넣으면 된다. 당연히 식사도 제공되지 않고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 밥을 해 먹기도 귀찮고 식사 전에 출출한 목이라도 축일 겸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호텔 Piedras Blancas로 들어가서 생맥주 라지 사이즈를 시켰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안주를 안 시키고 맥주만 시켰는데, 종업원이 다가와서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줄까라고 물었다. 필요 없다고 얘기하니까 자기가 서비스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사양을 했더니 굳이 닭튀김을 준다. 고맙기도 하고 해서 저녁을 때우려고, 그럼 계산을 할 테니 차라리 스파게티를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맥주 하나를 다 마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서 음식이 나왔다. 맛은 있었다. 그 친구 이름이 사무엘 뻬드로(Samuel Pedro)라고 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안주 하나를 스페셜로 더 해 주겠단다. 맥주를 더 시켜서 마시는데,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내왔다. 정말 이역만리에서 조선 과객 금삿갓이 완전 호강을 한다. 며칠을 굶지도 않았는데 스테이크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너무 고마워하니까 그 친구가 자기가 더 고맙다고 한다. 맛있게 먹어주어서 란다. 한국을 많이 좋아하고, 한국 축구도 좋아한단다. 계산을 하겠다니까 맥주값과 스파게티값만 내란다. 단돈 26유로에 진수성찬에 거나하게 술까지 취했으니 떠돌이 과객 금삿갓으로서는 순례길 중 최고의 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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