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술(馬槍術) 경기가 열리는 이 다리와 마을은 원래 같은 이름의 강 즉 오르비고(Orbigo)를 건너는 다리라는 뜻으로 푸엔테 델 오르비고(Puente del Órbigo)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 후에 강 반대편에 병원이 설립되면서 마을 이름이 다리 대신 현재 알려진 오스삐딸 즉 병원을 따서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로 변경되었다. 카스티야의 왕 후안 2세 시절,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Don Suero de Quiñones는 그의 사랑하는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Doña Leonor de Tovar)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중대한 약속을 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에 목에 크고 무거운 칼을 차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그 다리를 지나가는 모든 기사들과 매일 마창술 결투를 하기로 했다. 만일 결투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수치스러운 표시로 흰 장갑을 껴야 그 다리를 건너갈 수 있었다. 다리 위의 마창술시합을 제안한 이유는 해당 다리에 나타난 기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기사 1인당 3개의 비율로 창 300개를 부수고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함으로써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왕은 그에게 결투를 허락하고 온갖 편의를 제공했다. 그는 왕국 최고의 기사들을 초대하여 오르비고 병원으로 가는 길을 통과하게 했다. 마창술 결투는 1434년 7월 10일에 시작되어 돈 수에로가 부상을 입은 날인 같은 해 8월 9일에 끝났다. 7월 25일에는 산티아고 축제라는 단 한 번의 휴식 시간만 있었다. 이 경기에서 기사는 단 한 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스베르 드 클라라문트(Asbert de Claramunt)라는 이름의 아라곤 기사가 눈에 창을 맞고 그의 뇌를 통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당에서는 그의 시신을 기독교의 신성한 장소에 묻는 것을 금지했는데, 교회율법상 결투는 권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15세기 마지막부터 이 결투와 돈 수에로(Don Suero de Quiñones)의 명예를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그리고 이 다리 이름도 명예의 걸음 다리 즉 빠소 오느로소 다리로 명명되게 되었다. 한 달 간의 결투가 끝나고 돈 수에로는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떠나서, 산티아고 성당에 그의 사랑을 증명하는 반지와 파랑색 리본을 맡겼는데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51년에 이 다리에 돈 수에로 기사와 싸운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서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1997년 부터 매년 6월 첫 째주말에 그 결투를 기리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