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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an 19. 2024

235. 뻬레헤 마을을 지나(8/08)

역사적 분쟁의 마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서 아침 7시 20분에 숙소를 나오니 거리에는 아직 가로등이 꺼지지 않고 있다. 이 마을의 오래된 골목길을 빠져나와서 부르비아 강(Rio Burbia)의 다리에 올라서니 돌로 만든 순례자 조형물이 멋지게 서 있다. 다리를 건너 도시를 빠져나오는 지점에 산티아고 187Km의 이정표가 서있다. 거리는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 지역부터 순례길의 주변에 커다란 밤나무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작은 밤나무가 아니라 성인들의 팔로도 몇 아름씩 되는 고목들이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시골 출신이지만 밤나무가 이렇게 오래도록 크게 자라는 것은 본 적이 없다.

4.5Km 정도를 걸으니까 발카르세 강(Valcarce Rio)을 끼고 있는 뻬레헤(Pereje)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의 첫인상은 마치 폐허가 된 고도(古都)를 보는 것 같다. 길가에 서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Iglesia de Maria Magdalena)은 거의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길 가의 집들도 오랜 풍화에 대부분 곧 쓰러질 듯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니다. 이 마을 뻬레헤는 중세 때에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의 수도원장과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산따 마리아 수도원이 분쟁을 벌인 곳이었다. 분쟁의 시작은 뻬레헤에 오 세브레이로의 수도원장이 순례자를 위한 성당과 병원을 세우려고 했는데, 이 지역이 비야프랑카에 속하는 지역이므로  비야프랑까의 수사들은 자신들이 뻬레헤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며 반대를 했다. 이 분쟁은 레온 왕 알폰소 9세와 교황 우르바노 2세, 도냐 우라까 여왕까지 끼어들면서 더 격해졌다. 결국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의 수사들이 이기게 되어 병원 건축의 독점권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여왕이 개입한 것은 도냐 우라까 여왕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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