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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08. 2024

254. 크고 오래된 밤나무 길(8/10)

알밤이 떨어질 때 다시 올까?

산 끄리스또보 도 레알(San Cristobo do Real) 마을을 스치듯이 지나서 순례길은 렌체(Renche) 마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길이 정말 대단하다. 아주 오래된 옛길로 짐작이 된다. 길 옆에 돌을 쌓아 담장을 만들어서 길을 냈는데, 돌에는 파랗게 이끼가 끼어서 마치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오래된 계곡에 들어온 것 같다. 특히나 이 길은 정말 우람하고 오래된 밤나무 숲이 장관이다. 길가의 모든 나무의 숲은 커다란 밤나무이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크고 밑동이 굵은 밤나무를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이런 정도는 예사이다. 어른의 팔로도 몇 알므이 될 나무들이 길을 따라 즐비하게 서서 정말 호젓한 오솔길 향기를 풍긴다. 아마 6월에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계절이 이 길을 걸으면 밤꽃 향기에 흠씬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속담인지 육담(肉談)인지, 밤꽃 향기 맡으면 수절과부 도망간다고 했던가? 조선시대에는 밤꽃향기를 양향(陽香)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에서 남녀 간의 운우지정을 묘사할 때 밤꽃 향기가 진동한다고들 한다. 그냥 속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얼치기 화학자인지 의사인지 어정쩡한 사나이가 냄새의 성분을 가지고 술기운에 열심히 설을 까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양반의 지론에 따르면 밤꽃의 향기와 남성의 정기에는 독특한 아미노산인 스퍼미딘(Spermidine)이라는 게 있단다. 이것은 비릿한 냄새의 주성분인 천연화합물이고, 여자의 질속의 산성을 중성화시켜서 정자의 생존을 돕는 역할을 한단다. 네덜란드 과학자 안톤 반 레벤후크가 인간의 정액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밤꽃이 왜 이런 화합물질이 있는지는 아직 과학자들이 연구를 전개하지 않아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지만 남성의 정액에 관하여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단다. 동물들의 이런 스퍼미딘의 흡수가 생명체의 생존력을 높여 주고 항노화 효과를 높여주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온다. 스퍼미딘의 대사물질이 스퍼민(Spermine)인데, 늙은 사람일수록 혈중 스퍼민의 농도가 낮은 것으로 수명과도 연관이 매우 높단다.

밤꽃만이 아니라 야생화 중에서도 이런 유사한 페로몬을 풍기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은 벌들도 이 향기를 싫어해서 만약 주변에 다른 향기로운 꽃들이 있으면 밤꽃의 꿀을 채취하지 않고 주변에 꽃이 없을 경우에 밤꿀을 채취하기 때문에 밤꿀의 값이 아카시아나 다른 꽃 보다 더 비산 이유란다. 성분상으로도 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밤꽃 향기는 이런 기능 말고도 불안감, 우울증 등의 감정 완화 효과도 있다고 알려졌고, 음흉한 생각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보면 밤꽃의 꽃말이 <진심>이니까 진심으로 밤꽃과 알밤을 좋아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밤 산지는 공주 정안면이 최고로 꼽힌다. 금삿갓은 가을에 이곳으로 알밤 주으러 자주 가곤 했다. 지인이 이곳에서 밤농장을 아주 크게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3년 전에 알밤 주으러 갔다가 동반자와 같이 말벌에 무지막지하게 쏘여서 병원에 며칠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후로는 알밤 주으러 가지 않는다. 이놈들 밤꿀이나 열심히 모을 일이지 자기네들 먹이도 아닌 알밤 줍는다고 마구 공격하다니. 조선 과객 금삿갓이 어릴 때 시골서 알밤 줍던 큰 밤나무들은 요즘 가서 보니 모두 늙어서 죽고, 개량종인 키가 작은 밤나무들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곳 순례길의 밤나무는 무슨 종자이길래 이렇게 크고 오래도록 살까? 하나님이 순례객들의 허기를 달래라고 오래 사는 축복을 주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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