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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17. 2024

263. 빌레이에서 비야차 마을까지(8/11)

많은 마을을 스쳐 지나서

사리아(Sarria)에서 아직 어득어득한 아침 6시 40분쯤 숙소를 나섰다. 이곳 오 두르민넨또(O Durminento) 숙소에서 무자비하게 베드버그(Bedbug) 즉 빈대에게 공격을 당한 지도 모르고 멀쩡하게 출발한 것이다. 이 놈에게 물리면 잠복기라는 게 있는데, 사람마다 체질마다 다르다고 한다. 나중에야 알았다. 조선 과객 금삿갓 같은 경우엔 심한 발병은 하루 정도 지나고 나타난 것이었다. 아무튼 숙소를 나오니 사리아 시내는 아직도 가로등을 켜놓은 상태이다. 마을을 벗어나서 언덕길을 오르니 길 가에 엄청 크고 오래된 밤나무가 버티고 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나서 아침에 길을 나설 때는 일렬로 서서 걷는 분위기이다. 그러다가 언덕길을 만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체력에 따라 분산되어 여기저기서 걷게 되는 것이다.

언덕을 넘어서 4Km 정도 걸으면 도달하는 마을이 빌레이(Vilei)이다. 빌레이 마을과 다음 마을인 바르바델로(Barbadelo) 마을은 거의 1Km가량이라서 같은 마을인지 다른 마을인지 분간이 안 간다. 길가에서 보이는 알베르게의 간판을 보고 마을이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작은 마을들이다. 이런 마을을 들릴 수도 없고 해서 모두 그냥 지나친다.  평지 길이 나오는데 오래된 거목들이 가로수 역할을 하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좋았다.


길 가에 말 한 마리가 한가롭게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아주 날씬하고 튼튼하게 생긴 얼룩무늬의 말을 보니 그 녀석을 타고 저 넓은 평야를 맘껏 달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지나가려다가 말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오 보았다. 아주 순한 녀석인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응대해 주는 것이 기특했다. 이발이 근지러운지 연신 입을 벌리고 철근으로 만든 울타리를 자근자근 씹기도 하고 그런다.

이제 마을의 신도들도 없는지 다 낡아서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 성당이 덩그러니 있다. 스페인이나 우리나라나 이젠 시골마을들이 점차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이곳의 시골 마을들은 산티아고순례길이 있어서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이나 숙소를 운영하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바르바델로 마을을 지나서, 마을인지도 모르고 스쳐 지나온 마을들이 여러 개다. 렌데(Rente), 뻬루스까요(Peruscallo), 벨란떼(Belante), 아 브리아(A Brea) 마을들을 지나서 페레이로스(Ferreiros) 마을에 당도한다. 사리아에서부터 13Km 정도를 걸은 것이다. 이 마을에는 산따 마리아 데 페레이로스 성당(Iglesia Santa Maria de Ferreiros)이 있었다. 원래 미라요스(Mirallos)라는 마을에 있던 이 성당은 18세기말에 성당의 돌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서 페레이로스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을 보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자의 머리와 농부의 도끼 모양의 장식이 되어 있었다. 성당 옆에는 마을의 공동묘지가 거창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성당보다 묘지가 더 호화롭게 조성되어 있어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뛰어넘어 조상을 숭모하는 정신이 깊은 마을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의 이름인 페레이로스는 이 마을에 옛날부터 순례자들을 위한 에레리아(Herreria) 즉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로의 순례길을 위해서 이 마을에 머물면서 자기의 신발을 수선하기도 하고, 신발에 징을 박고 말의 편자를 갈고 갑옷을 수선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입구에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100킬로미터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800Km의 긴 여정이 이젠 100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도의 심정을 느껴서 순례자라면 누구든지 이 이정표에서 기념 촬영을 하게 된다. 조선 과객 금삿갓도 이곳에서 남은 여정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순례자들이 여러 가지 낙서를 볼썽사납게 남겨 놓았는데, 한국의 어느 순례자가 '빵세'라는 알지 못하는 말을 남겨 놓은 것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인 뽀르또마린(Portomarin)에 도달하기 얼마 전인데, 길 가의 밭에서 주민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밭에서 몸을 쓰면서 삽과 농기구를 들고 일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지나온 다른 마을이나 농경지에서는 거의 거대한 농기계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데 비해, 이곳에 일던 그들은 우리네가 마치 텃밭을 가꾸듯이 농기구와 손으로 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저 멀리 민뇨강(Rio Mino)을 건너서 뽀르또마린이 보이는데, 강까지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엄청 가파른 내리막 길이고 순전히 바위와 돌길이다. 길도 좁고 매우 험했다. 이곳을 자전거로 순례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자전거를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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