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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Feb 27. 2024

273. 빨라스 데 레이 마을에서 자다(8/12)

왕의 궁전 마을

오늘은 25Km를 걸어서 목적지인 빨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져보았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찾아가니 문은 열려 있으나 아직 관리자나 주인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동키 서비스로 배달된 배낭들만 나란히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침대의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무직정 기다릴 수도 없고 난감했다. 할 수 없이 건물 앞 그늘의 의자에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식사가 다 끝나도 만날 수가 없어서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기로 했다. 다른 골목을 찾아서 가보니 한적하고 후미진 곳에 의외로 새로 지은 것 같은 깨끗한 숙소 하나가 번듯하게 서 있었다. 이름은 오우떼이로 알베리게(Albergue Outeiro)였다. 건물 옆으로 공터가 넓고 빨라 건조재도 잘 설치되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 보니 예약을 하지 않아도 침대가 여유가 있단다.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얼른 수속을 하고 짐을 방으로 옮겼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걷거나 방을 구하기 위해 긴장해서 몰랐는데, 침대를 구하고 나니까 갑자기 온몸이 가렵고 피부가 쑤시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베드버그(Bedbug)에 물린 것을 모르고 계속 식중독이나 알레르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종아리와 발목 부분에 밀린 곳에서는 커가란 수포가 생기고 통증도 무척 심했다. 얼른 짐을 정리하고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으니 온몸이 정말 말이 아니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다시 룸으로 돌아와서 동반자에게 등 쪽의 상황을 카마라로 좀 찍어서 보여 달라고 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정말 형편이 말이 아니다. 마침 같은 방에 투숙한 한국에서 온 여성 순례객이 조선 과객 금삿갓의 사진을 보더니 단번에 식중독이 아니고 베드버그 물린 것이라며 자기가 가지고 있던 약을 우선 바르란다. 그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9번째 걷는 중이라서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겼어서 잘 안단다. 지금도 부르고스  조금 못 미쳐 어느 마을에서 자다가 베드버그에 당해서 아직 완치가 안 된 상태란다. 그 약이 달 안 들을 수도 있으니, 빨리 시내로 나가서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서 치료를 받으란다. 체질에 따라서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잔뜩 겁을 준다. 열일을 제쳐 놓고 마을의 번화가로 나갔으나 병원은 없었다. 겨우 약국 하나가 있었는데 씨에스타로 문을 닫았다. 대략 난감이다. 두 시간 이상을 쇼핑한 후에 다기 가보니 이제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이다. 급한 나머지 손짓 발짓하면서 증상과 공격받은 부위를 설명하고, 종아리 나 팔꿈치 같은 부위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행하게도 약간 나이가 든 여자 약사분이 경험이 많고 친절했다. 항히스타민제제와 기타 비슷한 바르는 약물을 잔뜩 사서 시간이 나는 대로 발랐다. 그런데 이놈의 벌레의 독이 정말로 강해서 긁지 않았는데도 물집이 마구 생기는 거다. 혹여 물집을 터뜨리면 피부의 껍질이 벗겨져서 쓰라리고 정말 아프다.  약사의 말로는 10일에서 보름 정도 증상이 갈 거라니 할 말이 없다.

이 마을의 이름은 원래 "팔라티움 레지스"로 702년에서 710년 사이에 통치했던 서고트족 왕 위티자(Witiza)의 궁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팔라스에서 위티자는 돈 펠라요(Don Pelayo)의 아버지인 갈리시아 공작 파빌라(Favila)를 죽였다고 한다. 마을에는 산 티르소 성당(Igrexa de San Tirso de palas de Rei)이 있는데, 195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을 갖추고 있으며, 그 옆에는 바로크 양식의 저택과 Virgen del Socorro의 동상이 있다. 마을에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 갈리시아 로마네스크 건축물의 장엄한 예인 빌라르 데 도나스 성당(Vilar de Donas)이 있다. Arias de Monterroso 가족은 여성 가족 수도원을 설립하여 "donas"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을 1184년에 산티아고 기사단에 기증되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건설을 명령한 사람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기사단이었을 것이다. 이 건물은 그 품질로 인해 1931년에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멋진 성이 있다. 갈리시아에서 중세 군사 건축의 가장 좋은 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이 장엄한 건물은 Irmandiños의 반란 중에 파괴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으며 그 가치를 높였다. 현지 전설에 따르면 이 성의 성벽은 단 하룻밤 만에 기적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갈리시아 귀족 Gonzalo Ozores de Ulloa가 14세기에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5세기에 이 성은 군사적 목적 외에도 통행료 징수소 역할을 했는데, 그 위치가 고갯길의 불가피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484 년 Pambre Castle은 Monterrei 백작의 손에 넘어갔고, 나중에는 Alba 가족에게 넘어갔다. 여러 소유자를 거친 후 성은 2011 년 Xunta de Galicia 지방 정부에 의해 구입된 이래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장기간 순례길의 피로와 시간적 제약 때문에 그 두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은 생략하기로 했다.

숙소 앞마당에서 저녁 9시가 넘어서 석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스페인은 유럽의 남부 지방이지만 여름 해가 매우 늦게 지고 있다. 8월 중순인데도 일몰 시간이 21시가 넘었다. 대신 아침 해가 뜨는 일출시간도 한국 보다는 훨씬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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